진정성과 스타트업 (번역)

*폴 그레이엄의 에세이를 번역했습니다.

제시카 리빙스턴(YC 파트너)과 제가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공통적으로 쓰는 몇몇 특별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 중 저희가 창업자를 이야기할 때 쓰는 가장 큰 칭찬은 바로 ‘진정성이 있다(earnest)’는 것이죠.

물론 진정성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성은 있는데 역량이 부족할 수도 있죠. 하지만 창업자들이 어마어마한(formidable; 이 말도 저희가 좋아하는 말이에요.) 역량과 진정성을 동시에 갖는다면, 그 기세는 그 누구도 멈출 수가 없죠.

진정성이라는 말이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나 쓰던 고루한 표현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실리콘밸리라는 곳에서 이런 말에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어쩌면 시대착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는 왜 그렇게 진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누군가를 진정성이 있다고 평가하는 건, 그들의 목적의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무엇인가에 몰두하는 이들이 올바른 동기를 갖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과 같죠. 목적의식을 벡터값으로 나타낸다면 ‘진정성이 있다’는 것은 그 크기와 방향 모두가 맞다는 뜻입니다. 이 둘은 서로 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올바른 동기를 가졌을 때, 모름지기 더 열심히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니까요.


실리콘밸리에서 올바른 동기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많은 이들이 그릇된 동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을 성공시키는 것은 분명 창업자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이들이 이 동기를 가지고 스타트업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올바른 동기라 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동기는 문제 그 자체를 풀기 위한 의지에서 시작합니다. 그것이 진정성의 뿌리가 되죠.

‘너드(nerd)’라 불리는 이들의 주 특징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00에 빠진 너드’라고 일컫는다면, 그건 그가 ’00’ 자체에 굉장히 매료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에 빠져있는 모습이 쿨해보이거나 이익이 된다는 뜻이 아니죠. 오히려 그들은 00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쿨한 것을 포기하는 것까지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무언가에 대한 순수한 관심은 그 자체로 강력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저와 제시카는 창업자들을 만날 때 이를 살피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진정성이라는 것은 큰 강점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창업자를 옭아매기도 합니다. 너무 깊은 애정이 스스로를 묶는 셈이죠. 진정성이 너무 강한 사람은 가벼운 농담이나 유머를 쉬이 웃어넘길 수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멋지게 표현하는 데에도 주저하죠.

너무 예민하기 때문에 외길 인생을 파는 운명을 타고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유머와 패션으로 인기를 얻곤 하는 어린 시절에는 단점이 됩니다. 하지만 종국엔 엄청난 강점이 되어 돌아오죠.

어린 날 찌질했던 너드가 훗날 사회의 멋진 리더가 되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하지만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해요. 이건 너드가 더 똑똑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진짜 진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인거죠.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는 학창시절 때보다 실제 사회에서 훨씬 복잡하고 거대합니다. 이럴 때, 강점이 되는 것은 그 문제를 진심으로 풀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런 자세, 진정성입니다.

항상 그럴까요? 진정성이 있는 이들이 늘 이길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정치나 범죄, 사행사업, 특허괴물 등의 사업에서는 아마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학문의 영역에서도 그럴겁니다. 유머 쪽으로도 아마 그럴 듯 해요. 진정성이 있지 않더라도, 완전히 냉소적이거나 조소하는 개그를 할 수는 있을거에요. 

흥미롭게도, ‘너드’라는 말이 진정성을 내포하는 말이라면 ‘정치적’이라는 말은 그 완전한 반대입니다. 실제 정치에서 뿐 아니라, 조직 내 정치 혹은 학계 내 정치에서도 진정성은 종종 약점이 되곤 합니다. 

앞서 말한 분야들을 보면 어떤 패턴이 있습니다. 유머 정도를 제외하면 제가 바이러스만큼이나 피하고 싶어하는 것들이죠. 따라서 ‘이 분야에서 진정성이 얼마나 중요한가요?’와 같은 질문은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기준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분야의 정점에 있는 이가 너드인가 아닌가 여부 역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되죠.


‘너드’처럼 진정성과 관련이 큰 표현 하나는 ‘순진함(naive)’입니다. 진정성이 큰 사람들은 종종 순진해보입니다. 그건 그들이 보통의 사람들이 갖는 현실적인 동기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진한 이들은 현실적인 동기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이론적으로는 이해하나 실제로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동기들에 대해 쉽게 잊곤 합니다.

난이도 높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는 순진한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급변하는 시대라면 그렇습니다. 순진한 낙관주의자들은 ‘그래봤자 얼마나 어렵겠어?’하는 생각으로 문제에 달려듭니다. 문제를 다 풀어내고 난 다음에야 그것이 말도 안되게 어려운 문제였다는 것을 깨닫죠.

순진함과 진정성은 ‘합리적이고 세련된 지식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실리콘밸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죠. 1895년 오스카 와일드가 <진지함의 중요성>을 쓴 뒤로는 그 단어를 꺼내는 것 자체가 놀림거리가 될까 걱정될 지경이죠.

하지만 YC의 제시카 리빙스턴의 머리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면, 제시카가 늘 진정성을 가진 창업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성이라니! 누가 제대로 공감해줄 수 있을까요. 수십조 원의 돈방석에 앉은 창업자들이, 회사를 왜 시작했는지에 대한 대답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할 때 기자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놀림받고 싶어서 그런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죠. ‘저 순진한 창업자들은 자기들이 하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들린다는 걸 모를까’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질문을 한 기자들은 몰랐겠습니다만, 그 말은 장난이 아닙니다. 진심이에요. 

많은 (성공하지 못한) 창업자들이 거짓으로 그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만, 실제로 큰 성공을 거둔 창업가들 중에는 풀고자 하는 문제 그 자체에 집중했기 때문에 성공한 경우가 다수입니다.

안될 이유가 있을까요. 역사나 수학에 인생을 바쳤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자율주행차나 소셜네트워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이 없을 이유가 있을까요.

이 맥락으로 본다면, 세상에 이런 너드가 존재한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이렇게 무엇을 고민하는데 아주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에너지와 회복탄력성의 원천이 되지 않을까요.


문제는 그게 사업이 되는게 잘 보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그건 역사적으로 볼 때 아주 명백합니다. 역사의 대부분에서 큰 돈을 버는 것은 지적으로 그다지 흥미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산업화 이전 시대에는 돈을 많이 버는 건 약탈이었습니다. 현대에도 비슷해요. 사병 대신 변호사들을 쓴다는 점만 바뀌었지만요. 

하지만 어떤 사업들은 업무 자체가 순수하게 흥미롭습니다. 헨리 포드가 그의 대부분 시간을 흥미로운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쏟은 것 같은 경향이, 최근 수십년 동안 가속화되었습니다.

5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좋아하는 문제를 푸는 것으로 큰 돈을 벌기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그것이 요즘 스타트업 씬의 가장 중요한 변화입니다. 성장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하고 있는 사업에 창업자가 순수한 재미를 느끼는가, 그것이 어떤 사업이 고속성장하는 큰 이유가 되니까요.

지적 호기심과 부의 관계가 변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변화가 있을까요. 이 둘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이자 목적의식이고,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밀접해지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모릅니다.

진정성에 대한 일반론을 이야기하려했는데 결국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지금 이것도 ‘00에 빠진 너드’의 한 예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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