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뭐여 무비패스, 영화관 계의 넷플릭스 될거라며..

2011년 처음 시작된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꽤 오랜 기간 비리비리하던 이 서비스는, 2017년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지며 시장의 반향을 일으키는데 성공합니다. 바로 월 9.95불이면 무려 하루에 한 편씩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요금제를 출시해서, 한 달 만에 1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무비패스 이야기입니다.

월 요금이 우리돈으로 만이천원 정도 하니, 하루에 한 편이 아니라 한 달에 한 편만 봐도 본전입니다. 막 앱으로 인증하고 영화관에서 보여주고 할 것도 없이, 결제 방식도 간단했어요. 요금제에 가입하면 무비패스가 직불카드를 보내주고(!), 그걸로 영화관에서 긁으면 되었으니까요. 그야말로 꿀딜이었죠.

2018년 여름에는 가입자가 300만명에 달했습니다. 미국 전체 영화관 지출의 5%을 점유할 때도 있었죠. 하지만, 이 무비패스가 결국 백기를 들고 지난 토요일(14일) 자로 문을 닫았습니다. 서비스는 다시 재개할 기약이 없습니다.

사실 뭔가 나쁜 징후가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계속 하락하고 있었죠. 7천만불의 투자를 받기는 했지만 비용구조를 버티지 못해 자금사정이 계속 좋지 않았어요. 하루에 하나 볼 수 있었던 멤버 혜택도, 한 달에 세 편으로 줄어들었고요. 최근에는 고객의 카드정보 유출 사고도 있었습니다. 유료회원 수는 20만 정도로 줄어있던 상황이었습니다.

2017년 사업의 큰 승부수를 띄우며 극장영화의 넷플릭스가 되겠노라 선언하던 무비패스는, 반짝 스타트업에 그치고 사라지게 생겼습니다. 왜그랬을까 생각해보면,

  1. 아니 왜 정산을 소비자가로: 이 무비패스의 정산 체계는 좀 이상해요. 영화관 체인이랑 딜을 맺어서 원가 수준에서 거래를 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영화관에 내는 소비자가격을 무비패스가 전액 부담하는 구조입니다. 극장들과 하나하나 딜을 맺으면 속도가 안날테니 저런 정산방식을 도입했을 것 같습니다만, 이건 너무 말이 안되는 구조에요. 소비자가를 부담하는 정산이 세상에 어딨어.
  2. 상품기획이 너무 정직했어요: 멤버십/ 월정액 상품의 핵심은 낙전(꽁돈)입니다. 가입해놓고 안쓰는/ 덜쓰는 사람이 필요해요. 동네 헬스장 가격 꿀같지만, 안가잖아요. 비슷해요. 누군가 몇몇은 아주 착실하게 이용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다수가 그 뒤를 받쳐줘야 이 상품은 생존합니다. 하지만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가격도 정산구조도 엉망이고요. 낙전이 생길 수가 없죠.
  3. 극장영화 시장은 키울 수 있는 판인가: 가장 치명적입니다. 무비패스는 ‘아마존도 20년간 적자였다’라고 정신승리 했다는데, 그건 온라인 커머스가 20년간 미치게 성장했기 때문이에요. 우버나 리프트도 적자에요. 넷플릭스도 계속 외부 자금을 조달하며 콘텐츠 투자를 하고 있어요. 근데 왜 저들은 괜찮을까요.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스케일이 만들어질 것이라 보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극장영화는.. 그렇다고 보기 어렵죠. 이미 턱까지 찼어요.

월정액을 베이스로 하는 구독 모델, 멤버십 모델은 한 번 만들어지면 아주 강력합니다.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제품을 테스트/홍보할 수 있는 팬덤이 되기도 하죠.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이나 애플의 거대한 구독 생태계, 혹은 코스트코를 생각해보면 쉬워요. 특히 모바일 이후 자동결제를 걸어놓기가 쉬워져서, 이 모델을 시도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구독이라는 건 어느 정도 덩치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의미를 갖기 어려운 모델입니다. 그리고 그 덩치를 만드는 일은.. 음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습니다만 일단 ‘그 판이 덩치를 만들 수 있는 판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더 우선이에요.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무한히 많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영화를 보는 인구는 어느 정도 정체, 그들이 한 해에 보는 영화 편 수도 어느 정도 정체에요. 영화 시장은 크게 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케이블과 OTT 시장이 성장하면서 외연이 작아지고 있다고 봐야겠죠. 오히려 하락을 걱정해야 할 시장인 영화판은, 이미 한정된 시장을 두고 서로 뺏고 뺏기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 벌어진지 오래입니다.

넷플릭스가 원래 OTT를 안보던 사람들을 끌어들여 판을 키우고, 우버가 원래 버스타던 사람을 끌어들여 판을 키웠듯, 무비패스도 원래 영화관 안가던 사람을 끌어들였어야 했습니다. 근데.. 대충 봐도 저건 저런거 없어도 영화관에 꼬박꼬박 다니던 사람이 돈 아낄려고 하는 거잖아요. 아니 왜 디즈니가 자체 OTT를 한다고 하는데..

급성장하는 시장에서 출혈경쟁하는 것도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는데 정체하는 시장에서 출혈경쟁이라니..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RIP 무비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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