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뉴욕시장 후보, 조란 맘다니의 돌풍 (번역)

*이번 민주당 시장 경선에서 승리한, 33세의 정치신인 조란 맘다니의 뉴욕타임즈 기사입니다.

맘다니의 승리는 뉴욕시의 정치 지형을 뒤흔들며 전국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기억에 남는 메시지, 카리스마, 그리고 강력한 지상전을 활용했다.


올해 1월, 살을 에는 듯한 추운 밤.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주 의원이자 시장선저 출마자인 조란 맘다니(33)는 맨해튼 주코티 파크의 할랄 푸드 카트에 올라 치킨·라이스 한 접시를 주문했다.

카메라가 돌아갔고, 이 앳된 얼굴의 민주당 후보는 테이크아웃 용기를 들고 시의 복잡한 허가 절차가 노점상을 압박해 ‘할랄플레이션(halalflation)’을 초래하고 있다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90초짜리 이 영상은 순식간에 바이럴이 됐다. 하지만 화면 속 옆에 서 있던 이집트 출신 노점상 마흐무드 무사(Mahmoud Mousa)는 그 효과를 더 직접적으로 느꼈다. 브루클린 이웃과 친구, 가족이 이 양복 차림의 33세 후보자에 대해 질문을 퍼부었던 것이다.

“정치인들은 우리가 겪는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는 지난주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실제 제 삶을 어떻게 개선할지 챙기겠다고 하더군요.”

다섯 달이 흐른 지금, 이 에피소드는 민주적 사회주의자 맘다니가 어떻게 뉴욕의 정치 문법을 깨고, 앤드루 M. 쿠오모(Andrew M. Cuomo) 전 주지사를 포함한 훨씬 노련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민주당 시장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가 되고 있다.

이 승리는 미국 정계에 충격을 주며 진보 진영을 고무하고 당 지도부 일부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공화당에는 민주당을 공격할 새 먹잇감을 안겼다. 이제 맘다니는 에릭 애덤스(Eric Adams) 현 시장과의 본선에서, 그를 적대시하는 재계와 가자 전쟁을 강하게 비판한 데 우려를 표하는 다수 유대인 뉴요커를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논란은 근본적 의문을 가렸다. 어떻게 경력도 거의 없는, 지지율 1 %에 머물던 무슬림 이민자가 민주당 거물을 꺾을 수 있었을까?

해답에는 맘다니 특유의 친화력과 젊은 외모, 활기찬 스타일이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측근들의 초기 회의를 무시한 결정, 활력이 사라진 쿠오모 캠프, 그리고 진보 경쟁자들 간의 예상 밖 연대도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맘다니 본인, 다른 후보들, 캠프 전략가, 민주당 유권자들과의 인터뷰는 그 밤 할랄 카트에서 이미 비범한 설계도가 드러났음을 보여준다.

쿠오모가 멀찍이서 훈계할 때 맘다니는 거리로 나가 질문을 던졌다. 다른 진보 후보들이 10대 공약을 주고받을 때, 그는 치솟는 생활비에 짓눌린 도시를 위한 단순·구체적 해법—무료 버스, 보육, 임대료 동결—을 제시했다.

TV 광고 예산은 부족했고 신문 사설에도 외면받았지만, 그의 캠페인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봉사자 군단으로 확장된 운동에 가까웠다.

데이비드 N. 딩킨스(David N. Dinkins)의 뉴욕 첫 흑인 시장 캠페인을 도왔던 패트릭 개스파드(Patrick Gaspard) 고문은 “1989년 이후 (유급이 아닌) 자발적 봉사자들이 이처럼 살아 숨 쉬며 이웃을 꾸준히 만나는 선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요즘 민주당은 으레 꼰대 잔소리꾼처럼 보이는데, 그는 활력 넘치는 경청자였어요.” 개스파드는 덧붙였다. “사람들은 그의 포부 속에 자기 모습을 봤습니다. ‘그래, 이 사람이 옳은 질문을 하고 있어’라고 느낀 거죠.”

결국 승리 규모는 맘다니 자신까지 놀라게 했다. 개표가 시작되던 밤, 그는 며칠간 표 계산이 이어질 걸로 예상했다. 하지만 불과 90분 만에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의 말을 첫머리에 넣은 승리 연설문을 급히 다시 써야 했다. 그는 퀸스의 한 옥상에서 외쳤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반드시 이뤄질 때가 옵니다.”


‘20%라는 천장’

어떤 선거 캠프는 시작부터 필승 분위기를 풍긴다. 지난해 10월부터, 맘다니의 캠프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인도 유명 영화감독과 컬럼비아대 교수의 아들인 그는 올버니에서 ‘창의적 메신저’로 명성을 쌓았다. 택시 기사 부채 탕감을 위해 15일간 단식 투쟁을 벌였고, 이스라엘 정착촌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 규제 법안을 발의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두 번의 임기 동안 그의 실적은 미미했고, 퀸스 지역구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가장 가까운 동지들조차 맘다니 캠프가 브래드 랜더(Brad Lander) 시 감사원장의 표를 갉아먹는 스포일러가 될까 걱정했다.

출마 선언 직후, 대표적 진보 단체인 ‘민주적 사회주의자연합(DSA)’ 내부 갈등이 터져 나왔다. 뉴욕 지부는 결국 그를 지지했지만, 티파니 카반(Tiffany Cabán) 시의원, 에밀리 갤러거(Emily Gallagher) 주 하원의원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은 그가 망신만 당하고 하위 선거에 자원을 빼앗길까 우려했다.

그러나 맘다니는 승인만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엘 비스고드-처치(Elle Bisgaard-Church) 비서실장, 갤러거의 전 실장 앤드루 엡스타인(Andrew Epstein), 네브래스카에서 독립 상원의원 캠페인을 이끈 모리스 카츠(Morris Katz) 등 또래 참모 몇 명과 함께, 그는 뉴욕 정계의 금과옥조를 무시하는 선거를 기획했다.

“우린 출마가 목적이 아니라 승리가 목적이었죠.” 비스고드-처치는 말했다. “제대로만 한다면 건강한 좌파를 세울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는 예비선거에 잘 나오지 않는 젊은 유권자들을 집중 공략했다. 그가 DSA 소속이라는 것과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100억 달러 증세를 공공연히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단지 계획을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2만 5,000명에서 선거일에는 수백만으로 확장된 사람들에게, 때로는 웃긴 방식으로 비전을 시각화했다.

“요즘 주의 집중 시간은 훨씬 짧아요.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27세 브루클린 시의원 치 오세(Chi Ossé)가 말했다. “임대료 동결? 깔끔하게. 빠르고 무료인 버스? 깔끔하게.”

@zohran_k_mamdani

I’m freezing…your rent as the next mayor of New York City. Let’s plunge into the details. #newyears #coneyisland #polarbear #nyc #Brooklyn #mayor #zohranmamdani #bk #bronx #queens #manhattan #statenisland

♬ original sound – Zohran Mamdani

한 영상에서 그는 코니아일랜드의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들어 임대료 동결을 논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트럼프가 백악관을 되찾은 뒤 브롱크스 거리 모퉁이에서 마이크를 들고 유권자들에게 직접 물었다.

“임대료를 동결하고, 버스를 무료로 만들고, 보편적 보육을 현실화하는 후보가 있다면,” 그는 3분짜리 편집본에서 말했다. “지지하시겠습니까?”

하지만 그의 룸메이트이자 주 상원의원 자바리 브리스포트(Jabari Brisport)조차, 젊은층과 좌파를 넘어 외연을 넓힐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사회주의자가 시장에 나와 얻을 수 있는 최대 득표율은 20 %라 생각했어요.” 브리스포트는 말했다.


설득의 힘

입법 회기가 시작된 1월, 맘다니는 시니어 주 상원의원 구스타보 리베라(Gustavo Rivera)와 알바니 카페 ‘Fresh N’ Pressed’에서 아침을 함께하며 지지를 모색했다.

리베라는 그의 열정과 지성에 감명을 받았지만, 일차 목표는 다년간 진보와 대립해 온 쿠오모를 꺾는 것이었고, 다른 후보들이 더 적합하다고 봤다.

“그가 캠프를 제대로 꾸릴 수 있는지 보여줘야 했죠.” 리베라는 말했다.

그러나 겨울이 깊어지며 상황이 달라졌다. 랜더가 지지 기반을 넓히려 중도로 이동하자, 맘다니의 투지는 가을 총선 참패 뒤 싸울 줄 아는 젊은 리더를 찾던 진보 세력의 눈길을 끌었다.

12월 14일 열린 첫 대규모 가가호호 운동은 선거를 무려 6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8곳에서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가 “삶이 너무 힘든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우리 삶은 더 나아져야 한다”는 단순 메시지를 들고 추위를 뚫고 문을 두드렸다. 필드 책임자 타샤 반 오켄(Tascha Van Auken)에 따르면, 자원봉사자는 놀랍게도 4만 명으로 불어났다.

3월 초, 맘다니가 의사당에서 국경 정책 책임자 톰 호먼(Tom Homan)을 찾아가다 주 경찰과 실랑이를 벌인 뒤, 그는 하루 만에 25만 달러를 모금했다. 그달 말에는 가장 먼저 시의 모금 한도에 도달했다.

브루클린 하이츠 프로미나드 영상에서 그는 카메라를 향해 전력질주하며 선언했다.

“보통 정치인들이 절대 안 하는 말을 하겠습니다. 제발 돈 보내는 걸 멈춰주세요.”

하지만 지지율이 오를수록 도전도 커졌다. 그는 지난 100년간 가장 젊은 시장이 될 것이었고, 1,160억 달러 규모 예산과 30만 명 공무원을 거느린 도시를 이끌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대부분의 기성 정치인과 목회자들은 승리를 예상한 쿠오모나,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랜더 편에 섰다.

지난 9월, 맘다니가 크라운하이츠 제일침례교회 라샤드 무어(Rashad Moore) 목사를 세 번이나 만나려다 거절당한 것도 이런 분위기였다.

2월, 그가 마침내 단 2분간 설교단 발언 기회를 얻었을 때, 시가 운영하는 식료품점 개설과 20만 가구의 저렴한 주택 건설 계획을 설명하자 일부 신도들은 고개를 젓고 웃었다.

그러나 서서히 마음을 얻는 이들도 있었다. 4월 말, 리베라는 DSA를 벗어난 첫 주 의원으로 맘다니 지지를 선언하며 “쿠오모를 꺾을 모먼트를, 맘다니가 만들었다”고 밝혔다.


양자 대결

67세의 쿠오모는 맘다니의 부상을 오히려 반겼다. 그는 3월, 필승 분위기로 출마했다. 4년 전 성희롱 스캔들로 자진 사퇴했으나(혐의 부인), 오랜 성과를 자랑했고, 대규모 기업·노동단체 지지를 일찌감치 확정했다.

쿠오모는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맘다니의 득표 한계가 랜더나 다른 경쟁자보다 낮다고 보고, 그의 미숙함과 과거 경찰 예산 삭감 지지를 집중 공격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맘다니를 뜨거운 칼로 버터 자르듯 할 겁니다.” 쿠오모는 말했다. “그는 정부 경험이 27분밖에 안 돼요.”

두 캠프는 극명히 달랐다. 쿠오모는 범죄·노숙 위기를 경고하며 자신만이 해결사라고 주장했다. 노조와 2,500만 달러 규모 슈퍼 PAC을 등에 업고 드물게 공개 행보를 보였다.

대부분의 기간, 여론조사는 그의 전략이 통한다고 했다. 그러나 범죄 우려가 누그러지자, 맘다니는 미래와 정치자금에 대한 논쟁에서 쿠오모를 수세로 몰았다.

마지막 TV 토론에서 쿠오모가 그의 이름을 계속 틀리게 발음하자, 맘다니는 또 하나의 바이럴 기회를 감지했다.

“제 이름은 맘다니입니다. M-A-M-D-A-N-I. 부르려면 제대로 배우셔야죠.”


결정적 연대

맘다니의 돌풍은 랜더에게 쓰라린 연속 실망이었다. 시 의회 시절 진보 코커스 창립자이자 현직 시 전역 선출직인 그는 좌파 대표 주자를 자처하며 출마했지만, 동료들은 맘다니 쪽으로 몰렸다.

예비선거 2주 전, 그는 흔치 않은 결단을 내렸다. 자기 이익을 접고, 4년 전 애덤스 승리 때 실패했던 진보 진영 연대를 시도한 것이다.

최종 토론 전날, 맨해튼 미드타운 레바논 음식점 야라(Yara)에서 두 후보와 참모, 개스파드가 만났다. 파투쉬·후무스·가지 요리를 앞에 두고, 두 사람은 쿠오모 저지를 위해 상호 지지를 약속했다.

맘다니는 애드리엔 애덤스(Adrienne Adams) 시의장과도 흑인 장년층 기반을 이유로 교차 지지를 추진했으나, 그녀는 주저했다. 반면 랜더는 전폭적이었다. 그는 남은 자금으로 쿠오모를 공격하기로 했고, 다음 날 토론에서 두 사람은 쿠오모의 성희롱 의혹을 집중 부각했다.

“여론조사는 읽을 줄 알죠.” 랜더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쿠오모를 꺾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했습니다.”

이는 진보 성향 ‘워킹패밀리스당(Working Families Party)’ 전략과 맞물렸다. 이들은 진작부터 후보들에게 서로 공격하지 말고 쿠오모를 겨냥하라고 촉구했다. 애덤스 의장은 쿠오모의 팬데믹 대응을 비판했고, 마이클 블레이크(Michael Blake)와 젤노어 마이리(Zellnor Myrie)는 흑인 유권자층에서 그의 지지율을 깎으려 TV·라디오 광고에 돈을 썼다.

그중에서도 랜더의 지지는 특히 컸다. 고령 자유주의자와 유대계 유권자들에게 맘다니에 대한 신뢰 신호를 줬기 때문이다.


막판 암초와 먼 도보

맘다니의 이스라엘·가자 전쟁 비판은 캠페인 내내 논란을 일으켰다. 예비선거 딱 일주일 전, ‘글로벌 인티파다(globalize the intifada)’ 구호가 불편하지 않느냐는 팟캐스트 질문에 그는 규탄을 거부했고, 정치적 폭풍이 일었다.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은 이를 해방의 외침이라 보지만, 많은 유대인은 폭력을 선동하는 구호로 인식한다. 다음 날, 미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충격적이며 특히 모욕적”이라 비판했고, 유대계 민주당 하원의원 댄 골드먼(Dan Goldman)은 그의 입장을 사실상 ‘부적격’이라 했다.

현대 뉴욕 선거에서 유대계 지지 없이 승리한 민주당 후보는 드물다. 쿠오모 캠프는 분노를 증폭시켰다.

다음 날, 맘다니는 할렘에서 2021년 시장 후보 마야 와일리(Maya Wiley) 지지 선언을 받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무슬림 신앙을 언급한 살해 위협이 늘고 있다며 눈물을 보였다.

“제 목숨과 제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위협이 옵니다.” 그는 말했다. 동시에 반유대주의에 대한 우려도 진지하게 표했다.

유대계 최고위 시 선출직인 랜더는 쿠오모가 반유대주의를 정치에 이용한다고 비판하며 맘다니를 엄호했다.

며칠 뒤, 맘다니 캠프 정치국장 줄리언 거슨(Julian Gerson)은 마지막 관심 끌기 제안을 했다. 예비선거 전 금요일 밤, 맨해튼 종단 도보였다.

“뉴요커들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시장을 누려야 합니다.” 그는 저녁 7시쯤 인우드(Inwood)에서 출발하며 말했다.

참모들은 유대인 인구가 많은 어퍼웨스트사이드에서 야유나 충돌이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는 남쪽으로 걸으며 대부분을 SNS로 생중계했는데, 지지자들이 다가와 셀카를 찍고, 등을 두드리고, 주먹을 맞댔다. 일부는 그를 지지하려고 유권자 등록까지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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