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집 서재에서 이 작업을 하고있습니다— 조용하거든요. 아무도 저를 방해하지 않아요. 심지어 면도도 안 해도 됩니다. 물론 완벽하진 않아요. 청중이 없으니 박수갈채와 TV 카메라는 상상해야 하죠. 언론 보도도 없습니다(제가 직접 만들지 않는 한). 특별 게스트도 없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매년 작업하는 ‘대중 문화 연감(State of the Culture)’은 자랑과 정치적 과시, 미리 짜인 레토릭으로 가득한 국정 연설(State of the Union)보다 훨씬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문화야말로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의 궁극적 원천이기 때문이죠. 정치 변화조차 문화적 이동의 결과입니다. 사람들도 그 사실을 슬슬 깨닫고 있어요.
‘도파민 문화’의 부상
작년 대중 문화 연감에 제가 직접 만든 그래프를 공유했는데— 지금까지 올린 어떤 글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었습니다.

| 영역 | 느린 전통적 문화 | 빠른 현대 문화 | 도파민 문화 |
|---|---|---|---|
| 스포츠 | 직접 스포츠를 한다 | 스포츠를 관전한다 | 스포츠에 베팅한다 |
| 저널리즘 | 신문 | 멀티미디어 | 낚시성 기사 |
| 영상 | 영화·TV | 동영상 | 숏츠, 릴스 |
| 음악 | 정규 앨범 | 단일 트랙 | 틱톡 |
| 이미지 | 갤러리 벽에서 감상 | 휴대폰으로 감상 | 휴대폰으로 스크롤 |
| 커뮤니케이션 | 손글씨 편지 | 음성·이메일·메모 | 단문 메시지 |
| 관계 | 구애·결혼 | 성적 자유 | 데이팅 앱 스와이프 |
작년은 무려 대선이 있었던 해였는데도, 이 그래프는 정치 담론으로는 닿을 수 없는 중요한 무언가를 포착한 듯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어떨까요?
2025년의 대중문화
첫째, 문화가 먼저 변한다
그러니 첫 번째 규칙을 기억하세요: 문화가 항상 먼저 변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이 거기에 적응하죠.
그래서 가장 저급(하다고 생각)하는 문화에 푹 빠져 있는 10대들이 엘리트들보다 훨씬 먼저 새로운 현실을 파악하곤 합니다. 5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둘째, 10대의 디지털 삶을 보라
두 번째 규칙도 있습니다: 떠오르는 문화를 이해하고 싶다면 10대와 20대의 삶—특히 그들의 디지털 삶—을 보라. (사실 꽤 많은 이들에게는 그게 유일한 삶이기도 하죠.)
최근 몇 년 사이 웹은 정말 많이 변했죠?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인터넷은 느긋하고 자유로웠습니다. 공짜였고, 쉬웠고, 재미있었어요. 앱스토어조차 없었죠.
우리는 우리만의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웹은 모든 장애물과 경계를 없애 줬습니다. 저는 전 세계 사람들과 쉽게 이어질 수 있었죠.
그 초창기 시절의 인터넷은 저를 어린 시절 동창들과 다시 연결해 주었습니다. 해외 여행 중 사귄 친구들과도 다시 소통하게 했고, 가까운 친척·먼 친척과의 유대도 강화해 줬죠. 심지어 온라인에서 새 친구도 사귀었습니다.
해방감이 느껴졌습니다. 어떤 힘이 생기는 기분이었죠.
게다가 직업적으로도 도움이 됐어요. 집을 떠나지 않고도 여러 도시와 국가의 작가·음악가들과 꾸준히 교류했거든요. 새로운 인맥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문이 열렸죠. 그리고 이런 일은 저만 겪은 게 아니에요. 모두에게 일어났습니다.
평평함에서 납작함으로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선언했죠. 모든 장벽이 사라져—우리는 같은 수준에서 활동했습니다. 마치 상상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느낌이었어요.
이 평평함의 문화는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아이디어는 더 빨리 퍼졌고, 상거래도 훨씬 수월해졌죠. 매일 멀리서 새로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변했어요. 20년 전, 문화는 ‘평평’했습니다. 오늘날은 ‘납작’해졌습니다.
“기업들은 문화를 침체되고 지루하게 만들 의도가 없었어요. 그들이 정말 원하는 건 표준화와 예측 가능성입니다 —그 편이 더 수익성이 높으니까요.”
획일화와 목적 상실
저는 여전히 여러 웹 플랫폼에 참여합니다—직업상 필요하거든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요즘은 의문이 듭니다만.) 이제 그곳은 답답하게 느껴져요.
더 나쁜 건, 이제 모두 똑같이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과 연결되던 자리는 24시간 ‘스트리밍 콘텐츠’가 대신합니다.
페이스북은 더 이상 해외 친구, 옛 동창, 먼 친척과 연락하길 바라지 않아요. 대신 밈과 멍청한 짧은 동영상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밈과 영상은 틱톡, 인스타그램, 트위터, 스레즈, 블루스카이, 유튜브 쇼츠 등에서 똑같이 끝없이 재생돼요.
모든 대형 웹 플랫폼이 똑같아요. 친구·가족·동료로 직조되었던 그 풍성한 태피스트리는 가장 얕고 납작한 디지털 부스러기로 대체되었습니다. 맥락도, 공동체도 없으니 납작함은 더 심해집니다.
유일한 지배 원칙은 목적이나 진지함의 완전한 부재예요.
끝없는 스크롤의 감옥

- 맥락이 지워진다.
- 공동체가 산산이 부서진다.
- 진지함이 파괴된다.
- 목적이 사라진다.
- 주의력이 낭비된다.
- 의미가 고갈된다.
- 인터페이스 자체가 중독성을 띤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위 문제들이 악화된다.
플랫폼은 탈출을 더 어렵게 만들어 이 문제를 악화합니다. 링크는 검열되고, 알고리즘은 지적인 발화를 차단합니다. 출구는 봉쇄되고, 모든 길은 끝없는 스크롤로 이어집니다.
이 모든 것이 불법이어야 마땅하지만, 어쩐 일인지 합법이죠.
10대의 납작한 감옥
위에서 말한 두 번째 규칙을 기억하시나요? 10대의 디지털 삶을 보라고 했죠.
직접 보면, 그들이 여기서 가장 큰 피해자임을 즉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납작한 문화만이 평생 접한 전부예요. 이제 그것이 그들 내면의 풍경이 됐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탈출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도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납작한 세계는 사실상 감옥이고—그들의 파괴로 돈을 버는 억만장자 교도소장들(ㅈ커버그, ㅁ스크, 기타 등등)은 그들을 영원히 디지털 족쇄에 묶어두려 하죠.
기업 표준화의 부작용
기계적으로 말하면, 기업들에게는 문화를 침체·지루하게 만들 의도가 없었습니다. 10대 우울, 자살 충동, 불안, 자해 등을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요.
그들이 정말 원한 건 표준화와 예측 가능성이었습니다. 기업이라면 늘 그걸 원하죠—그 편이 더 수익성이 높으니까요.
하지만 획일화는 언제나 부정적 부작용을 가져옵니다:
- 장인과 수공예를 파괴했죠—획일화가 더 수익성 높아서.
- 동네 인디 비즈니스를 없애 버렸죠—획일화가 더 수익성 높아서.
- 모든 쇼핑몰을 똑같이 만들었죠—획일화가 더 수익성 높아서.
- 건축을 네모 상자로 바꿔버렸죠—획일화가 더 수익성 높아서.
- 일상 속 아름다움을 내쫓았죠—획일화가 더 수익성 높아서.
심지어 그들의 로고에서도 이 획일·표준화 욕망이 보입니다. 이제 모든 로고가 고만고만하게 생겼어요.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어요. 소셜 미디어와 각종 앱이 뜨면서, 기업들은 이제 사람들에게까지 표준화를 강요하려 합니다.
그 대상은 저와 여러분이죠.
데이트 앱으로 연애하고, 도어대시로 음식을 주문하고, 페이스북으로 친구와 소통하는 모든 행동이 획일적·표준화된 방식으로 처리돼야 합니다. 왜냐고요? 네, 맞아요—그 편이 더 수익성이 높으니까요.
이렇게 사람들이 납작해집니다.
슬롯머신 UX와 웹 권력 역전

우리의 새 삶은 슬롯머신 릴처럼 얕고 예측 가능해질 겁니다. 그리고 그건 설계된 결과예요—웹 플랫폼은 카지노에서 벌어지는 일을 연구하고 그걸 앱에 녹여 넣으니까요.
이 모든 부산스러운 활동은 더 큰 위협에서 눈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아무도 말하지 않는 그 위협 말이죠.
저는 웹 권력의 역전을 말하는 겁니다.
초기 웹은 사용자에게 힘을 줬습니다. ‘웹’이라는 이름이 시사하듯, 우리 각자는 전 세계에 고유한 관계망을 짤 수 있었죠.
그건 우리의 웹이었습니다.
하지만 플랫폼의 표준화·벙커화는 권력을 디지털 감시자들에게 넘겨줬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들의 거미줄에 걸려버렸죠. 그들은 거미입니다.

| 목표가 이것이라면 | 기술로 이렇게 달성할 수 있다 |
|---|---|
| 1. 사람들에게 주체성과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박탈하라 | → 조작적이고 통제적인 기술 인터페이스를 강요하라 |
| 2. 그들을 공동체와 친밀한 관계에서 단절시켜라 | → 하루 5시간 스마트폰 사용을 당연시하라 |
| 3. 그들에게 모든 고차원적 활동과 소명을 박탈하라 | → 인공지능의 급격한 가속을 추진하라 |
| 4. 중독과 의존성을 조장하라 | → 스와이프·스크롤 기반 앱을 만연하게 하라 |
| 5. 현실과의 모든 연결을 끊어버려라 | → 이용자를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시켜라 |
이런 문화 속에서, 세계 최고 부자가 지구를 둘러싼 위성의 3분의 2를 통제한다는 사실이 놀랄 일일까요? 우리의 정보망은 사실 그의 정보망이죠. 그들은 정말로 자기만의 웹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 모두를 감싸고 있습니다.

납작해진 세계를 이보다 적확하게 설명할 비유를 찾기 어렵겠지만, 사실 이건 비유가 아니라 그냥 사실입니다.
모두 같은 취향?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
당연히 이런 이야기는 국정 연설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납작한 세계’가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다면 문화를 봐야 해요. 10대와 20대를 봐야 합니다. 그들이 정치인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줄 거예요.
비평가 레베카 니컬슨은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 모두 같은 취향을 갖기 시작한 걸까요?”—음악, TV, 영화, 모든 것에 반복과 동일성이 가득해 도망칠 수 없다는 불만이죠.
혹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우리 모두 같은 좋아함·싫어함으로 수렴 중인 건 아닐까요? 취향이 더 섬세한 구분의 문제가 아니라, 획일성으로 밀어붙이는 문제가 된 건 아닐까요?
여기서 제가 동의하지 않는 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뿐입니다. 이 납작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투명 망토 뒤에 숨고 싶을지 몰라도, 사실 그들을 찾아내기는 쉽습니다.
가장 큰 웹 플랫폼, 엔터테인먼트 회사, 미디어 제국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쭉 적어보세요. 20~30명쯤 나올 겁니다—그들의 손은 아주 잘 보여요. 지문이 보일 정도죠.
그들은 콘텐츠를 밀어내고, 기기를 만들고, 위성을 소유하고, 플랫폼을 돌리고, 현금 흐름을 삼켜요. 그들의 거대한 무게가 우리 모두를 납작하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 무게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편히 숨 쉴 수 있을 겁니다. 밈과 영상으로 대체된 친구·가족과도 다시 연결되겠죠.
우리는 창조적 주체로 실제 세계에서 삶을 통제할 수 있을 겁니다—납작한 문화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요.
인디 문화와 레지스탕스의 귀환
이걸 보면, 어떤 반란을 갈망하지 않으세요?
이 일이 벌어지는 걸 보면서 인디 문화의 귀환을 원하지 않으세요? 저항 운동을 희망하지 않으세요? 획일성과 표준화에 대한 반발을 보고 싶지 않으세요?
물론이죠. 그리고 당신만 그런 게 아닙니다. 이게 제가 앞으로 전하고자 하는 희소식입니다.
두 개의 문화
웹과 미디어를 지배하는 초부유층 20~30명이 모든 것(그리고 모든 사람!)을 표준화해 통제하길 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이제 반기를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두 개의 문화를 갖게 됐습니다.
하나는 주류의 문화입니다. 세계 최대 기업들이 운영하고, 세계 최고 부자들이 홍보하죠. 시끄럽고 공격적이며, 매일 뉴스 사이클을 지배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화가 최근 모습을 드러냈어요. 카운터컬처, 언더그라운드 운동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예전엔 그냥 레지스탕스라고 했죠. 아직도 괜찮은 이름입니다.
이 흐름은 쉽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 단위 투자 자본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의 지지는 있습니다—날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어요. 역사가 말하길, 결국 모든 문화 변화를 결정하는 건 사람들입니다. 이쪽 업계에서 일하신다면, 이 점을 기억할 가치가 있어요. 정치든, 거리의 작은 가게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만약 잊는다면, 곧 불쾌한 깨달음을 맛보게 될 겁니다. 어쩌면 내년 이맘때 또 다른 ‘문화 현황’ 연설이 돌아오기 전에 말이죠.
앞으로 12개월
저는 다음 번에 아주 다른 메시지를 전할 것 같아요—납작해지길 거부하는 문화에 대한 메시지를요.
맞아요, 12개월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죠. 작년에도 봤잖아요. 하지만 앞으로는 더 큰 불꽃놀이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 원문: 어니스트 브로커 https://www.honest-broker.com/p/the-world-was-flat-now-its-flattened
- 기획& 편집: 뤽 / 초벌: 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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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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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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