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점프’는 어떻게 세계 최고의 망가 공장이 되었나 (번역)

‘나루토’, ‘원피스’ 같은 시리즈가 탄생했던 이 잡지는 어린 재능들로부터 히트 프랜차이즈를 이끌어내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그 다음 주자는 <카구라바치>를 그린 24세의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

마감일이 임박하면, 사실 거의 항상 그렇지만, 도쿄에 있는 작가 호카조노 타케루(Takeru Hokazono)의 원룸 아파트는 미로처럼 변하기 시작한다.

벽은 휑하지만, 바닥은 무릎 높이까지 쌓인 종이 더미, 조립 모형 키트, 뜯지 않은 소포, 책이 담긴 봉투들로 뒤덮여 있다. 이 잡동사니들 사이로 난 길을 통해서만 겨우 움직일 수 있다.

이 난장판의 중심에는 호카조노의 책상이 있다. 내가 2월에 그를 방문했을 때, 그곳은 만화책, 빈 커피컵, 구겨진 아침 식사용 시리얼 바와 야식 포장지 같은 잡동사니들로 어지러웠다. 이 어수선함은 텔레비전 화면만 한 와콤(Wacom) 태블릿 주변이 절정이었고, 그 위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호카조노는 스물 네 살의 만화가다.

그날 저녁, 그는 담당 편집자 이마무라 타쿠로(Takuro Imamura)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창작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호카조노가 마무리하고 있는 이 원고는 곧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 잡지인 ‘주간 소년 점프(Weekly Shōnen Jump)’의 백만 명이 넘는 열렬한 일본 독자들에게 소개될 것이었다.

훨씬 더 많은 독자들이 잡지의 디지털 버전인 ‘소년 점프 플러스(Shōnen Jump+)’나 전용 앱을 통해 이 원고를 접하게 될 것이다. 앱에서는 최대 9개의 다른 언어로 번역이 제공되어 전 세계 약 5백만 명의 사용자가 작품을 볼 수 있다.

스물네 살인 호카조노는 어두운 색 후드티와 운동복 바지 차림이었다. 수건 재질의 헤어밴드로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검은 머리를 넘긴 그의 모습은 예술가라기보다는 밤새 클럽에서 놀고 회복 중인 아이 같았다.

얼마나 오래 깨어 있었냐고 묻자, 그는 지난 24시간 동안 겨우 두 시간을 잤다고 말했다. 원고 마감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놓쳐서는 안 됐다. 편집자 이마무라는 이 마지막 분투에 힘을 보태기 위해 도시락을 포장해 왔다.


스물일곱 살인 이마무라는 이 관계에서 연장자로, 이미 세 개의 주요 시리즈를 담당한 업계 베테랑이다. 그중에는 2024년에 완결된 호리코시 코헤이(Kōhei Horikoshi)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편집자로 일했던 경력도 포함되어 있다.

훈련 중인 어린 슈퍼히어로들을 위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 시리즈는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마무라는 자신의 새로운 담당 작가에게 그에 못지않은 성공을 바라고 있다.

이마무라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주간 소년 점프’의 출판사인 슈에이샤(集英社, Shueisha)에 입사했다. 그는 만화가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저는 스토리를 사랑했어요.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모두요.”라고 그는 말했다.

‘점프’의 편집자들은 단순히 편집에 대한 조언을 넘어선 역할을 기대받는다. 그들은 작가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종종 조언자나 심지어 개인 비서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매주 높은 수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만화가에게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부담을 줄 수 있으며, 많은 작가들은 다른 일에 신경 쓸 시간이 거의 없다.

코너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복싱 코치처럼, 이마무라는 조언을 하거나 음식과 음료를 공급하는 등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호카조노를 지원한다. 이마무라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기여가 “편집 회의와 마감일을 확실히 지키도록 하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점프’는 코미디와 드라마, 두 부문으로 나뉜 반기별 공모전을 통해 일본 전역에서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며, 이 공모전에는 도전할 배짱이 있는 아마추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더 대담한 창작자들은 ‘지참 방문(walk-ins)’—편집자에게 직접 작품을 소개하는 약속—을 잡을 수도 있다.)

각 부문 1등 수상자는 약 13,500달러에 해당하는 상금도 받지만,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보상은 잡지에 작품을 게재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1971년부터 개최되어 ‘원피스(One Piece)’와 같은 세계적인 히트작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온 공모전과 지참 방문, 그리고 다른 계획들을 통해 ‘점프’는 정기적으로 연간 천 건 이상의 투고를 받는다.

‘주간 소년 점프’의 ‘소년(shōnen)’은 ‘남자아이들’을 의미하며, 독자층도 그에 맞춰 젊은 층에 치우쳐 있다. 독자 대다수는 10대와 20대 초반이다. 잡지 작가 대부분도 비슷한 나이에 데뷔한다.

호카조노는 열아홉 살이던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대학 강의가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실내에 갇혀 지낼 때 ‘점프’ 공모전에 참가했다. 신화 속 동물의 힘을 빌려 싸우는 두 젊은 무술가에 대한 그의 투고작 ‘엔텐(炎天, Enten)’은 2위를 차지했다.

“기발했어요.” 우리가 부엌에 서서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고 호카조노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마무라가 회상했다.

“만화가가 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해요. 그림을 잘 그려야 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구상할 수 있어야 하죠. 하지만 그것들을 만화라는 형식에 잘 담아내는 능력도 뛰어나야 해요.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드물죠.”

이후 몇 년간 이마무라는 호카조노를 지도하며 ‘점프’에 여러 단편 만화를 게재하게 했다. 작품들의 성적이 충분히 좋았기 때문에, 호카조노는 잡지의 빛나는 20개의 주간 연재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하게 되었다.

‘만화(manga)’라는 단어는 ‘변덕스러운 그림’으로 직역될 수 있지만, 호카조노의 작품에는 변덕스러움이 거의 없다.

2023년 9월에 처음 출간된 ‘카구라바치(Kagurabachi)’는 범죄 조직과 마법사들이 지배하는 환상적인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다.

주인공인 십 대 소년 치히로는 암살자들 사이에서 수요가 많은 마법이 깃든 카타나(katana)를 만드는 대장장이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살해되자, 치히로는 칼 중 하나를 직접 들고 살인자들을 체계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한다.

1,800페이지가 넘는—그리고 계속되는—분량 동안, 치히로는 끊임없이 변하는 동맹 관계를 헤쳐나가며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 위해 노력한다. 친구는 적이 되고, 적은 친구가 된다. 팔다리가 날아가고 다시 붙는다. 한 등장인물의 말처럼, 모든 칼싸움은 대화다.

미국 만화책과 달리, 만화는 보통 흑백이며 호카조노는 이 단색 팔레트를 누아르 풍의 효과를 내는 데 사용한다.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장면들은 긴장에서 풀려난 용수철처럼 페이지를 휩쓰는 길쭉한 팔다리와 함께 초고속 폭력의 순간들로 강조된다.

치히로는 다양한 마법 능력을 발현할 수 있어 전투에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을 더한다. 그는 허공을 헤엄치는 거대한 유령 금붕어 떼를 일상적으로 소환한다.

때때로 ‘카구라바치’는 마치 ‘존 윅(John Wick)’을 구로사와 아키라(Akira Kurosawa)가 감독하고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가 미술 디자인을 맡은 것처럼 느껴진다.

‘존 윅’ 영화가 호카조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 되기도 한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일본에 대한 외국의 과장된 표현을 정말 좋아해요.” 그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것을 제 작품에 표출하죠.”


호카조노는 태블릿에서 거의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우리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오른손에는 플라스틱 스타일러스를, 왼손에는 얇은 리모컨을 들고 거의 완벽한 정지 상태로 작업했다. 터치스크린에 닿는 스타일러스 펜촉의 규칙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면, 그는 명상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교토 거리 장면에 세부 묘사를 추가하고, 실제 인쇄 크기에서 패널이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파고들어 말풍선에 텍스트를 추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주변의 많은 패널들은 아직 스케치 상태였고, 일부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구체화될 것이었다.

대부분의 연재 만화가들처럼, 호카조노도 어시스턴트 팀에 의존한다. 한때는 만화가와 어시스턴트들이 같은 방에서 작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원격으로 협업하는 것이 더 흔하다.

호카조노는 디스코드(Discord)를 통해 팀원들과 연락하며, 자신이 주인공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배경 및 기타 요소들을 완성하는 작업을 맡긴다.

그가 작업하는 동안, 나는 아파트를 둘러보았다. 작은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니 소스 봉지, 에너지 드링크, 오래된 포장 음식이 보였다. 만화로 가득 찬 책장을 훑어보다가, 내 어린 시절의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오토모 가츠히로(Katsuhiro Otomo)의 SF 대작 ‘아키라(Akira)’를 발견했다.

이 작품은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영 매거진(Young Magazine)’에 연재되었다. 거칠고 미래적인 도쿄는 오토모 작품 속 말이 없는 등장인물이며, 그의 영향은 드넓게 펼쳐진 마천루로 가득한 배경이 특징인 호카조노의 가장 인상적인 몇몇 패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1998년, ‘아키라’는 영어로 완역된 최초의 만화 중 하나가 되었다. 이듬해 미국 극장에서 개봉된 애니메이션 각색판은 이 시리즈에 세계적인 컬트 팬덤을 안겨주었다.

당시에는 그런 세계적인 성공이 드물었지만, 젊은 인재들로부터 히트 프랜차이즈를 이끌어내는 공식을 정교하게 다듬은 ‘점프’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주류에 진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호카조노는 그들의 다음 대형 기대주다.


쌀쌀한 12월의 어느 오후, 나는 슈에이샤의 도쿄 사무실을 방문해 ‘점프’의 편집장인 안경 쓴 43세의 사이토 유(Yu Saito)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신이 청소년이었던 90년대 중반에 잡지는 주당 약 6백만 부를 인쇄하며 절정을 맞았다. 그가 2024년 6월에 지휘봉을 잡았을 때, 주간 인쇄 부수는 110만 부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를 만들어 쇠퇴하던 운명을 되살렸듯이, ‘점프’는 부분적으로는 세계 청소년 문화의 고정물이 된 애니메이션의 부상 덕분에 계속해서 번창하고 있다.

사이토는 내게 “라이선싱 사업은 과거의 종이 중심적인 순환보다 훨씬 더 강력한 순환을 만들어냈어요.”라고 말했다.

‘카구라바치’와 같은 많은 소년(shōnen) 만화는 유치한 힘에 대한 판타지(주: 왕도물)다. 즉,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이상주의적인 젊은 부적응자들이 개인적인 결의와 우정의 힘만이 유일한 진정한 가치인 세상에서 그들에게 맞서는 세력과 싸우는, 액션으로 가득 찬 멜로드라마다.

하지만 모든 ‘점프’ 만화가 이 틀에 맞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더 코믹하거나 일상물에 가깝고, 심지어 로맨스를 다루기도 한다. “정의가 좀 모호해요.” 사이토는 인정했다.

실제로는 ‘소년’은 묘사라기보다는 마음의 상태에 가깝다. 즉,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동료애와 모험에 굶주린 어린 소년인 셈이다.

주간 연재물은 서점에서 판매되는 단행본(tankōbon, 単行本)이라는 문고판 모음집으로 엮인다. 인기 있는 시리즈는 종종 애니메이션 회사에 라이선스가 부여되어 전 세계로 스트리밍되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

책은 쇼를 홍보하고, 쇼는 책을 홍보한다. 히트 시리즈 하나가 단행본을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권으로 쏘아 올려 작가와 슈에이샤에 막대한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다.

자동차나 전자제품 같은 소비재를 통해 전후 명성을 쌓았던 일본은 더 이상 세계의 공장이 아니다. 대신, 오늘날 일본의 주요 수출품은 비디오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음악, 영화 같은 문화 상품이다.

정부는 최근 콘텐츠 제작을 2030년대 이후 일본 경제 성장의 기둥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소년 만화는 그 비전의 초석이다.

2020년, ‘점프’ 만화를 원작으로 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Demon Slayer: Kimetsu no Yaiba—The Movie: Mugen Train)’은 예상을 깨고 그해 세계 최고 흥행 영화가 되었고, 결국 5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한 일본 경제 뉴스 매체에 따르면, <귀멸의 칼날> IP는 원작 만화가 2016년에 데뷔한 이래로 68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이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2024년, 일본에서 가장 흥행한 만화 및 애니메이션 프랜차이즈 10개 중 6개가 ‘주간 소년 점프’에서 시작되었으며, 한 집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그래픽 노블 10개 중 6개도 마찬가지였다.

소년 점프의 IP는 해리포터나 마블의 IP보다 더 큰 수익을 벌어들였다

이들은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탐나는 IP 중 하나가 되었다. 넷플릭스, 훌루, 아마존, 디즈니와 같은 미국 플랫폼들은 오랫동안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해외 판권을 두고 경쟁해왔다.

7월에 넷플릭스는 전 세계 구독자의 50%가 정기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시청한다고 밝혔다. 소니는 최근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인 크런치롤(Crunchyroll)을 10억 달러 이상에 인수했고, 블랙스톤(Blackstone)은 디지털 만화 플랫폼 인포콤(Infocom)에 17억 달러를 제안했다.

‘점프’ 시리즈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과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 같은 이질적인 단체들과의 협업을 낳았고, 올림픽 단거리 챔피언 노아 라일스(Noah Lyles)와 그래미상 수상 래퍼 메건 더 스탤리언(Megan Thee Stallion)과 같은 인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 나라의 주된 힘은 애니메이션이에요.” 팝스타 그라임스(Grimes)가 2월에 X에 썼다.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제가 확실하게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미디어 연결고리죠.” (그녀와 세 자녀를 둔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점프’에서 시작된 <데스노트>를 포함한 여러 애니메이션의 공공연한 팬이다.)


슈에이샤는 ‘카구라바치’를 각색할 계획에 대해 어떤 확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 인기를 고려하면—첫 7권이 220만 부 팔렸다— 시간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점프’의 창작 모델은 팬들의 열정을 더욱 부추기도록 설계되어 있다. 출판 후, 각 회차 또는 에피소드는 구독자들이 온라인이나 잡지 실물에 포함된 엽서를 통해 작성할 수 있는 주간 독자 설문조사를 통해 피드백을 받는다. (90년대에 편집자들은 일주일에 3만 장에 달하는 엽서를 처리했다.)

잡지 초창기부터 시행된 이 설문조사는 구독자들에게 각 호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의 순위를 매기도록 요청한다. 또한 ‘이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가?’, ‘작화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가?’, ‘이야기를 따라가기 쉬웠는가?’와 같은 세분화된 객관식 질문도 포함되어 있다.

결과는 편집자들과 공유되고, 편집자들은 이를 작가들에게 전달하여 그들이 스토리라인을 다듬는 데 도움을 준다. 순위는 연재물의 생명줄이며, 시간이 지나도 충분히 높은 순위를 기록하지 못하면 잘릴 수 있다.

순위의 최상단에 있든 최하단에 있든, 작가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끊임없다. 호카조노는 매주 이마무라와 다음 에피소드의 스토리라인을 계획하는 회의가 끝난 후, 딱 하루 저녁 쉰다.

“유튜브를 봐요.” 호카조노가 내게 말했다. “그게 저의 ‘인풋’이에요.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죽은 듯이 자요. 하지만 그러고 나면 스토리보드 작업을 시작하죠.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정말 그 무게를 느끼기 시작해요.”

그는 ‘점프’에 만화를 그리는 것과 비교할 만한 다른 직업이 있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아마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작가 같은 사람들이겠죠. 항상 혼자서 책상과 마주해야 하니까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음악조차도, 노래 한 곡을 완성하면 다음 곡을 만들기 전에 휴식을 취하잖아요.” 연재 만화는 그렇지 않다. “그냥 다음, 다음, 다음—끊임없이 이어지죠.”


‘주간 소년 점프’ 연재 작가가 되는 것은 단거리 선수 페이스로 마라톤을 뛰는 것과 비슷하다.

성공적인 시리즈는 수십 년간 연재될 수 있지만—’원피스’는 1997년부터 계속되고 있으며, 모든 에피소드를 원작자인 오다 에이이치로(Eiichiro Oda)가 그렸다—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매주 원고를 제출해야 한다.

“체력이 필요해요.” 편집장인 사이토가 내게 말했다. “얼마 전에 우리 작가 중 한 분과 식사를 하면서 새로운 창작자들을 위한 조언이 있는지 물었어요. 그가 말하더군요. ‘운동을 시작하세요.'”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업계의 많은 거장들이 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후지코 후지오(Fujiko Fujio)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2인조 중 한 명인 후지모토 히로시(Hiroshi Fujimoto)는 1996년 62세의 나이로 책상에서 쓰러졌다.

‘점프’의 신인상 중 하나의 이름이 된 ‘아톰(Astro Boy, 원제: 鉄腕アトム)’의 창작자 데즈카 오사무(Osamu Tezuka)는 1989년 60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말은 “부탁이니, 일하게 해줘”였다고 전해진다.

2021년에는 ‘영 애니멀(Young Animal)’ 잡지에 ‘베르세르크(Berserk)’를 연재한 미우라 켄타로(Kentaro Miura)가 급성 대동맥 박리로 사망했다. 그는 54세였다.

최근 몇 년간 정신 및 신체 건강에 대한 우려가 업계 전반의 자성으로 이어졌다.

얼마 전, 슈에이샤는 소속 만화가들에게 육아부터 건강 검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 무료 상담을 제공하는 내부 지원 시스템을 시작했다. (이 시스템의 웹사이트에는 “건강이 걱정돼요! 하지만 너무 바빠서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요…”와 같은 문구가 담긴 만화 말풍선이 있다.)

한 작가는 오랫동안 미뤄왔던 건강 검진을 받는 경험을 ‘건강검진 데스레이스(Health Check Death Race)’라는 개그 만화로 만들었다. 2018년 ‘소년 점프 플러스’에 게재된 이 만화는 종합 검진을 받기 위해 지역 병원으로 향하는 다섯 명의 베테랑 만화가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수년간의 마감과 책상 작업이 중년의 몸에 가한 부담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마침내 한 명이 일종의 혁명을 선언한다. “우리는 잘 수 있다! 쉴 수 있다! 오래 살 수 있다!”

호카조노의 지저분한 사무실이 ‘건강검진 데스레이스’ 주인공의 사무실과 많이 닮았지만,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 같다.

“잠이 부족하면 아무것도 못 해요.” 그가 내게 말했다. “저는 잠을 많이 자요. 밤에 약 일곱 시간 정도요! 잠을 못 자는 유일한 시간은 마지막 총력을 기울일 때뿐이에요.”

그리고 그는 작업하는 동안 최대한 많이 걸으면서 몸을 유지한다. 머릿속으로 스토리보드를 구상할 때, 그는 도쿄를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흡수한다.

‘카구라바치’에서 치히로는 뜻밖에도 정장과 선글라스를 쓴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닌자 마스터와 팀을 이룬다. 이 시각적 부조화는 ‘소년 점프’의 특징적인 기법이기도 하다.

그 닌자는 치히로에게 호카조노 선배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처럼 느껴지는 엄한 말을 건넨다. “네 방식대로, 모든 걸 혼자 짊어지다간… 제 명에 못 죽을 거다.”

내가 그의 작업실에 있는 동안 호카조노는 거의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내가 던진 질문에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만화가가 되겠다는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가?

“‘해봐라’고 하셨어요.”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희 집은 ‘나루토’ 가족이었거든요.” 그는 젊은 닌자의 성장에 대한 매우 인기 있는 만화를 언급하며 덧붙였다. 그 이야기는 ‘점프’에서 수십 년간 연재되었고 100억 달러 규모의 프랜차이즈를 낳았다. “아버지가 단행본을 집에 가져오시면, 우리 모두가 읽었죠.”

그의 대답은 일본 사회에서 만화가 어떻게 인식되는지에 대한 극적인 변화를 반영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이 산업은 거의 혹은 전혀 감독 없이 운영되었다.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만연했고, 권력에 진실을 말하려는 작가들의 의지는 금세 만화를 일본 반문화의 목소리로 만들었다.

가장 인기 있었던 작품 중 하나는 1968년에 작가 다카모리 아사오(Asao Takamori)와 그림 작가 지바 데쓰야(Tetsuya Chiba)가 만든 ‘내일의 죠(Ashita no Joe)’였다.

‘주간 소년 점프’의 경쟁지 중 하나인 코단샤(講談社, Kodansha)의 ‘주간 소년 매거진(Weekly Shōnen Magazine)’ 페이지에 연재된 이 작품은 도쿄의 빈민가에서 복싱을 통해 벗어나려 애쓰는 젊은 남자를 그렸다.

이 작품은 신좌파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있어서 당시의 학생 시위대들은 “오른손에는 ‘아사히 저널(Asahi Journal)’ 잡지를, 왼손에는 ‘소년 매거진’을 들고 행진한다”고 선언했다.

1970년 적군파(Red Army Faction)라는 단체의 구성원들이 일본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갔을 때, 그들은 “우리는 ‘내일의 죠’다”로 끝나는 서신으로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혔다.

납치 사건 이전에도, 권위 있는 인물들은 만화를 억제하거나 없애야 할 악습으로 여겼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머니회와 학부모-교사 연합회는 훗날 ‘악서 추방 운동’으로 알려지게 될 운동을 주도했는데, 이 운동은 만화를 포르노그래피 및 기타 성인 콘텐츠와 함께 묶었다.

1955년 국회 연설에서 하토야마 이치로(Ichirō Hatoyama) 총리는 그러한 ‘불량 출판물’을 불법 마약과 동등한 일본 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했다. 만화를 보며 자란 세대들이 차례로 부모가 된 19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그 낙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간 소년 점프’는 그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출판사인 슈에이샤는 주간 만화 시장의 후발 주자였다. ‘점프’는 1968년 7월에 창간되었는데, 이는 정치적인 내용으로 나이 많은 독자들을 공략했던 주요 경쟁사들보다 10년 늦은 것이었다.

슈에이샤는 다른 전략을 취하여 “우정, 노력, 승리”에 초점을 맞춰 초등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했다.

다른 잡지들이 페이지에 에세이, 단편 소설, 사진을 섞어 실었던 반면, ‘점프’는 단편 및 연재 만화 이야기만 실었다. 이 출판물의 태그라인—”새로운 만화를 위한 탄환 열차”—은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진 세계로의 탈출구로 제시했다.

나중에 ‘점프’의 편집장을 지낸 고토 히로키(Hiroki Goto)는 당시의 사무실을 “전장”에 비유했다. 그의 일본어 회고록 ‘소년 점프 황금의 기적(Shōnen Jump: A Golden Miracle)’에서 그는 1970년 대학을 갓 졸업하고 채용된 후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때때로 그 전장은 말 그대로 현실이 되기도 했다. 고토는 초기에 이성을 잃고, 작가의 창작 슬럼프를 해결하려는 잘못된 시도로 트레이싱 페이퍼를 말아 만든 통으로 만화가를 때렸던 순간에 대해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자들을 위한 마그나 카르타”가 등장했다. 그 기본 원칙에는 팬 설문조사 활용, 작가-편집자 팀에 대한 불간섭 접근 방식, 그리고 기존의 유명 작가를 영입하기보다는 공모전을 통한 인재 발굴 추구가 포함되었다.

후자의 지침은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이 이미 다른 출판사와 계약했다는 냉엄한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쳐 이 약점으로 보였던 것이 ‘점프’의 강점이 되었다. 독자층을 단순히 고객이 아닌 협력자, 심지어는 인재 풀로 대함으로써, 잡지는 창작자와 소비자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젊은 독자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오락 이상이었다. “저에게는 모든 것이 ‘점프’였어요. 오직 ‘점프’뿐이었죠.” 호카조노가 말했다. “다른 잡지에는 제 작품을 보내지 않았어요. 그들의 사이트를 보지도 않았죠.” 만화가에게 ‘점프’는 “왕”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점프’의 과정은 세계 대중문화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즈 일부를 탄생시켰다. 독자 피드백을 사용하여 주간 에피소드의 전개를 형성한 다음, ‘정주행’할 수 있는 단행본으로 모으는 방식은 스트리밍 시대에 사람들이 미디어를 소비하는 방식을 예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평가들이 알고리즘 추천이 시청자들을 비슷한 종류의 엔터테인먼트의 굴레로 몰아넣는다고 비난했듯이, ‘점프’의 끊임없는 설문조사는 그 콘텐츠 전반에 걸쳐 어느 정도의 획일성을 조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내면에 숨겨진 어떤 비밀 잠재력을 발견하는 패배자 주인공들, 정교하고 비디오 게임 같은 기술 및 능력 체계, 늘 등장하는 고등학교 배경, 열정적인 적이 충실한 동료가 되는 전개, 그리고 폭력에서 슬랩스틱 코미디로의 격렬하고 빠른 분위기 전환 등은 모두 ‘점프’의 단골 소재다. 이러한 유사성이 예측 가능해서 지루한지 혹은 편안한지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달려 있다. 어쨌든 독자들이 그것에 투표하고 있는 것이니까.

3월의 어느 저녁, 나는 시부야(Shibuya)의 붐비는 카페에서 만화총합연구소(Manga Research Institute) 소장인 기쿠치 다케시(Takeshi Kikuchi)를 만났다. 커피를 마시며 그는 이 매체의 성공 비결을 설명하기 위해 일본 속담을 인용했다.

“가장 높은 산은 가장 넓은 밑변을 가진다.”

일본에서 만화는 오랫동안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맞서 문화적 영향력 면에서 뒤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생산 비용도 훨씬 저렴하다. 기쿠치는 현재 활동 중인 만화가가 아마도 만 명 이상이며, 연간 약 15,000권의 단행본을 생산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수천 편의 만화 중 하나가 히트할 확률은 매우 낮지만, 예술 형식 전체가 히트작을 낼 확률은 상당히 높다.

연재는 많은 만화가들을 움직이는 꿈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것을 성취한다는 것은 진정한 고군분투가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나는 호카조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연재가 시작된 후, 첫 서너 달 동안은 적자였어요. 제 원고료로 받은 돈은 전부 어시스턴트들 월급으로 나갔죠.”

‘점프’는 신인 작가에게 흑백 페이지당 대략 140달러를 지급한다. 연재를 따낸 작가들은 계약 보너스를 받지만, 만화가들이 수익을 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책 판매와 라이선싱 및 상품화 수수료로부터의 로열티—나중에 들어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지불금—를 통해서뿐이다.

“제가 일을 통해 만난 만화가 지망생들 중에서, 잘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패턴이 있어요.” 기쿠치가 내게 말했다. 그들은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지기 위해 이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만화를 그리는 것이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 일을 해요.”

작가들은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많은 이들이 필명을 사용하고, 거의 모두가 대중에게 자신을 묘사할 때 일러스트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슈에이샤는 ‘카구라바치’를 8권 출간했으며, 책 표지의 작가 소개에는 모두 호카조노의 사진 대신 낙서 그림이 실려 있다. 우리가 이야기할 때, 그는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밝히기를 거부했다.

이것의 일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삶을 괴롭히게 된 유해한 팬덤에 대한 방어벽으로서의 단순하고 상식적인 안전 조치다. 만화가들은 창작 결정 때문에 스토킹을 당하고 살해 협박을 받은 적이 있다. 2019년에는 한 남성이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1층에 불을 질러 36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만화가들의 침묵은 또 다른 목적을 수행하기도 한다. 자신을 식별 가능한 누군가로 덜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작품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호카조노의 작업실을 방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작가와 그의 편집자가 주간 스토리 회의를 하는 슈에이샤 본사로 돌아갔다. 그날, 그들은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평범한 회의실에서 만났다.

내가 도착했을 때, 호카조노는 테이블 위에 팔을 괴고 머리를 숙인 채 쉬고 있었다. 그는 마감을 지켰고, 절실히 필요했던 잠을 보충했다. 그래서 시작이 늦어진 것이었다. 이제 그와 이마무라는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갔다.


이야기의 이 시점에서, 치히로는 교토의 한 호텔 꼭대기에서 마법사-암살자인 히루히코로부터 이오리라는 여고생을 보호하고 있었다. 치히로와 히루히코는 오직 소년 만화에서만 일어나는 열정적이면서도 순수한 남자들 간의 멜로드라마에 빠져 있었다.

(“너를 죽이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어.” 히루히코가 어느 순간 치히로에게 말한다. “서로 죽이려고 노력하다 보면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마법의 칼을 빼앗긴 치히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기술—이오리가 그 힘을 깨울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히루히코가 그에게 먼저 도달하지 않는 한—을 마스터해야 했다.

약해진 주인공을 성장을 강요하는 절박한 상황에 던져 넣는 것은 전형적인 ‘점프’의 설정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문제는 이러했다. 캐릭터들을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시키면서, 가능한 한 멋지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잠시 동안 방 안에는 이마무라가 화이트보드에 몇 가지 잠재적인 줄거리 포인트를 적는 마커 소리만 들렸다. 그런 다음 그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각 캐릭터는 어디에 있는가? 배경 설명을 위해 여기서 회상 장면이 필요한가, 아니면 바로 전투로 들어갈 수 있는가? 치히로는 어떻게 새로운 기술을 발현할 것인가?

호카조노는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 더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갑자기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목적이 있는 걸음으로 화이트보드 쪽으로 가서 깨끗한 면으로 뒤집었다. 이마무라는 뒤로 물러앉아 호카조노가 빠른 속도로 일련의 캐릭터 이름과 줄거리의 핵심을 휘갈겨 쓰는 것을 지켜보았다.

작가가 끝마치자, 그는 이제 유창하게, 마치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다음 에피소드의 구조를 프레임 단위로 읊었다. 이오리는 다른 층에 있으니, 치히로와 히루히코는 반대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곳으로 갈 것이다. 양쪽 문이 열리면, 라이벌들은 서로에게 뛰어들 것이다. 치히로가 이오리를 먼저 보고, 새로운 기술을 깨우쳐 승리할 것이다.

“좋네요.” 이마무라가 만족하며 말했다. “둘이 격돌하는 장면으로 끝낼 건가요? 아니면 공격을 준비하는 자세로 끝낼 건가요?”

“치히로가 한 번 더 공격할 자세를 취하게 하죠.” 호카조노가 말했다. “그게 더 멋져 보일 거예요. 전 그런 장면을 정말 좋아해요.”

“자, 이걸로 끝났네요.” 이마무라가 선언하고는 나를 향해 웃었다. “보통은 적어도 세 시간은 옥신각신하는데 말이죠!”

“음,” 호카조노가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카구라바치’는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일본인 캐릭터가 주연이며, 복잡한 일본 검술 용어들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너무 인기가 있어서 팬들은 스스로를 “바치 브로(Bachi bros)”라고 부른다. 5월에는 미국 만화책 산업의 오스카상에 해당하는 아이즈너상(Eisner Award) 후보에 올랐다.

나는 호카조노에게 글을 쓸 때 그런 해외 독자들을 얼마나 고려하는지 물었다. “외국 팬들의 열정에 정말 감사하죠.” 그가 말했다.

“그런데 저는 그저 제가 개인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릴 뿐이에요. 제 감성이 외국 취향에 가깝거나, 아니면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나 ‘장고: 분노의 추적자’처럼 제가 수년간 흡수한 모든 외국 작품들 때문일지도 모르죠. 어쩌다 보니 일반적인 일본인과는 조금 다른 취향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카구라바치’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는 또 다른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영화의 메아리가 담겨 있다. 한 장면에서 치히로는 ‘킬 빌(Kill Bill)’에서 우마 서먼의 캐릭터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칼을 사용해 수십 명의 검은 정장을 입은 적들을 처리한다.

일본의 가장 유명한 만화가들 중 다수는 서양 만화가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전후 베스트셀러 작가인 데즈카는 미국 신문 연재 만화와 월트 디즈니로부터 많은 것을 차용했다. 미야자키 하야오(Hayao Miyazaki)는 오랫동안 프랑스의 뫼비우스(Mœbius)를 칭송해왔다.

하지만 현대 만화가들은 외국 만화보다는 다른 만화에 경의를 표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호카조노는 새로운 세대처럼 느껴진다. 미국 미디어의 영향을 덜 받았다기보다는, 어디에나 있는 스트리밍 엔터테인먼트 덕분에 그것에 흠뻑 젖어 있다.

이것은 양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교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는 미국에서 전문점에서만 구할 수 있는 이국적인 수입품으로 취급되었다.

오늘날, 바로 그 스트리밍 플랫폼 덕분에 젊은 미국인들은 꾸준히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소비하고 있다. 처음으로, 호카조노와 같은 작가는 국내외 관객 모두에게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호카조노는 화이트보드를 재빨리 사진 찍고, 낡은 노트를 가방에 챙겨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산책하면서 생각을 좀 할 거예요.” 그가 내게 말했다. “그런 다음엔 사무실로 돌아가서 뭐, 그림 그려야죠.” 그가 말했다.

다음 주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낭비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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