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타임즈에 이 글을 특별기고한 맥스 브룩스는 <월드워Z>와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등을 쓴 작가입니다. 이바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글은 아니지만, 생각해볼 주제라 생각하여 번역& 공유합니다.
번역자 뤽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는 마치 감정적으로 요동치는 그런 –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지만 이 용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주: 해외에서는 코비드19, 국내에서는 코로나19로 지칭)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을 설명하는 공중 보건 용어입니다.
미국 질병예방본부에 따르면 이 새로운 병원체는 ‘약 180센티 이내의 거리에서 접촉한 사람들 사이에 확산’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접촉들이, 이 바이러스를 지구 전체에 퍼트려 (3월 11일 현재) 적어도 4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감염시켰습니다. 백신 혹은 그에 준하는 치료법이 개발될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확산을 늦추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여행 및 입국금지는 구조적으로 너무 늦은 대응일 수 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의 감염증상은 단순한 감기 혹은 독감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이 바이러스의 잠복기가 14일이라는 점입니다. 보균자는 무언가의 증상이 일체 발현되지 않은 채로 바이러스를 옮길 수도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주에서 이미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보건당국은 일부 보균자가 6주 전부터 바이러스를 확산시켰다고 보고 있습니다. 무증상 잠복기의 존재는 공항에서의 검사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시점에도 체온이 36.5도라면, 사실 열 감지기는 유명무실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스크나 장갑과 같은 보호장비도 충분한 효과를 갖기 어렵습니다. 올바른 사용법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이죠. 마스크는 확진자 혹은 그들과 직접적으로 대면하여 돌보는 이들이 착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감염되지 않은 이들이 땀/숨에 젖어 뜨거운 마스크를 공공장소에서 착용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마스크를 끼거나 벗기 위해) 얼굴에 (바이러스가 있을지 모르는) 손을 더 자주 대기 쉽습니다. 장갑을 끼는 것에도 같은 아킬레스 건이 있죠.
우리의 눈, 코, 입을 만지기 직전에 (마스크나 장갑을 벗기 위해) 감염된 표면에 손을 대야한다면, 사실 마스크나 장갑을 착용하는 의미가 감소됩니다. 밖에서 장갑을 끼었든 그렇지 않았든 어쨌든 손을 멸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손을 씻는 것은 정말 중요한 방어책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그 방어책인 것은 아닙니다.

‘지역사회 확산’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역사회 내의 거리를 확대하는 일입니다.
지역사회의 사람들 사이 간격을 벌리는 일이죠. 더 이상 악수도, 단체사진도, 코믹콘의 코스프레의 ‘프리허그’도 없이 말이에요. 당분간은 코믹콘 자체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각종 컨벤션이나 콘서트, 어찌되었든 많은 사람을 모으는 축제들 전부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죠. 일상이 와해될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위험을 가져오겠죠. 작가인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고통스럽지만요.
저는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고, 사인회에서의 인증샷을 하나씩 쌓아오며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밟아왔습니다. 올 봄에도 출간 예정인 소설이 한 권 있습니다. 전국을 돌며 북토크를 하는 것은 이전의 모든 책들이 그렇듯 이번 책의 성공에도 핵심이겠죠. 하지만 그 투어 자체가 취소될지 모릅니다. 이미 두 건의 행사가 취소되었어요.
이번 소설 <디볼루션Devolution>에는 (록키산맥 일대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 전설의 동물) ‘빅 풋’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 쪽 지역을 가지도 못할 것 같아요.
그럼 어떡해야 할까요. 아흔이 넘은 아버지와 함께 사는 제가, 전국을 돌며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요? 한 공간에 수 많은 독자를 모아 북토크를 계속 진행해야 할까요? 저는 작가고, 한 번에 하나씩 책을 내어 먹고삽니다. 어쩌면 작가란 ‘사회적 거리두기’에 끝까지 반대해야 해야 할 이들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동시에 고증에 충실한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사회적 거리두기’의 역사적 팩트에 대해 한 번 짚어볼게요.

1918년 필라델피아, 1차 대전의 승전 퍼레이드가 있었던 때 입니다. (전장에서 막 돌아온 이들이 가져온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보건 당국은 이를 무시하고 퍼레이드를 허용했습니다.
사흘 후 시내의 병상은 환자들로 가득찼습니다. 일주일 만에 4만 5천 명이 감염되었습니다. 6주 만에 1만 2천명이 사망했습니다. 1918년 인플루엔자, “스페인 독감”의 치사율은 2.5%였습니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의 치사율을 이보다 높은 3.4%로 추정합니다. 이런 대규모의 사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섭습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역사의 비극 뿐만이 아니라, 승리에서도 배울 수 있죠. 제 세대는 신종 전염병인 에이즈의 공포로 떨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교육과 문화적 포용, 의학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이를 성공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에이즈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것을 넘어 공포 그 자체일 때, 우리의 승리는 실험실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팸플릿에서 나왔죠. <에이즈 이해하기>라는 이름을 가진 이 문서는 미국의 거의 모든 가정에 우편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팸플릿 덕분에, 그리고 안전한 성에 대한 적극적이고 전국적인 교육이 이루어진 덕에, 우리 세대는 사랑을 나누는 것을 포함한 그 어떤 것도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스스로 적응했습니다. 지금도 그럴 수 있습니다. 아니, 해야만 하죠. 전장에서 그렇듯, 모두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거리를 벌려 지역사회 확산을 지연시킬 때, 과학과 산업은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식량과 붕대, 총알을 챙겨 벙커에 들어가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물론 아니죠. 공포는 준비가 아닙니다. 비상 상황에서의 우리의 계획은 질병예방본부와 같은 전문가들의 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동시에 날카롭게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낙인찍고 혐오하는 것에 대해 말이죠. (에이즈라는 것이 처음 알려졌을 때를 생각해볼까요)
미국에 이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부터, 우리는 공포가 우리의 영혼에 어떤 추악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경험했습니다. 남부 캘리포니아에서는 그 누구도 감염되었다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계 미국인이 다니는 학교의 폐쇄를 요청하는 탄원이 잇따랐습니다. 뉴욕에서는 마스크 차림의 아시아계 여성이 자신을 ‘감염자’라 부르는 남성에게서 폭행을 당했습니다.
공포가 불러온 이 편견과 혐오는, 코로나19와 싸우는 우리의 전쟁에 절대 있어서는 안됩니다.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 자리에서 역할을 다해서, 우리의 일상을 곧 다시 이어갈 수 있기를요. 책 사인회와 같은 신나는 행사를 다시 할 수 있기를요. 제가 손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음, 2미터 쯤 떨어져서요.
– 맥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