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글을 떠난 이유: 균형 (번역)

*무너진 균형을 찾기 위해 구글을 떠나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스캇 케네디의 회고를 번역했습니다.

10년 동안 몸담았던 일터, 구글을 떠났습니다. 몇달 전 40명 정도 규모의 스타트업 ‘Replit’ 으로 이직했어요. 

그때는 제게 이 변화가 왜 필요했는지, 마음의 확신은 있었습니다만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글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쓰다보니 과연 생각을 정리하는데 꽤 도움이 되네요. 


균형. 제가 구글을 떠난 이유였습니다. 

저는 2011년 초에 구글에 합류했습니다. 래리 페이지가 CEO로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던 즈음이었죠. 모두 ‘에머랄드 씨’라는 극비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던 때였습니다. (주: ‘에머랄드 씨’는 구글 플러스의 프로젝트명이었다) 매주 금요일에는 TGIF 미팅이 열렸고 모두가 현장에 모였죠. 

꿈의 직장이었습니다. 구글은 정말 저에게 너무 잘해줬어요. 엄청난 동료들과 롤 모델이 있었습니다. 저와 가족의 재정 상태도 아주 나아졌죠. 꽤 꾸준히 승진을 했고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 환경이 아주 잘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불행했던걸까요

언젠가 인생의 균형을 물이 채워진 세 개의 양동이에 비유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하나는 커리어, 또 하나는 신체의 건강, 마지막은 사회생활/가정생활입니다. 

세 개 중 하나는 어느 시점에서 말라버릴 수 있겠지만 양동이 전체의 물이 충분하다면 괜찮다는, 그런 비유였죠. 

중요한 것은 양동이에 채워진 물이라는 것은 당신의 만족도를 나타내는 지표라는 것입니다.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느냐가 아니라 말이죠. 

바로 그 이유로, 저는 소위 말하는 ‘용퇴’를 선택했습니다.

2020년 팬데믹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번째 양동이(사회생활/가정생활)가 파괴되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고향인 캐나다로 돌아간 친구들이 더이상 저희 집에 놀러오지 않았어요. 동네 친구들이랑 만나는 것조차 힘들어졌고요. 

2021년 1월에는 동네에서 재미삼아 농구를 하다가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어요. 두 번째 양동이가 파괴되는 순간이었죠.


그제서야 저는, 제 첫 번째 양동이도 한참동안 부서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021년 중반까지 전 항상 피로를 달고 살았어요. 저만 그런게 아니라는 걸 당연히 알고 있었어요. 구글 내부에서는 정말 많은 구글러들이 피곤함을 토로하는 밈을 만들어 공유하곤 했으니까요. 

그때서야 깨달은 진짜 문제는, 바로 제가 무언가를 만들고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그 만족감을 정말 그리워했다는 점입니다.

구글 같은 큰 회사에서 뭔가를 만들어내고 해결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수많은 팀과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고, 모든 사람들을 설득해 한 배를 태우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이게 프로젝트를 산으로 가게 할수도 있습니다. 유관부서 중 하나만이라도 도중에 방향성을 바꾼다거나 처음에 보여줬던 열의만큼 실제 업무에 투입을 하지 않으면, 프로젝트는 쉽사리 동력을 잃거나 좌초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빈도는 계속 늘어만 갑니다. 물론 이유는 다양하죠. 팀끼리 업무 스콥 조정이 안된다거나, 경영진은 방향성에 대해 별로 동의하지 않는데 중간 관리자들이 멋지고 근사한 OKR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다 잘 될거라고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도록 만들어 버린다거나. 

뭐 조직은 계속 개편되고 중간관리자들도 꾸준히 회사를 떠나니까 일년에 몇번이고 윗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걸 다 알죠. 그런 상황에서 용퇴란 오히려 선순환의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어요.


2021년 저는 제가 가진 에너지 대부분을 팀을 지키는 데 썼습니다. 혼란 속에서 팀원들이 그토록 원했던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길 바랐어요. 

혹시나 조직 개편이 일어나 우리 프로젝트에 악영향을 가져오는 건 아닐지, 유관 부서에 새 리더라도 오면 프로젝트를 취소시켜버리는건 아닐지 노심초사하면서 엄청 스스로를 쥐어짰습니다.  

그런데 9월 조직개편으로 대규모 물갈이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전보다 분명 일하는 시간은 적은데, 그 어느때보다 적은 시간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번아웃이 와버렸어요.

그 때 결심했습니다. 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이런 문제들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작은 곳에서 일하는 것이었어요.  


작은 곳으로

2021년 중반즈음 해커뉴스에 올라온 게시물과 폴 그래이엄이 올린 트윗들을 통해 지금 다니는 회사인 Replit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품이 가진 잠재력이야 뭐 즉시 이해할 수 있었죠. 그때 제가 가졌던 초기의 아이디어들이 점차 실제로 구현되어 세상에 나오고 있었어요.

CEO는 트위터에서 꽤나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있었고 어느 순간 그의 의견들에 동의하고 있는 나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구글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그에게 연락을 해봤어요.

저는 지난 5년간 정기적으로 코딩을 하지는 않았었어요. 다행스럽게도 인터뷰는 꽤 실무 중심적이었고 저녁시간과 주말은 인터뷰를 준비하며 제가 가진 스킬들을 가다듬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합격하고 처우 협상을 할 때는 딱 세가지에만 신경썼습니다.

  • 내가 신나게 맡을 수 있는 역할일 것 (타이틀이 아니었습니다. 역할이었죠)
  • 세금 내고 공과금 낼 수 있을만큼의 급여 (제가 사는 동네는 생활비가 너무 비싸요)
  • Replit 에 대해 내가 품기에 적합한 기대감만큼의, 구글을 떠날 수 있는 만큼의 주식

처우 제안을 수락했을 때, 즉각적인 안도감과 흥분의 물결이 몰려오더군요. 어려운 결정을 할 때는 직감을 따르라고 조언하는 편인데요. 잘 된 일이었죠. 제 직감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행복하냐구요? 행복해요. 이론의 여지 없이요.

일하는 시간은 더 많아졌어요. 저녁이나 주말에도 일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고요. 그렇지만 제가 일한 만큼 눈에 보이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진행 속도가 한 10배는 빨라진 기분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에너지가 더 생겼다는 겁니다. 헬스장에 갈 마음도 자주 생기고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힘이 납니다.  

양동이에 물이 가득찹니다. 그 물은 다른 양동이를 채워줄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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