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엑셀을 끊지 못하는가 (번역)

마이크로소프트의 이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는 비싸고, 카피캣인데다, 우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쩌면 역사상 최고의 ‘킬러 앱’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도.

라일라 가라니(Leila Gharani)에게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은 그저 당연히 존재하는 공기 같은 것이었다. 엑셀이 그의 삶을 완전히 장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시 그는 한 대형 제지 제조사에서 공정 최적화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가라니의 설명에 따르면, 미드 <오피스>의 던더 미플린(Dunder Mifflin)에서 볼 법한 업무 환경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곳이었다. 이는 곧 엄청난 시간을 스프레드시트와 씨름하며 보냈다는 뜻이다.

“사실, 엑셀이 딱 켜자마자 ‘오 마이갓 이거 너무 좋아’라고 할 만한 그런 툴은 아니잖아요.”

처음에 가라니는 엑셀을 계산기나 리스트 관리용으로만 썼다. 그러다 점차 고급 기능을 활용해 재무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엑셀 용어(Excelspeak)로 ‘함수’란 문서의 다른 부분에 있는 데이터를 수정하거나 기반으로 삼는 공식을 뜻한다. 가장 단순한 예로는 다른 셀의 숫자를 더하는 SUM이 있고, 더 복잡한 것으로는 전문가들이 공식을 계속 다시 입력할 필요 없이 맞춤형 함수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람다(LAMBDA)가 있다.

요즘 가라니가 가장 좋아하는 엑셀 기능은 파워 쿼리(Power Query)다. 재무 전문가들이 데이터를 엑셀에 넣기 전 깔끔하게 정리할 때 쓰는 기능이다. “아직도 이 기능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그가 말했다.

10년 전, 가라니가 소프트웨어 컨설턴트로 독립했을 때, 그는 일부러 엑셀 실력을 숨기고 오라클의 하이페리온 같은 고급 재무관리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식을 내세웠다. 더 전문적인 기술이 더 높은 보수를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는 스프레드시트에 관한 질문 공세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기업에 오라클 시스템을 교육하러 갔는데도, 사람들의 질문은 그냥 계속 엑셀이었어요. 제가 교육하던 재무관리 부서 사람들은 전부 엑셀로 일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냥 거기 있었어요. 항상 그 자리에요.”


엑셀 팬덤

가라니의 말처럼, 우리 대부분에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은 ‘그냥 항상 거기 있는’ 존재다. 기업 인프라의 중추지만 사랑받지는 못하는 존재 말이다. 현대 직장의 가장 우울한 모습(형광등, 회색 파티션, 허먼밀러 의자)을 떠올려 보라.

아마 컴퓨터 화면에는 왼쪽에 숫자가, 위쪽에 알파벳 대문자가 나열된 그 익숙한 격자무늬와 초록색 테두리의 메뉴 바가 떠 있을 것이다. 엑셀은 좋게 봐도 천장이나 사람들이 많이 밟고 다니는 탕비실 카펫처럼 어디에나 있는 흔하디흔한 업무적 배경이고, 나쁘게 보면 해고나 뼈를 깎는 비용 절감을 조장하는 악의적인 도구다.

로터스(Lotus)라는 선구적인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 회사를 공동 창업한 미치 케이퍼(Mitch Kapor)는 “엑셀이야말로 후기 자본주의 가장 부정적인 면모의 상징체”라고 말한다. “대체 누가 그걸 좋아하겠습니까?”

하지만 엑셀의 그리드를 보며 무한한 잠재력을 발견하는 깨어있는 영혼들도 있다. 가라니는 이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더 이상 평범한 컨설턴트가 아닌 그는 세계 최고의 ‘스프레드시트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라일라 가라니의 유튜브 채널 ‘XelPlus’의 구독자는 300만 명에 육박한다. 일반적인 영상도 수십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10분 만에 설명하는 엑셀 피벗 테이블”, “엑셀 IF 함수: 기초부터 고급까지” 같은 대박 영상들은 가볍게 수백만 조회수를 찍는다.

유튜브 광고 수익 외에도 그는 유료 온라인 강의, 프리미엄 멤버십, 심지어 굿즈 판매로 돈을 번다. 여기에는 “내 시트, 내 규칙(Ma Sheet Ma Rulezz)”이라는 문구가 적힌 47달러짜리 후드티와 “먹고, 자고, 쿼리하고, 반복하라(Eat. Sleep. Query. Repeat.)”라고 적힌 15달러짜리 머그잔도 포함된다.

엑셀을 테마로 한 미디어 비즈니스는 XelPlus뿐만이 아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410만 명의 Your Excel Dictionary, 유튜브 구독자 130만 명의 excelisfun, 틱톡 팔로워 96만 명의 ‘Miss Excel’ 등 수두룩하다.

레딧(Reddit)에는 70만 명 규모의 커뮤니티가 있고, 심지어 엑셀 전문가들이 경쟁하는 e스포츠 리그도 있다. 매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엑셀 월드 챔피언십(Excel World Championship)’은 ESPN을 통해 중계되며 우승자에게는 챔피언 벨트가 수여된다.

이 스포츠(혹은 당신이 원한다면 ‘스포츠’라 부를 수도 있는 이것)의 인기는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24년 챔피언 마이클 자먼(Michael Jarman)의 말이다. (그는 이번 주 엑셀로 종이접기를 모델링하는 챌린지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준 디어뮈드 얼리에게 2025년 벨트를 내주었다.)

“참가자들 기술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졌습니다. 사람들의 실력이 훨씬 좋아지고 있어요. 다들 자신의 람다(LAMBDA) 박스를 미친듯이 다듬고 있죠.”

마이클 자먼 (Michael Jarman)

재무 모델러, 2024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월드 챔피언

“경쟁 엑셀(Competitive Excel) 경기를 얼마나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따라가기가 좀 어렵긴 합니다.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 수억 명의 사람들이 야구를 보지만 야구도 딱히 흥미진진하진 않잖아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까요.

엑셀 사용자가 10억 명은 될 텐데, 그중 대다수는 아마 대부분의 시간 동안 엑셀을 혐오할 겁니다. 하지만 사무실에 꼭 한 명씩 있는 ‘엑셀 광인’ 같은 부류가 확실히 존재해요. 그들은 그냥 엑셀 작업을 즐기는 거죠.

많은 e스포츠가 독성(toxicity)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데, 우리는 정반대입니다. 모두가 친절하고 지식을 나누고 싶어 안달이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엑셀로 공략하는 최선의 방법을 토론할 수 있는, 자신만큼 괴짜인 사람들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그저 행복해하거든요.”


엑셀 생태계

“챔피언 벨트”와 “람다 도구 상자”라는 단어가 나란히 등장하는 게 이상해 보인다면, 엑셀 자체의 질긴 생명력을 생각해보라. 이 소프트웨어의 첫 버전은 40년도 더 전에 출시되었고, 컨설턴트, 소프트웨어 개발자, IT 부서라는 거대한 계층의 뒷받침하는 생태계를 탄생시켰다.

물론 그 배후에는 비즈니스가 있다. 워싱턴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이자 《코드: 실리콘밸리와 미국의 재설계》의 저자인 마거릿 오마라(Margaret O’Mara)는 엑셀의 출시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장을 견인했을 뿐만 아니라(마이크로소프트는 엑셀 출시 이듬해에 상장했다), 개인용 컴퓨터(PC)가 현대 직장의 필수 도구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너무나 널리 퍼져 있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존재죠.” 그는 덧붙여 가라니가 했던 것과 똑같은, 칭찬인 듯 욕인 듯한 말을 엑셀에 던진다. “엑셀은 항상 거기 있으니까요.”

1985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더 휴대하기 좋은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묵직한 구형 PC의 존재감은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엑셀 스프레드시트는 현금 흐름을 모델링하는 헤지펀드 매니저부터 투표율을 예측하는 선거 캠프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핵심 도구로 남아 있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식비 예산을 짜거나, 더치페이 계산을 하거나, 결혼식 감사장 리스트를 관리하는 등 수많은 집안일에 엑셀을 쓴다. “흩어진 정보를 정리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니까요.” 브랜다이스대학교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이자 초기 스프레드시트 개발자였던 피토 살라스(Pito Salas)는 말한다.

“리틀 야구단을 운영할 때도 쓸 수 있지만 펜타곤(미 국방부)을 운영할 때도 쓸 수 있죠.”

농담이 아니다. 올 초 기준으로 미 국방부는 엑셀, 워드, 파워포인트가 포함된 마이크로소프트 365 라이선스 200만 개를 구매했다. 운영체제, 생산성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서비스라는 세 가지 주요 제품군을 묶어 파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구조 때문에 스프레드시트 앱인 엑셀만의 정확한 가치를 산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엑셀 없이는 이 회사의 시가총액이 4조 달러에 육박할 가능성이 ‘0’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2025년 마이크로소프트 365의 기업 구독 매출은 약 880억 달러에 달했고, 기타 고객으로부터 70억 달러를 추가로 벌어들였다.

이 수치들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공시를 종합해보면, 유료 엑셀 사용자는 약 5억 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를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다. 구글의 웹 기반 모방작부터 인공지능(AI)의 거센 위협까지 기업 차원의 도전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아직 어떤 경쟁자도 엑셀의 아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영감 어린 창의성, 열정적인 베끼기, 그리고 철저한 무자비함이 뒤섞인 이야기—는 엑셀의 자리를 넘보는 이들이 마주할 난관을 설명해 준다. 가라니 같은 전문가들 너머에는, 엑셀의 편리함에 중독되었으면서도 엑셀의 철권통치에 짜증을 느끼는 수억 명의 노동자로 구성된 ‘엑셀 경제(Excel economy)’가 존재한다.

그 수십억 달러는 그저 스톡홀름 증후군의 대가일까, 아니면 엑셀이 실은 남몰래 만들어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프트웨어인 걸까?


스프레드시트의 기원

엑셀 관련 레딧(subreddit)에서 역대 가장 인기 있는 게시물 중 하나는 직원 감시 소프트웨어를 피하기 위해 장편 영화를 시트 안에 삽입하는 방법을 설명한 글이다.

작성자는 코드를 이용해 <월-E(Wall-E)>를 다시 보는 동안 마치 스프레드시트 작업을 하느라 몇 시간을 보낸 것처럼 꾸밀 수 있었다. 이는 엑셀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아무리 열성적인 사용자라도 종종 엑셀 말고 다른 짓을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거의 모든 스프레드시트 전문가들은 정기적으로 불만 사항을 접수한다고 했다. 주로 수업 때문에 억지로 엑셀을 배워야 하는 짜증 난 대학생들의 불만이다. 1970년대 후반 애플 II 컴퓨터용으로 최초의 컴퓨터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인 ‘비지칼크(VisiCalc)’를 만든 댄 브릭린(Dan Bricklin)의 말이다.

“마치 ‘아, 스프레드시트 개발한 사람 진짜 극혐’ 같은 반응이죠. 그 친구들에게 좀, 미안하긴 하지요.”

물론 애플 II 이전에도 장부 담당자들은 수 세대에 걸쳐 종이에 스프레드시트 개념을 그려왔고, 짐작건대 그들 역시 이에 대해 애증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훨씬 더 오래되었다. 이라크에서 발견된 기원전 1800년경의 점토판에는 15행 4열의 숫자가 새겨져 있다. 오늘날 다소 시니컬한 컨설턴트들의 선조격인 이름 모를 바빌로니아인이 새겨놓은 계산 흔적일 것이다.

쐐기문자로 쓴 숫자는 낯설지만, 그 형식만은 댄 브릭린이 1978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고안해낸 것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그는 교수가 칠판에 재무 예측 표를 채워 넣는 것을 보며 공책에 따라 적느라 끙끙대던 중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전자 계산기와 워드 프로세서의 장점을 결합한 소프트웨어 도구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전체를 지우고 다시 쓸 필요 없이 표를 수정할 수 있는 도구 말이다. 1978년 수업 과제에서 그가 표현한 대로, 마우스 클릭으로 행과 열을 업데이트할 수 있는 “마법의 종이”였다.

당시 애플 II에는 마우스가 없었지만, <퐁(Pong)> 같은 원시적인 게임을 위한 두 개의 다이얼이 달려 있었다. 브릭린은 초기 버전의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에 이 다이얼을 통합했다가, 나중에 회계사들에게 더 친숙한 화살표 키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와 비지칼크의 공동 제작자 밥 프랭크스턴(Bob Frankston)이 1979년 소프트웨어 판매를 시작했을 때—원래 가격은 99달러였고 얇은 인조 가죽 케이스에 담긴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로 판매됐다—비지칼크는 애플 II를 게이머나 교사들을 위한 틈새 도구에서 최초의 대중 시장용 PC로 순식간에 탈바꿈시켰다.

비지칼크 이전에는 컴퓨터로 재무 모델링을 하려면 프로그래밍 언어를 알아야 했고 메인프레임 컴퓨터에 접속해야 했다. 비지칼크 이후에는 SUM(앞서 언급한 합계), AVERAGE(상상하는 그대로 평균), VLOOKUP(대형 시트 검색 기능) 같은 몇 가지 간단한 함수만 알면 됐다.

“마치 프로그래밍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상호작용형 장난감 같았죠.” 브릭린과 프랭크스턴의 회사인 ‘소프트웨어 아츠’에서 일했고 훗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했던 전설적인 아키텍트 레이 오지(Ray Ozzie)는 말한다. “놀라울 정도로 매혹적이었습니다.”

많은 초기 개척자가 그렇듯, 브릭린은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1970년대에는 소프트웨어 특허가 흔치 않았다. 소프트웨어는 수학이고, 따라서 특허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통념이었기에 그는 비지칼크를 모방작들로부터 보호하려 애쓰지 않았다.

“금전적으로만 보면 특허를 낼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겠죠. 그랬다면 MIT에 ‘게이츠 빌딩’ 대신 ‘브릭린 빌딩’이 있었을 테니까요.”


카피캣 엑셀

이 발언은 많은 사람이 엑셀에 대해 느끼는 양가감정의 두 번째 이유를 암시한다(숫자 그리드가 그냥 좀 지루하다는 단순한 사실 외에 말이다). 엑셀은 뛰어난 발명품이 아니라 뛰어난 모조품이며, 그 인기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선호했던 제국주의적 비즈니스 접근 방식과 영원히 결부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지칼크를 베끼려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첫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게이츠는 비지칼크의 모방작 중 가장 성공한 제품을 복제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로터스 1-2-3(Lotus 1-2-3)였다. 로터스는 각 스프레드시트의 용량을 255행에서 2,048행으로 확장하고 차트 같은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해 IBM 및 IBM 호환 PC 시장의 초기 승자가 되어 있었다.

엑셀은 1983년 마이크로소프트의 한 외부 워크숍에서 ‘오디세이(Odyssey)’라는 코드명으로 태어났다. 원래 계획은 IBM 스타일 PC를 위해 더 나은 버전의 로터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수석 개발자였던 더그 클런더(Doug Klunder)는 “여러모로 문제투성이 프로젝트였다”고 말한다. 클런더 입장에서 문제는 1984년 스티브 잡스가 마우스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갖춘 최초의 저가형 컴퓨터인 매킨토시를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그 화제성—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체적으로 윈도우(Windows) 운영체제 출시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때문에 게이츠는 엑셀의 타깃 시장을 구형 DOS 운영체제를 쓰는 PC에서 맥(Mac)으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엑셀의 출시는 상당히 지연되었고, 클런더는 6개월 동안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지연된 일정과 결정이 내려진 회의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에 좌절한 클런더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소프트웨어 업계를 떠나 농장에서 이주 노동자로 일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돌이켜보면 제가 완전히 번아웃 상태였던 게 분명해요.” 그는 말한다.

오디세이 프로젝트는 클런더가 회사를 떠난 지 두 달 만에 오하이오 밸리 어딘가에서 돈이 떨어진 후에야 다시 궤도에 올랐다.

“농장에서 상추를 땄고 잡일도 좀 했죠. 그러다 가방을 도둑맞았어요. ‘돈이 필요해. 마이크로소프트에 전화해야겠어’라고 생각했죠.”

클런더와 10명의 프로그래머 팀—그리고 소프트웨어를 테스트하고 매뉴얼을 작성하는 소수의 직원들—이 완성을 위해 질주하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케팅 조직이 가동되었다.


엑셀의 등장

1985년 5월, 뉴욕 센트럴 파크의 ‘태번 온 더 그린’에서 열린 출시 행사에 게이츠와 잡스가 나란히 등장했다. 당시 두 사람은 라이벌 관계였고 둘 다 출시에 흥분해 있었지만, 그 이유는 각기 달랐다.

잡스는 엑셀을 로터스가 자체 맥용 스프레드시트를 완성할 때까지 쓸 임시방편으로 보았고, 게이츠는 이를 윈도우를 위한 핵심 애플리케이션으로 여겼다.

이 점을 부각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임원들은 엑셀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심어놓았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기자가 엑셀이 맥 전용으로만 나올 것인지, 아니면 PC로도 출시할 계획인지 물었다.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마이크로소프트 마케팅 임원 제프 레이크스에 따르면, 게이츠는 외교적으로 답하며 “시간이 지나면(in time)” 모든 플랫폼에서 엑셀을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조심한 거죠.” 레이크스는 회상한다.

위협을 감지한 듯 잡스가 받아쳤다. “시간이 지나면, 우린 다 죽고 없을 겁니다.” 게이츠는 청중들이 웃도록 내버려 둔 뒤 무표정하게 덧붙였다. “IBM은 아니겠죠.” 메시지는 분명했다. 게이츠에게 있어 임시방편은 오히려 맥(Mac)이었다. “잡스는 할 말을 잃었죠.” 레이크스는 회상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9월까지 엑셀을 내놓겠다고 공언했기에, 클런더와 그의 팀은 9월 29일 밤을 꼬박 새워 디버깅 작업을 마쳐야 했다. 다음 날 그들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몇 장을 만들어 약 550페이지 분량의 매뉴얼 및 가이드와 함께 워싱턴주 벨뷰에 있는 지역 에그헤드 소프트웨어(지금은 사라진 소매 체인) 매장으로 직접 배달했다.

시작은 소박했지만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1986년 봄, 클런더가 이번에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종주하기 위해 다시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는 다른 등산객들이 엑셀로 일일 주행 거리를 기록하고 식단 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해줄 정도였다.

엑셀이 처음 두각을 나타낸 건 ‘속도’ 덕분이었다. 종이 대신 전자 스프레드시트를 쓰는 묘미는 숫자 하나만 바꾸면 전체 시트를 한 번에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1980년대 초반 PC로는 수만 건의 개별 계산을 빠르게 처리하기가 버거웠다는 것이다. 로터스 헤비유저들은 프로그램이 작업을 마칠 때까지 1분 넘게 멍하니 앉아있어야 했다. 클런더는 ‘지능형 재계산(intelligent recalc)’이라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변경 사항의 영향을 받는 셀만 업데이트하는 알고리즘이었다. 이 변화 덕분에 엑셀은 경쟁사보다 10배나 빠르게 재계산할 수 있었다.

“지금 보면 좀 새삼스럽고 사소한 일처럼 보일 겁니다.” 엑셀 프로그램 관리자였던 제이브 블루멘탈은 말한다. “하지만 당시 컴퓨터가 얼마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렸는지 기억 못 하실 거예요.” (클런더가 이 획기적인 기술의 개발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는 게이츠가 직접 그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고 말한다.)

초기 엑셀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스프레드시트가 종이에 출력되었을 때 어떻게 보일지 화면에서 미리 볼 수 있는 기능이었다. “그건 그냥 좀 쿨해 보여서 넣은 기능이었어요.” 클런더는 회상한다. 블루멘탈은 처음에 이 기능을 없애려 했지만, 클런더 팀의 압박에 못 이겨 받아들였다. 이렇게 탄생한 ‘인쇄 미리 보기(Print preview)’는 훗날 만들어진 거의 모든 데스크톱 출판 소프트웨어의 핵심 기능이 되었다.


엑셀의 확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셀을 정의하는 특징은, 적어도 사용자들의 눈에는 작동 방식이 아니라 ‘보이는 모습’이었다. 1980년대 중반 마이크로소프트 영업 총괄을 맡았고 훗날 CEO가 된 스티브 발머는 “재계산 속도는 사람들이 늘 이야기하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을 정말 사로잡은 건 아니었다”고 말한다.

“진짜 핵심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덕분에 거의 모든 게 더 좋아 보였다는 점입니다.” 발머는 스프레드시트가 대부분의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보다 개념화하기 어렵다며 영업 사원들에게 “시연하고, 시연하고, 시연하고, 시연하고, 또 시연하라(demo, demo, demo, demo, demo)”고 주문했다고 한다.

“상사에게 보여주는 거죠. ‘보세요, 제가 쓰는 건 이런 겁니다. 놀랍지 않나요?’”

발머는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은퇴해 지금은 LA 클리퍼스 구단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스프레드시트 시연의 위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신의 엑셀 파일을 꺼내 보여주었다.

수백 개의 행으로 이루어진 이 파일에는 그가 근무일 매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상세한 회계가 담겨 있다. 선수들과의 미팅, 비영리 단체 업무, 이메일 확인, 운동, 골프, 마사지 등에 쓴 특정 달의 시간이 나열되어 있다. 화장실 가는 시간은 ‘자유 시간(free time)’이라는 행에 포함된다. (이 시트에는 NBA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제)을 맞추는 데 쓴 시간에 대한 언급은 없는 듯하다.)

각 항목에 대해 발머는 지난 몇 년간의 스프레드시트를 기반으로 연간 예산을 책정해 두었다. 모든 시간을 합치면 연간 이론적 근무 시간인 2,080시간이 된다. 그는 업무 출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걸 꽤 기괴하다고 생각하죠.” 그는 약간의 자부심을 내비치며 말한다.

엑셀을 팔아치운 건 인상적인 시연이나 발머의 열정적인 홍보뿐만이 아니었다. 1988년, 훗날 비즈니스 부문 사장이 된 레이크스는 구매자들이 다른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으로 갈아타도록 유도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것이 바로 ‘번들(the bundle)’ 전략이다. 엑셀을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그리고 1987년 1,400만 달러에 인수한 맥용 프레젠테이션 앱 파워포인트와 묶어 파는 것이었다. “제가 그랬죠. ‘저 회사들은 앱 하나당 정가를 495달러로 책정하잖아요. 우리는 앱 세 개를 패키지로 묶어서 두 개 가격에 파는 건 어때요?’

이것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Microsoft Office)가 되었다. 컴퓨터 가게에서 진짜 패키지로 팔리다가, 나중에는 대기업 IT 부서에 사용자당 라이선스로, 그리고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새 기기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컴퓨터 제조사에 판매되었다.

엑셀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속적인 지배력—그리고 결국 합의로 끝난 연방 반독점 소송—의 배후에 있는 오피스 번들의 핵심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번들링을 경쟁 전략으로 사용했고, 경쟁자들은 이를 약탈적이고 불공정한 행위로 보았다.

로터스의 공동 창업자 케이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방 자체는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건 도를 넘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즈니스 관행이었습니다.” 그는 말한다. “빌 게이츠가 무대에서 퇴장하기 전에 그 부분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지길 바랍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의 또 다른 번들링 사례가 1990년대 후반 미국 정부의 반독점 소송에서 문제가 되었지만, 그 시점에 오피스는 이미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시장의 대부분을 사실상 장악한 상태였다.

“로터스는 나름 따라잡으려고 노력했죠.” 브랜다이스대 컴퓨터공학 교수 살라스는 말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라는 괴물이 모두를 가둬버린(lock-in) 겁니다.”

살라스는 복잡한 데이터 세트를 요약해주는 소프트웨어 도구인 ‘피벗 테이블(pivot table)’의 창시자로 스프레드시트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예를 들어, 피벗 테이블은 매장 위치, 판매 제품, 가격 정보가 포함된 소매 체인의 상세 거래 목록을 가져와 지역별 인기 제품 내역을 보여주거나 가장 수익성이 높은 매장이 어디인지 명확히 보여주는 보고서를 생성할 수 있다.

피벗 테이블은 이제 엑셀의 핵심 기능으로 간주된다. 인기 유튜브 채널 ‘Excel on Fire’를 운영하는 인플루언서 오즈 두 솔레이(Oz du Soleil)는 (온라인 교육 회사에서 분석가로 일하던 시절) 이 피벗 테이블이라는 기능을 알게 된 것을 자신의 커리어 궤적을 바꾼 “돌파구”이라고 묘사한다.

그는 권한을 부여받은 느낌, “내가 이 빌어먹을 일을 해낼 수 있다(get the shit done)”는 그 감각을 기억한다. 피벗 테이블은 “많은 사람에게 전환점이 되는 기능”이라고 그는 말한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가 피벗 테이블을 발명한 건 아니다. 살라스는 로터스에서 일할 때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들이 이를 베껴 1994년 버전의 엑셀에 피벗 테이블을 집어넣고 나서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우린 그게 칭찬이자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살라스는 자신의 발명품이 도용되는 것을 지켜봤던 당시를 회상하며 말한다. “젊은 날의 오만이었죠.”

오즈 두 솔레이 (Oz du Soleil)

엑셀 트레이너, 유튜브 ‘Excel on Fire’ 채널 호스트

“제게 진짜 변곡점은 2004년경 콜센터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고객들의 불만을 처리하는 그 일이 정말 싫었죠. 어느 날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제 의자 위에 ‘당신의 통화 시간이 너무 깁니다’라는 데이터가 적힌 종이가 놓여 있더군요. 정말 화가 났습니다. 매일 출근해서 뼈빠지게 일하고 온갖 처리를 다 하는데, 충분하지 않다니요.

그래서 엑셀이라는 걸 열어서 시작 시간, 종료 시간, 카테고리 등 모든 걸 열(column)에 넣었습니다. 그러고는 ‘와, 이거 흥미로운데. 내 하루가 진짜 이런 모습이구나’라고 말했죠. 파이 차트 몇 개를 만들어서—못생긴 차트였죠, 아직 공식도 못 썼으니까요—회사 사장에게 요약본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저를 진지하게 대하더군요. 게으르고 불평 많은 직원으로 치부되지 않고 데이터를 가짐으로써 얻는 힘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사장이 저를 사무실로 불러 질문을 하더군요. 제 상사와 이사는 알게 되고서 기분 나빠했지만, 전 갑자기 일약 골든 보이(golden boy)가 되었습니다.”


엑셀의 도전자들 – 구글 시트와 AI

그 이후 엑셀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두 번 있었는데, 각각 새로운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부상과 관련이 있다. 첫 번째는 클라우드 컴퓨팅이었다. 이를 통해 스프레드시트를 데이터 센터에 저장하고 웹을 통해 접속하며 여러 사람이 동시에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

2006년, 이미 웹 검색을 장악하고 이메일을 접수 중이던 구글은 ‘XL2Web’이라는 웹 기반 엑셀 모방 버전을 인수했다. 구글은 이를 ‘구글 시트(Sheets,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리브랜딩 하여 무료로 배포했고, 지메일 주소만 있으면 누구와도 스프레드시트를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오늘날 엑셀과 구글 시트는 거의 구별이 안 될 정도이며, 시트는 포틀럭 파티 참가 신청서나 학부모 연락망을 공유하는 기본 방식이 되었다.

“처음에는 좀 충격을 받았어요.” 전 마이크로소프트 임원 블루멘탈은 말한다. “‘맙소사, 이 아이디어를 그냥 훔쳤잖아’라고요. 사실 참고로 저도 엑셀 첫 버전을 만들 때 똑같이 했지만요.” 그는 시트가 이제 “엑셀 사용자의 99%가 사용하는 기능의 99%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스프레드시트가 복잡하거나 민감한, 혹은 ‘복잡하게 민감한’ 데이터를 다룰 때 꼭 원하는 방식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스프레드시트에 입력하는 많은 데이터가 바로 그런 경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PC 소프트웨어 지배력에 따른 ‘잠금 효과(lock-in)’도 있었다.

“우린 구글 시트가 엑셀을 죽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죠.” 비지칼크(및 로터스) 출신이자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석 소프트웨어 아키텍트를 지낸 레이 오지는 말한다.

2000년대 후반, 대부분의 기업은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번들에 매년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 즉, 구글 시트로 갈아타서 돈을 아끼려면 아웃룩, 파워포인트, 워드까지 다 버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런 관성에는 심리적인 요인도 있었다. 우리는 싫든 좋든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에 익숙해져 버렸다. 실리콘밸리 역사가 오마라는 엑셀의 생명력이 부분적으로 “구매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경영진의 숙취(managerial hangover)’”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전 X세대예요. 우리 세대는 마이크로소프트 제품군에 우스울 정도로 집착하죠. 제 학생들은 전부 구글 독스를 써요. 제 젊은 편집자들과 협업자들도 다 구글을 쓰고요. 저만 여전히 워드를 씁니다.”

엑셀의 지배력에 대한 두 번째 심각한 도전은 더 최근에 등장한 챗GPT와 다른 AI 챗봇들이다. 이 봇들은 그리드를 쳐다보며 조작하는 수고 없이도 방대한 양의 정보를 즉시 이해하고, 새로운 전략을 제안하며, 트렌드를 포착하고, 심지어 완성된 사업 계획서까지 뱉어내겠다고 약속한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이 약속을 실제로 이행하는 실적은 들쭉날쭉하다.)

엑셀의 일부를 복제하거나 전체를 대체하려는 스타트업들만 수십 개에 달한다. 올여름 테크 뉴스 사이트 <디 인포메이션>은 오픈AI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번들과 직접 경쟁할 오피스 제품군을 개발 중이라고 보도했다.

라요우프 알후메디 (Rayouf Alhumedhi)

디자이너 겸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 투자자, 온라인 에세이 “스프레드시트가 위대한 이유” 저자

“스프레드시트는 투자자로서 제 업무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매출 빌드, 고객 모델링, 캡 테이블(cap table) 등을 돌려야 하니까요. 저희 교육 세션은 순전히 엑셀로만 진행됐어요. 업무의 정량적인 부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죠.

하지만 스프레드시트에 대한 제 사랑은 화이트칼라 업무가 아닌, 온갖 ‘변칙적인(rogue)’ 사용 사례에서 비롯됩니다. 일본의 사진작가 사이토 유타로가 엑셀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스프레드시트가 위대한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합니다. 놀라운 숫자 계산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이 작은 소프트웨어 하나로 온갖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얼마나 미치도록 아름다운 일인가요?”

아직 이러한 노력 중 어느 것도 확실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수많은 AI 스프레드시트 기업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벤처 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파트너 알렉스 이머먼(Alex Immerman)은 말한다.

“그런데 그들 모두 엑셀이라는 개념 위에 구축되어 있습니다.” 즉, 대부분의 ‘엑셀 킬러’들이 현재로서는 모방작이거나 엑셀 호환 스프레드시트 작성을 돕는 애드온(add-on) 수준이라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이기도 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메인 챗봇인 코파일럿(Copilot)은 엑셀 내부에서 실행되며, 기존 스프레드시트에 더 정교한 계산을 쉽게 추가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엑셀(및 윈도우와 다른 오피스 앱)을 총괄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임원 라제시 자(Rajesh Jha)는 엑셀 월드 챔피언십에서나 볼 법한 수준의 전문성을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AI가 스프레드시트를 죽일 것이라는 주장에 회의적인 이유들도 있다. 챗봇의 대규모 언어 모델(LLM)은 일반적으로 간단한 계산에 어려움을 겪으며, 풀이 과정을 보여주는 데 악명 높을 정도로 서툴다.

레딧 엑셀 포럼에서 ‘Frescani’라는 아이디로 운영진을 맡고 있는 데이터 분석 매니저 닉 프레스카스는 “매일의 업무에서는 실제 유용한 AI 통합 기능보다 사람들의 ‘감(vibe)에 의존한’ 프로젝트를 쳐내느라 더 많은 시간을 씁니다”라고 말한다. “사람이 데이터를 직접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내면화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거든요.”


여전히 엑셀은 아주 잘나간다. 가장 최근 분기, 마이크로소프트 365의 엔터프라이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고, 엑셀이 포함된 소비자용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번들 매출은 28% 증가했다.

엑셀 경쟁사에 투자할 기회에서 “엄청난 기회”를 본다는 투자자 이머먼조차 마이크로소프트의 40년 된 스프레드시트 앱에 여전히 매료되어 있다. 그는 초등학생 때 간단한 계산을 위해 엑셀을 처음 썼고, 결국 막대그래프로 넘어갔다. 대학에서는 반복 계산, 조건부 수식, 매크로, 플러그인까지 섭렵했다.

“엑셀은 파도 파도 계속 더 깊게 파고들 수 있어요. 매일 엑셀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저도 그 가능성을 다 알진 못합니다.”

벤처 캐피털 업계에 들어오기 전, 이머먼은 투자은행 앨런 앤 컴퍼니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그는 당시 하루 중 엑셀을 쳐다보며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 창피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제겐 슬랙이나 이메일과 함께 매일 종일 켜져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소통 수단이죠. 엑셀이 ‘진짜 일(actual work)’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소통과 업무 사이의 이 구분이야말로 왜 어떤 분야에서는 엑셀이 단순히 용인되는 것을 넘어 기이하게도 사랑받는지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엑셀은 종종 영혼을 파괴하는 조직과 사무실의 상징으로 쓰입니다.” 블루멘탈은 말한다. 하지만 그는 엑셀이 “영혼을 파괴하는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수행하는 가장 영감 넘치고 독립적인 작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창의성과 독립성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엑셀은 특정 유형의 노동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정의인 동시에, 그 일을 성취감 있게 만드는 큰 부분인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엑셀 인플루언서인 가라니조차 엑셀과의 관계를 묘사할 때 ‘사랑(Love)’이라는 단어는 피한다. 유용하고 고맙긴 하지만, 내일 당장 엑셀이 사라진다면 그는 엑셀을 죽인 그 AI 기반 앱 사용법을 가르치는 쪽으로 갈아탈 것이다.

엑셀은 충분히 역할을 했다. “아주 하드코어한 엑셀 광신도들이 있다는 건 알지만, 저는 엑셀을 결국은 도구로 봅니다.” 가라니는 말한다.

“엑셀은 일을 해결하는 것이니까요. 만약 더 나은 도구가 나온다면, 그냥 그런 거죠(that’s the way it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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