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애플 인텔리전스와 결합된) 새로운 시리(Siri)의 출시가 늦어졌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애플이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사람들이 ‘애플엔 더이상 혁신이 없어’라고 말한건 1980년대 초반 부터였습니다. 애플에 대한 흔한 조크이기도 한 동시에 굉장히 진지한 질문이기도 하죠. 애플은 맥(Mac)과 아이폰(iPhone)으로 세상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올해 여름이면 아이폰이 ‘투표할 나이’가 될 정도로(18년차) 오래됐고, 흔히 하는 말로 “그래서 최근엔 대체 뭘 내놨는데?”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주주 입장에서 보면, “어디서 성장을 할 수 있지?”라는 이야기가 되겠죠. 지금 애플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 아이폰은 이미 수년째 정체고, 그 뒤를 이은 아이패드(iPad), 애플 워치(Watch), 에어팟(AirPods) 역시 같은 흐름입니다. 유일한 성장은 서비스 부문에서 나오는데, 현금 창출에는 좋을지 몰라도 주로 기존 고객에게서 수익을 뽑아내는 방식이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넓게 볼까요.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 애플은 무려 세 가지(!) 혁신적이고 카테고리를 정의하는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아이패드, 애플 워치, 그리고 에어팟입니다.
아이패드는 테크 분야에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고(애플 스스로도 키보드나 멀티태스킹 방식을 자주 바꾸는 것을 보면 완전히 마무리된 사업은 아니라고 인정하는 셈이니까요), 시작은 다소 흔들렸으나 지금은 대체로 맥(Mac)과 비슷한 규모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애플 워치와 에어팟 역시 각각 연간 10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사업이 되었고, 이 둘 역시 이미 어느 정도 안정화된 상태로 보입니다. (‘웨어러블, 홈, 액세서리’ 카테고리에는 애플 TV(Apple TV), 홈팟(HomePod), 그리고 케이블·동글·케이스로 이뤄진 꽤 큰 규모의 액세서리 사업이 포함됩니다.)

서비스 부문은 계속해서 성장해 2024년에는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애플이 내놓은 다른 하드웨어 제품들처럼 애플 특유의 혁신이나 특징이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잘 작동하기는 하지만, 특별히 차별화된 점을 찾기 어렵고, 예를 들어 애플 TV+(Apple TV+)는 왜 하는지 의아할 정도로 목적이 분명치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애플 유저에게서 수익을 거둬들이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이중 최소 200억 달러는 사파리(Safari)의 기본 검색 엔진 설정과 관련해 구글(Google)에서 받는 TAC 비용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애플 워치와 에어팟 같은 하드웨어, 그리고 서비스 부문은 결국 아이폰 사용자 기반에서 파생되는 ‘애드온(upsell)’ 형태라는 점에서 공통적입니다. 이들을 묶어서 보면 또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애플 매출의 절반이 아이폰이며, 또 다른 3분의 1이 아이폰 부수 제품들이니, 합치면 80%를 차지합니다. 이는 애플이 (매출을 늘리기보다는) 이윤을 극대화(profit-maximiser)하는 전략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사실 “애플이 요즘 별로 보여준 게 없다”고 말하면, 어느 날 갑자기 애플이 워치나 에어팟 같은 제품을 발표해 비판이 무색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 머릿 속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알게 됐습니다. 애플이 자동차를 만들려고 했던 건 프로젝트 규모가 워낙 커서 비밀로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애플은 공개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관련 내용이 새어 나왔습니다.
또 애플이 XR 분야를 연구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비전 프로(Vision Pro)를 발표했으니 말입니다. 문제는 비전 프로가 당장 출시해도 될 단계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애플이 LLM에 투자한다는 것도 알려졌습니다. 지난여름 WWDC에서 한 시간 넘게 그 이야기를 했죠. 그런데 여전히 핵심 기능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애플이 보여줬던 전형적인 모습이 자동차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합니다. 애플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했습니다. 그 결과는 “아니다”였죠.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며 자동차 산업이 흔들리고 ‘자동차를 누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생겨난 건 분명 애플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애플이 보기엔, ‘멋진 자동차’를 만들 수는 있어도 아직 아무도 풀지 못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전기차(EV) 역시 결국은 그냥 자동차이니, 테슬라(Tesla)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셈입니다. EV 시장이 스마트폰 시장과 달리 안드로이드(Android)의 길을 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요. 경쟁이 치열하고 이윤이 박한 ‘상품화’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애플은 ‘아니요’라며 빠져나온 듯합니다.
이 이야기는 좀 더 일반화할 수 있습니다. 애플은 엄청난 현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현금만 1,400억 달러가 있으며, 2024회계연도에는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만 1,150억 달러를 썼습니다) 애플은 무엇이든 사버리기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애플과 잘 맞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애플이 넷플릭스(Netflix)부터 통신사나 은행까지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전에 저는 “애플이 항공사를 인수해야 한다고 말해 보자. 좌석과 스크린을 더 좋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게 항공사를 운영하는 건 아니다”라며 농담 삼아 말하곤 했습니다.
즉, 애플은 산업의 근본적인 문제를 바꾸거나 새로 정의할 수 있는 분야에 진입해왔습니다.
그 점에서 xR이나 AI는 기술 자체가 근본적이며, 애플이 분명 다른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 만한 영역입니다. 그리고 애플이라면 거기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비전 프로에서 삐끗했고, AI에서는 완전히 넘어졌습니다. 걱정스러운 일이죠.
비전 프로는 예고된 대로 출시되었고 홍보된 대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대중이 쓰기에는 너무 무겁고 부피가 크며, 가격 또한 지나치게 높습니다. 휴고 바라는 이를 ‘개발자 키트를 과도하게 엔지니어링한 것’이라고 비판했고, 어떤 이들은 콘셉트나 실험, 혹은 그저 미리보기라고 말합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안경이나 헤드셋이 스마트폰 이후의 차세대 범용 기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보며, 애플이 여기에 뛰어드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하드웨어가 그 정도로 준비되어 있다고 보는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본래 애플은 준비가 덜 된 물건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최소 기능만 갖춘 제품(MVP)부터 내놓고 개선을 거듭하는 방식을 쓰긴 해도, 원조 아이폰의 경우 3G와 앱 스토어가 없었어도 제가 써본 휴대폰 중 가장 뛰어났습니다. 그것은 콘셉트나 비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미래였지요.
하지만 비전 프로는 콘셉트, 혹은 데모 제품입니다. 애플은 원래 이런 데모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출시했을까요? 이로써 무엇을 얻었는지 의문입니다. 많이 팔 수도 없었고, 많이 팔리지 않았으니 개발자들도 크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내부에서도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번 주 출시가 늦춰졌다고 알려진 ‘새로운 시리(Siri)’는 이와 정반대의 사례처럼 보입니다. 지난해 여름 애플은 이미 구축해 둔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 그리고 아이폰 곳곳에 축적된 개인 데이터와 LLM 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개인 비서를 만들겠다는 분명하고도 설득력 있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애플의 진가였습니다. 최신 기술을 가져와 대중이 쓰기 쉽게 만드는 능력이니까요.
WWDC에서 보여준 핵심 시연은 “엄마 비행기가 언제 도착하지? / 점심 약속은 어떻게 되어 있지? / 공항에서 우리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릴까?” 같은 식으로, 이전에는 컴퓨터가 대답하기 어려웠던 일상 속 복잡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고 답하는 시나리오였습니다. 아이폰은 사용자의 ‘엄마’가 누구인지 알고, 최근 몇 주간 오간 이메일이나 메시지 등의 대화 내역에서 임박한 항공편을 찾아내고, 필요한 데이터를 보여주는 식입니다.

이것은 이제 더 이상 SF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LLM 기술이라면 가능할 법한 기능입니다. 다만 동시에 막대한 엔지니어링 작업이 필요합니다.
애플은 멀티모달, 에이전트(agentic) 모델을 사실상 만들고자 했으며, 대부분 온디바이스 연산(혹은 ‘프라이빗 클라우드(private cloud)’ 연산)에 의존한다고 했는데(정확히 어떤 것이 어디서 작동하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답변을 내놓지 않도록 하거나 아주 강력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사이먼 윌리슨은 여기에 프롬프트 인젝션(prompt injection)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분명 시연을 보였습니다. 그동안의 애플은 보통 거의 다 완성된 것만 시연했습니다. “올해 말 출시”라고도 했고, 애플은 이런 약속을 어긴 적이 거의 없었지요. 그렇다면 지금쯤이면 우리가 쓰고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가 본 것이 ‘작동되는 시연’이 아니라 멋진 콘셉트에 가까웠으며, 이 제품은 2025년 말쯤에나 출시될 수도 있고, 루머에 따르면 2026년이나 2027년까지 밀릴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아…

애플 지도가 떠오릅니다. 애플이 기술적 복잡성을 과소평가하여 미완성 상태로 제품을 내놓았다가 크게 망신당했던 사례이지요. 실제로 완전하지 않은 제품을 출시했고, 그 여파로 리더였던 스콧 포스톨이 해고당했습니다.
이번에는 완성되지 않은 제품을 출시하진 않았지만, 지난 9개월간 애플은 “애플 인텔리전스”를 강조하며 꽤 홍보를 해 왔고, 시리에 새로운 애니메이션까지 넣었으니, 어떤 사람들은 “새 시리가 이미 나왔다는데 기능은 똑같다”며 의아해할 만합니다. 난감한 상황입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지난해 여름 애플이 제시했던 구상 그대로의 결과물을 2026년 혹은 2027년에나 출시한다는 것이 반드시 대형 참사일지도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구글조차 애플이 말했던 기술을 완전히 구현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최근 AI 발전 속도를 보면 1년이라는 시간도 길고, 특히 중국 업체들의 치열한 경쟁과 빠른 기술 도입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애플 인텔리전스’가 가까운 시일 내에 아이폰 판매량을 폭발적으로 늘려줄 카드가 되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이 기술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애플(또는 다른 기업)이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을 선보일 수도 있습니다. 소문으로 돌고 있는 홈 스마트 스크린 기기 역시 이 기능이 있다면 훨씬 매력적일 테고, AR 안경에도 필요한 기술이니까요. 물론 그 역시 아직 몇 년은 남은 일이겠습니다만.
문제는 바로 애플의 실행력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WWDC에서 한 시간 넘게 발표하고 TV 광고까지 찍어놓고도,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을 그저 시연용 베이퍼웨어(vapourware)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겁니다.
비전 프로를 출시하기로 결정한 일도 비슷한 실패처럼 보입니다. 출시가 늦어진 것 자체도 문제지만, 애플이 거의 완성됐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전혀 아니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시리의 실패는 최근 애플이 공언한 것들을 자꾸 늦게 내놓는 흐름들에 대한 어쩐 상징일 수 있습니다. 예전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주기가 시계처럼 정확했습니다. 여름에 WWDC에서 발표하면, 9월에 iOS가 나오면서 발표된 모든 기능이 그대로 포함되곤 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지연된 프로젝트와 실패 사례도 있었을테고(애플 뮤직 부문의 어려움 등), 애플이 몇 년 동안 어떤 제품을 방치하다시피 하는 경우(대부분의 애플 워치 페이스가 새 애플 워치의 주요 기능을 여전히 지원하지 않는 등)도 있지만, 대외적으로 약속했던 것을 번복하는 일은 애플에게는 그동안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부분이 달라져 보입니다. 이것이 윈도우 비스타 시절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전체적인 조직 문화가 흔들리기 시작한 신호일까요.
물론 누군가가 애초에 “어차피 애플은 머신 러닝(과 AI)에서 뒤처질 것”이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도 저는 기억합니다. 지금의 무언가가 잘못되었을 때, 내 그럴 줄 알았다 하는 건 언제나 너무 쉬우니까요.
그렇지만 의문입니다. 2013년 WWDC에서의 그 영상을 다시 보면 아, 그때 그 시절의 애플이 지금도 여전히 건재한걸까. 변한건 아닐까. 의문이에요.
- 원문: 벤 에반스 https://www.ben-evans.com/benedictevans/2025/3/13/apple-innovation-and-execution
- 번역: o1 / 편집: 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