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과 기쁨을 함께, 케빈 켈리 스타일 (번역)

<와이어드> 케빈 켈리가 말하는, 위대한 일을 해내는 또 다른 방식

Kevin Kelly at his studio in Pacifica, CA on April 17, 2025.

케빈 켈리는 하나의 ‘대박’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기업가들과 견줄 만한 지성, 근면, 야망, 인사이트를 갖췄지만 스스로 유니콘 회사를 세우는 데엔 관심이 없죠. 대신 본인 표현대로 “할리우드 스타일”—즉, 일련의 크리에이티브 프로젝트를 이어 가며 경력을 쌓아 왔습니다. 아래는 그의 인생 작업 중 일부입니다.

1980년대 초에는 《홀 어스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 편집자로 일했고, 1985년에는 최초 온라인 커뮤니티 가운데 하나인 웰(WELL) 을 공동으로 시작했으며, 1993년에 《와이어드(WIRED)》를 공동 창간했습니다. 이후 예술·낙관주의·여행·종교·창의성·AI(당시에는 생소했던 분야)까지 아우르는 수백 편의 에세이를 발표하고, 12권 남짓의 저서를 펴냈습니다.

20대에 자전거로 미국 대륙을 횡단했고,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미래학 고문’으로 일했습니다. 애니메이션 〈퓨처라마(Futurama)〉의 ‘데스 클록(Death Clock)’은, 그가 컴퓨터 바탕화면에 띄워 두는 ‘인생 카운트다운 시계’에 제작자 맷 그레이닝이 영감을 받아 탄생했습니다.

그는 아시아와 유럽을 걸어서 일주일에 약 100km씩 이동하는 소규모 트레킹을 기획하고, 조각·드로잉·회화·사진 작업도 꾸준히 이어 갑니다. 스티어트 브랜드—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인용한 “Stay hungry, stay foolish”의 당사자—와는 오랜 친구이자 협업자입니다.

장기적 사고를 장려하기 위해, 그는 미국 텍사스 서부 산속에 1만 년 동안 작동하는 시계를 짓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가 함께하고 있죠. 그는 개신교 신자이며, 아내 지아민과 38년째 결혼 생활을 이어 오며 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한때 비주류라 여겨지던 ‘전 지구 생물 종 전수(全數) 조사 운동’을 주류 담론으로 끌어올렸고, 현재는 스미소니언에서 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퀀티파이드 셀프(Quantified Self)’를 일찍이 논의해 핏빗(Fitbit)·스트라바(Strava)·애플 워치(Apple Watch)·에이트 슬립(Eight Sleep)·오우라 링(Oura Ring) 같은 제품이 탄생하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2008년에는 “인당 연 100달러씩 낼 수 있는 열성 팬 1,000명만 확보해도 매년 10만 달러를 벌어, 생계에 충분하다”는 ‘1,000명의 진정한 팬’ 개념으로 크리에이터 경제를 사실상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Shelf of toys and tchotchkes at Kevin Kelly’s studio in Pacifica, CA on April 17, 2025.

“관심사를 우주적 레벨로 밀고 가는 이들은, 이만하면 됐다는 감각을 결코 느끼지 않습니다.”

나발 라비칸트(Naval Ravikant)는 그를 “현대판 소크라테스”라 했고, 마크 안드레센은 “케빈 켈리의 글은 전부 읽을 가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브라이언 이노는 “기술과 문화를 꾸준히 가장 도발적으로 사유하는 인물”이라 평했으며, 레이 커즈와일은 “기술의 방향을 누구보다 잘 읽는다”고 평가했습니다.


스타트업 천하에서 ‘할리우드 스타일’이라는 대안

켈리의 ‘할리우드식’ 작업 방식은 늘 제게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15년 전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로 대체로 그렇게 일해 왔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유니콘 회사 창업’만이 임팩트를 내는 유일한 길처럼 여겨집니다.

켈리는 그 경로를 명랑하게, 또 도전적으로 부정합니다. 인터뷰 준비를 막 시작했을 때부터 저는 이분이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제 직업 선택과 화해하는 방법을 찾게 해 줄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함께 보낸 후, 이 ‘성지순례’가 우리 업계의 누군가에게도 또 다른 길을 허락하는 메시지가 되리라 확신했습니다.


Kevin Kelly at his studio in Pacifica, CA on April 17, 2025.

‘출세 트랙’을 포기하고 재미를 좇다

저는 구글에서 중소기업에 AdWords를 판매하며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첫 분기 북미 판매 3위를 기록하자 곧바로 관리직 제안, 해외 오피스 출장, 화려한 지표 옆 슬라이드 속 제 얼굴, 그리고 고위 리더들의 관심이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런 것들은 저에게 큰 흥미를 주지 못했습니다. 대신 회의실 이름을 바꾸자는 캠페인을 벌이거나, 동료가 진행한 사내 인터뷰 시리즈 〈G-Chat with Charleton〉을 함께 만드는 일이 더 즐거웠습니다. 결국 14개월 만에 ‘재미있는 일’을 찾아 구글을 떠났습니다.

그 후 10년간, 저는 재미를 좇아 널뛰기하듯 여러 일을 경험했습니다. 모바일 게임 회사에서 스프레드시트를 다루고, 〈매직: 더 개더링〉을 배우고, 대박 ‘펫 호텔’ 게임 덕에 수익도 맛보았습니다. 이어 직원 여섯 명 규모의, Y 콤비네이터(Y Combinator) 내 ‘검은 양’이라 불린 스타트업으로 옮겼습니다. 틈틈이 고교 축구부를 코치하고, 댄델리온 초콜릿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첫 소설도 완성했습니다.

경력 공백이 잦아 대부분 리크루터가 저를 꺼렸지만, 스트라이프(Stripe)는 달랐습니다. “짧은 시간에 넓은 영역을 경험했다”는 반쯤 칭찬 같은 말을 듣고 2015년 초 어카운트 매니지먼트 팀에 합류했습니다.

스트라이프에서 거의 5년을 머물렀지만, 그 안에서도 널뛰기는 이어졌습니다. 1년 차에 관리직과 ‘회사 문화에 영향 주는 프로젝트’ 전담이라는 모호한 직책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근속 기념 행사 개선, 회사 플래닝 수립, 탄소중립 선언, 해커톤에 비개발자 참여 유도, ‘바 레이저’ 인터뷰 정의, 사내 서적 인쇄·배포(후에 스트라이프 프레스(Stripe Press)로 발전) 등이 모두 제 영역이었습니다. 이는 전부 사업운영 팀의 전 맥킨지 컨설턴트들이 미루고 있던 일이었죠.

주변 친구와 부모님께서 어느 쪽을 고르라 하셨을지는 분명합니다. 제가 선택한 쪽도 (반대 방향으로) 분명했습니다.

켈리 식으로 표현하면, ‘뻔해지기 어려운(illegible) 경로’일수록 오히려 흥미로운 일을 향해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Kevin Kelly at his studio in Pacifica, CA on April 17, 2025.

저는 승진 없이도 영향력과 동료와의 관계가 확장되는 것을 느끼며, 이 방식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5년 계획을 세우라는 (선의의) 매니저 제안을 거절했고, 직함·돈·링크드인 프로필 사진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비웃기도 했습니다. MBA를 조롱하고, “조직도 밖에 머무르기”를 자랑했으며, “제 레고를 잘 나눠 줍니다”라는 말을 즐겼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몰려왔습니다. 제 주변은 직함·승진·돈·팀 구축을 좇는 동료들이 앞서 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허영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더 크고 흥미로운 문제를 다뤘고, 젊은 인재를 멘토링했으며, 매출·이익에 영향을 주었고, 업계가 주목하는 멋진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일부는 회사를 창업해 투자자들이 데크(Deck)를 열어보기도 전에 텀싯을 받았습니다. 저는 부러움뿐 아니라 어떤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제 야망·노력·열정이 틀어진 게 아닐까 두려웠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걸까? 얼마나 큰 돈을 놓쳤을까? 존경받고 싶던 사람들에게 더는 존경받지 못할까? 10년을 열심히 일했는데도 전문성이나 다음 단계가 뚜렷하지 않았어요. ‘재미’와 ‘이곳저곳’을 중시하던 제가 철없어 보였죠. 꽤 알려진 로펌 파트너가 된 동생을 부모님이 더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이해됐어요.

켈리가 “뻔하지 않은 경로가 흥미의 증거”라 말했지만, 저는 확신을 잃어가고 있었어요.


Kevin Kelly at his studio in Pacifica, CA on April 17, 2025.

켈리의 아지트에서 확인한 방향과 힘

켈리가 있는 캘리포니아 퍼시피카(Pacifica) 스튜디오에 도착했습니다. 해안도로 끝, 야생화와 키 큰 나무가 빽빽한 언덕 아래 자리한 헛간 같은 건물. 문에는 ‘kk.org’라고 적힌 작은 표지 하나만 달려 있었습니다.

실내는 꼭 1990년대 초 남동생의 꿈 속 방 같았습니다. 거대한 레고 타워, 천장에 매달린 크넥스(K’nex) 구조물, 두 층 높이 책장에는 해진 책들이 기울어 쌓여 있었습니다. 곳곳에 잡동사니와 병 속 표본이 산더미였죠.

그러나 쓰레기로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물건이 의미로 요동쳤습니다. “이건 뭘까?” “어디서 났을까?”를 물을 수 밖에 없었죠.

책장 아래쪽을 훑어보는데, 켈리가 실내 발코니에 나타나 2층으로 올라오라고 손짓했습니다. 커서 발끝이 덜렁거리는 양말과, 실제 페인트 자국이 묻은 바지를 입은 채로요.

계단을 오르며 스튜디오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이 무엇인지 여쭤보자, 그는 곧장 화제를 돌립니다. 향수를 즐기지 않는 미래주의자답달까요.

2층 벽 한가득 놓인 잡동사니를 살피다 보니, 켈리가 가죽으로 된 손바닥 크기 물건을 건네며 맞혀 보라고 합니다. 당황해 머뭇거리자, “몽골에서 독수리 사냥에 쓰는 모자”라고 설명했죠. 이어 작은 병 속 뼈를 가리키며 “저 창문에 부딪혀 죽은 새입니다. 제가 직접 작업했어요”라며 자랑합니다.

책상 옆 바닥에는 발목 높이 들기조차 힘든 공이 있었습니다. 텅스텐으로 만든 것이라며, 금과 비슷한 밀도라고요. “영화에서 누가 텅스텐 가방을 들고 달아나면, 그건 불가능한 장면인데 하고 기억하시면 됩니다.”

“위대함이란 과대포장 되어있어요. 그건 어떤 극단주의에요. 그리고 극단주의란, 어떤 극단적인 단점이 있기 마련이죠. 전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사소한 물건들로 대화하며, 책이나 블로그로는 알 수 없던 그의 진짜 면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벽면 기차 모형을 보며 작동 여부를 묻자, 켈리는 컨트롤러 배터리를 갈아 끼우고 닌텐도 카트리지 두드리듯 톡톡 치더니 기차를 달리게 했습니다. ‘칙칙폭폭’

자리에 앉아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나요?”라고 묻자, 그는 “내 흥미를 따라요”라고 담담히 답했습니다. 흥미를 ‘입력’일 뿐 아니라 ‘출력’으로도 공유하는 점이 마법 같다고 하자, 그는 결과물(Output) 개념부터 생각하지 않는다더군요. “저는 목적지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방향을 좇지요.”

흥미 추구와 ‘팔랑귀’의 차이를 묻자, 그는 ““관심사를 우주적 레벨로 밀고 가는 이들은, 이만하면 됐다는 감각을 결코 느끼지 않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게 열정만으로 충분할지 묻자, “무엇에 충분한건데”라고 되물었죠. 이어 “돈은 흥미와 가장 먼 이유”라며 월트 디즈니(Walt Disney)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돈을 벌려고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더 많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돈을 벌죠.”

돈 이야기가 끝나자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는 “흥미를 진지하게 대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내일도 계속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실패도 감수할 수 있는 거죠”라 덧붙였습니다.

어떤 하나에 집중해야 위대함이 가능하지 않나 하고 물으니,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위대함은 과대평가됐습니다”라며 말했죠. “극단주의에는 극단적 악덕이 따릅니다. 스티브 잡스나 밥 딜런(Bob Dylan)도 괴팍했잖아요.”

켈리의 방식이 점점 선명해졌습니다.


Kevin Kelly at his studio in Pacifica, CA on April 17, 2025.

‘뼈를 깎는 위대함’만이 답일까?

우린 흔히 “광적인 집중” “가차 없는 실행” 같은 표현으로 성취를 설명합니다. 투자자는 “어깨에 앙금을 단 창업자”를 찾고, 2012년 페이스북의 ‘리틀 레드북’에는 ‘위대함과 안락함은 함께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실려 있었습니다. 리드 호프먼은 “균형 잡힌 삶을 자랑하는 창업자는 이길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X(옛 트위터)에 남겼습니다. 젠슨 황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서 위대함으로 몰아넣겠다”고 했죠.

반면 켈리의 작업은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고통이나 에고가 아니라, 어떤 의미를 추구합니다. 그는 억지로 쥐어짜지 않습니다. 아이디어와 프로젝트가 그를 끌어당깁니다. 범위는 넓어도 모든 일이 맥락의 조화를 이룹니다. 이런 삶과 일이 모두에게 가능하다면, 왜 우리는 고통과 이를 악무는 서사를 숭배할까요?

몇 해 전, 저는 억지로라도 직업적 목표를 글로 적어 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 주제에 대해 몇 시간을 ‘강제 명상’하듯 고민한 끝에 겨우 쓴 문장은 “대부분의 날을 좋은 하루로 만들기”였죠. 여기서 ‘좋은 하루’란 수영장 옆에서 아페롤 스프리츠(Aperol Spritz)를 마시며 한가롭게 쉬는 걸 뜻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뭔가 짜릿한 무언가를 출시하거나, 큰딜을 성사시키거나, 우아한 모델을 만들 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무언가에 깊이 몰입한 나머지 한밤중에 벌떡 깨는 기분도 좋아요(이 글을 쓰면서도 여러 번 그랬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날을 좋은 하루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면접 자리에서 꺼내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그리 좋게 들리진 않을 것 같아서 가슴속에만 간직하기로 했죠.

그런데 눈앞에는, 대부분의 날을 정말 기분 좋게 보내는 것처럼 보이는 제 영웅이 서 있었습니다. 왜 우리는 일하면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까요? 그건 절대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즘 얘기가 아니에요.

처음엔 ‘할리우드식 일하기’ 이야기를 깊이 파고들려고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켈리와 장난감 같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한 방에 나란히 앉아 있으니, 그에게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가 행복해 보인다는 사실이었어요. 세상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 편안하게 어울린다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켈리에게서 할리우드식으로 일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습니다. 야망과 기쁨을 함께 품고 일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으러 온 거였죠.

만약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삶과 일의 방식이 이런 거라면, 왜 우리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미화할까요?

이 질문은 우리를 방어적이거나 위축되게 만들지 않아야겠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많은 사람들처럼 위대해지고 싶습니다. 헌신하고 동료애를 느끼고, 몰입하고, 최선을 다해 성과에 기여하고 싶죠. 하지만 동시에 괴로워하고 싶진 않아요. 위대해지기 위해 고문받고 싶지도 않고, 거울 앞에서 “왜 이렇게 형편없지?”라고 자책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일까요?


Kevin Kelly at his studio in Pacifica, CA on April 17, 2025.

야망과 기쁨을 함께 품는 세상

저는 케빈 켈리 같은 롤모델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일하면서 휘파람을 자랑스럽게 불고, 에너지가 넘치며 잇몸도 건강하고, 열정이 전염되는 사람들 말이죠.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관계도 탄탄하며, 가족이 행복한 사람들. 굶주린 듯 열정을 품고 큰 임팩트를 내지만, 그렇다고 무례하진 않은 사람들. 그리고 이런 자질을 존중하며 이야기하는 문화가 더 널리 퍼졌으면 합니다.

저는 억만장자도 아니고 유니콘 회사를 세워 본 적도 없어서, 그 길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단언할 수 없습니다. 중요 매체에서 제 삶을 추앙해 줄 일도 없을 테고, 300년 뒤 누군가가 제 이름을 입에 올릴 일도 없을테고요. 그래도 저는 임팩트를 내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어쩌면 순진해 보일지 몰라도, 저는 그 믿음을 놓고 싶지 않아요.

이 모든 것이 켈리에겐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는 크게 복잡한 감정을 갖지 않습니다. 저도 그를 더 닮아 가며 그 경지에 이르고 싶어요. 우리가 함께 보낸 ‘좋은 날’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마음 속 열정을 따라갈 수록 알게 됩니다. 그 샘에는 바닥이 없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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