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증기, 그리고 무한한 지성의 시대 (번역)

노션의 창업자, Ivan Zhao의 Steam, Steel and Infinite Minds 를 번역했습니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치트키’ 같은 기적의 재료가 있었습니다. 강철이 ‘도금 시대’를 열었고, 반도체가 ‘디지털 시대’의 불을 밝혔다면, 이제 AI가 ‘무한한 지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습니다. 역사가 증명하듯, 이 새로운 재료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 다음 시대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왼쪽: 소년 시절의 앤드루 카네기 / 오른쪽: 도금 시대 피츠버그의 강철 공장들)

1850년대, 피츠버그의 진흙탕 길을 뛰어다니던 전보 배달 소년 앤드루 카네기를 떠올려 보세요. 당시 미국인 10명 중 6명은 농부였죠. 하지만 단 두 세대 만에 카네기와 그 동료들은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말은 철도로, 촛불은 전등으로, 무거운 철은 단단한 강철로 대체되었습니다.

그 후 노동의 중심은 공장에서 사무실로 옮겨왔습니다. 지금 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며 수백만 지식 노동자를 위한 도구(Notion)를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 ‘테크 바닥’ 사람들은 온통 AGI 이야기뿐이지만, 사실 현장의 데스크 워커들 중 AI를 제대로 체감하는 분들은 아직 소수입니다. 잠들지 않는 지성들이 우리 조직도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미래, 과연 지식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요?

초기 영화들은 연극 무대에 카메라 한 대를 세워둔 것처럼 보였습니다.

미래는 항상 과거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나타나기에 예측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초기 전화 통화는 전보처럼 짧았고, 초기 영화는 그저 연극을 찍어놓은 수준이었죠. (마셜 맥루언은 이를 두고 “백미러를 보며 미래로 운전하는 격”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AI 챗봇이 과거의 구글 검색창과 닮아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우리는 지금 모든 기술 혁명기에 나타나는 ‘불편한 과도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저도 다 알 수는 없지만, AI가 개인부터 조직,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세 가지 비유로 풀어보려 합니다.

1. 개인의 변화: “자전거에서 자동차로”

변화의 첫 단초는 지식 노동의 끝판왕인 프로그래머들에게서 보입니다.

제 공동 창업자 사이먼은 소위 말하는 ’10x 개발자’였지만, 요즘은 직접 코드를 짜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의 모니터를 보면 3~4개의 AI 코딩 에이전트를 동시에 지휘하고 있죠. 이들은 단순히 타자가 빠른 게 아니라 ‘생각’을 하며 코드를 짭니다. 덕분에 사이먼은 이제 ’30~40x 엔지니어’가 되었습니다. 점심 먹으러 가거나 잠들기 전 에이전트에게 할 일을 맡겨두면, 그가 자는 동안 일이 끝나 있습니다. 그는 이제 ‘무한한 지성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된 셈입니다.

1970년대 연구에서 영감을 받은 스티브 잡스의 ‘정신을 위한 자전거’ 비유. 하지만 우리는 수십 년간 정보 고속도로 위에서 페달만 밟아왔습니다.

80년대에 스티브 잡스는 PC를 “정신을 위한 자전거”라고 불렀습니다. 90년대엔 인터넷이라는 “정보 고속도로”가 깔렸죠. 하지만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지식 노동은 여전히 인간의 ‘근력’에 의존합니다. 마치 아우토반 위에서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에이전트 덕분에 사이먼 같은 이들은 이제 자전거를 졸업하고 ‘자동차’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다른 직군들은 언제쯤 이 자동차를 탈 수 있을까요?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코딩 에이전트에 비해서 왜 AI로 지식 노동을 돕는 것은 어려울까요? 그것은 지식 노동이 더 파편화되어있고,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맥락의 파편화(Context Fragmentation)’입니다. 개발 업무는 IDE, 레포지토리, 터미널처럼 도구와 맥락이 대개 한곳에 예쁘게 모여 있는 편이죠. 하지만 일반적인 지식 노동은 수십 개의 툴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AI 에이전트가 제품 기획서(Product Brief) 초안을 잡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슬랙 스레드를 훑고, 전략 문서를 뒤지고, 대시보드에서 지난 분기 지표를 따온 다음, 누군가의 머릿속에만 저장된 ‘사내 히스토리’까지 끌어와야 합니다. 지금은 사람이 일일이 브라우저 탭을 넘나들며 복사-붙여넣기로 이 모든 걸 이어 붙이는 ‘인간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죠. 이렇게 파편화된 맥락들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 한, 에이전트의 활용도는 아주 지엽적인 유즈케이스에만 머물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부족한 퍼즐 조각은 ‘검증 가능성(Verifiability)’입니다. 코드는 참 기특한 속성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테스트와 에러 메시지를 통해 즉시 검증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모델 빌더들은 이 점을 파고들어 AI의 코딩 실력을 키웁니다(강화학습 같은 방식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프로젝트 관리가 매끄럽게 돌아가는지, 혹은 전략 기획서가 잘 뽑혔는지는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인 지식 노동 영역에서는 모델을 개선할 ‘확실한 정답지’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이 루프 안에 남아서 AI를 감독하고 가이드하며, ‘제대로 된 결과물(what good looks like)’이 무엇인지 직접 보여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1865년 적기 조례: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깃발을 들고 걸어야 했습니다. 전형적인 비효율적 ‘휴먼 인 더 루프’의 예시입니다.

올해 우리는 코딩 에이전트들을 지켜보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모든 과정에 일일이 끼어드는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가 꼭 정답은 아니라는 거죠.

이건 마치 공장 라인에서 볼트 하나 조일 때마다 사람이 직접 검수하거나, 자동차가 가는데 그 앞에서 길 비키라고 깃발 들고 사람이 뛰어가는 것(그 유명한 1865년 ‘적기 조례’처럼요)과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인간이 루프 속에 갇혀서 ‘노가다’를 하는 게 아니라, 훨씬 높은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는 지점에서 전체 루프를 감독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맥락의 통합’과 ‘작업의 검증’만 해결된다면, 수십억 명의 지식 노동자들은 자전거 페달 밟기에서 해방되어 직접 운전대를 잡는 단계를 넘어, 결국 ‘자율주행’의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2. 조직의 변화: “강철과 증기”

사실 ‘기업’이라는 조직 형태는 인류 역사에서 그리 오래된 발명품이 아닙니다. 문제는 기업은 규모가 커질수록 효율이 뚝뚝 떨어지다가, 결국 어떤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는 점이죠.

1855년 뉴욕-이리 철도 회사의 조직도. 현대적인 기업 형태와 조직도는 먼 거리에 떨어진 수천 명을 조율해야 했던 철도 회사와 함께 진화했습니다.

수백 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기업은 고작 열댓 명이 일하는 작업장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십만 명이 일하는 다국적 기업의 시대죠. 회의와 메시지로 연결된 ‘인간의 뇌’라는 소통 인프라는 이제 기하급수적인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계층 구조나 프로세스, 문서화로 해결해 보려 하지만, 이건 결국 산업 규모의 문제를 인간 수준의 도구로 풀려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나무로 마천루를 지으려는 것처럼요.

새로운 ‘기적의 재료’가 미래의 조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두 가지 역사적 비유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강철의 기적: 1913년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뉴욕의 울워스 빌딩.

첫 번째 키워드는 ‘강철’입니다. 강철이 나오기 전인 19세기에는 건물을 6~7층 이상 올리기가 힘들었습니다. 무쇠는 강하긴 해도 무겁고 잘 부러졌거든요. 층을 더 올리면 건물이 제 무게를 못 이기고 주저앉아 버렸죠. 하지만 강철이 모든 걸 바꿨습니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하니까요. 뼈대는 가벼워지고 벽은 얇아졌으며, 갑자기 수십 층 높이의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엔 상상도 못 했던 형태의 건축이 가능해진 겁니다.

조직에게 AI는 바로 이 ‘강철’과 같습니다. 워크플로우 전반의 맥락을 유지하면서, 노이즈 없이 필요한 의사결정만 쏙쏙 골라 지원할 잠재력이 있죠.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소통이 모든 무게를 견디는 유일한 ‘내력벽’일 필요가 없습니다. 매주 하던 2시간짜리 정렬 회의는 5분간의 비동기 리뷰가 되고, 세 단계의 승인이 필요했던 결정도 단 몇 분 만에 끝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였던 비효율 없이도, 기업은 진정한 의미의 확장이 가능해집니다.

물레방아를 동력으로 쓰는 공장. 수력은 강력했지만 불안정했고, 입지나 계절의 제약이 컸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증기 기관’입니다. 산업 혁명 초기, 방직 공장들은 동력을 위해 물레방아를 돌려야 해서 늘 강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증기 기관이 처음 나왔을 때, 공장주들은 단순히 물레방아를 증기 기관으로 ‘교체’만 하고 공장의 나머지는 그대로 뒀습니다. 당연히 생산성은 별로 안 늘었죠.

진정한 돌파구는 공장주들이 ‘물(수력)’이라는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이제 굳이 강가가 아니더라도 노동력이 풍부하고 원자재 수급이 쉬운 항구 근처에 더 큰 공장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증기 기관이라는 새로운 동력원을 중심에 두고 공장의 구조(Architecture)를 아예 새로 짰죠. (훗날 전기가 보급되자 공장주들은 거대한 중앙 동력축을 없애고, 기계마다 작은 모터를 배치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더 분산시켰습니다.) 이 지점에서 생산성은 그야말로 폭발했고, 2차 산업 혁명이 본격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앨럼이 그린 1835년, 영국의 방직 공장. 이 공장은 증기 기관으로 가동되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단순히 ‘물레방아만 바꾸는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기존 툴에 AI 챗봇을 그냥 볼트로 대충 조여놓은 수준이죠. 과거의 제약들이 다 사라지고, 여러분이 잠든 사이에도 ‘무한한 지성’이 회사를 돌리는 시대가 왔을 때, 조직의 구조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근본적인 재상상(Reimagine)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저희 노션(Notion)에서도 이런저런 실험을 활발히 진행 중인데요. 현재 1,000명의 직원과 더불어 700개가 넘는 에이전트들이 반복적인 업무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회의록을 작성하고 질문에 답하며 사내에 흩어진 암묵지(Tribal knowledge)를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IT 요청을 처리하거나 고객 피드백을 기록하는 건 기본이고요. 신규 입사자의 온보딩을 돕는 것은 물론, 직원들이 더 이상 ‘복붙 노가다’를 하지 않도록 주간 보고서까지 대신 써줍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단계일 뿐입니다. 우리가 얻을 진짜 결실은 오직 우리의 상상력, 그리고 익숙한 방식에 머무르려는 관성에 의해서만 제한될 것입니다.

3. 경제의 변화 : 피렌체에서 메가시티로

강철과 증기가 바꾼 것은 건물과 공장뿐만이 아닙니다. 도시의 정의 자체를 바꿔놓았죠.

불과 몇 백 년 전만 해도 도시는 철저히 ‘인간의 규격(human-scaled)’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피렌체 같은 도시는 걸어서 40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가로지를 수 있었죠. 삶의 리듬은 사람이 얼마나 멀리 걸을 수 있는지, 목소리가 어디까지 들리는지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다 강철 프레임이 마천루를 가능케 했고, 증기 기관이 철도를 돌리며 도심과 외곽을 잇기 시작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지하철, 고속도로가 그 뒤를 이었고요. 그 결과 도쿄, 충칭, 달라스 같은 도시들이 규모와 밀도 면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런 메가시티는 단순히 ‘피렌체의 대형 버전’이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삶의 방식이죠. 물론 메가시티는 처음 가면 방향을 잃기 쉽고, 익명성이 강하며, 길을 찾기도 훨씬 복잡합니다. 이런 ‘가독성의 저하’는 도시가 규모를 키우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일종의 비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메가시티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은 기회와 자유를 선사했습니다. 인간 규격에 갇혀있던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수많은 사람이, 수만 가지의 조합으로, 훨씬 더 엄청난 일들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이죠.

지식 경제 또한 바로 이런 대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지식 노동은 미국 GDP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규격’에 머물러 있습니다. 수십 명 단위의 팀, 회의와 메일에 맞춰진 느릿한 워크플로우, 그리고 몇 백 명만 넘어가도 삐걱거리는 조직들… 우리는 지금까지 돌과 나무로 피렌체를 짓고 있었던 셈이죠.

하지만 AI 에이전트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우리는 지식 노동의 ‘도쿄’를 건설하게 될 것입니다. 수천 개의 에이전트와 인간이 유기적으로 얽힌 조직, 누군가 잠에서 깨길 기다릴 필요 없이 타임존을 넘나들며 24시간 풀가동되는 업무, 그리고 딱 적절한 수준의 인간 개입으로 완성되는 의사결정들 말입니다.

분명 느낌부터 다를 겁니다. 속도는 빨라지고 레버리지는 극대화되겠지만, 처음에는 꽤 혼란스럽겠죠. 매주 하던 회의, 분기별 계획, 연간 성과 측정 같은 기존의 리듬은 더 이상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리듬이 생겨나고 가독성은 조금 떨어지겠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압도적인 규모와 속도를 얻게 될 것입니다.

물레방아를 넘어

모든 ‘기적의 재료’ 덕분에 사람들이 백미러를 통해 세상을 보는 걸 멈추고,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카네기는 강철을 보며 마천루가 가득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그렸고, 랭커셔의 공장주들은 증기 기관을 보며 강물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공장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아직 AI를 ‘물레방아’처럼 쓰고 있습니다. 사람이 일하던 방식 그대로에 챗봇만 대충 나사로 고정해 둔수준이죠. 이제 AI에게 그저 내 옆의 ‘코파일럿’이 되어달라는 말은 그만해야 합니다. 인간 조직이 강철로 튼튼하게 보강되고, 잠들지 않는 지성들이 모든 잡무를 대신하는 세상에서 지식 노동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를 상상해야 할 때입니다.

강철, 증기, 그리고 무한한 지성. 다음 시대의 스카이라인은 이미 저기서 우리가 지어 올리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 번역/편집 : 에디, Ge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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