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ustless (원작: 켄 리우)

“최근의 기술적 발전은, 스마트 콘트랙트가 광범위하게 혹은 완전히, 계약에 대한 법 체계를 대체해버릴까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들 수준이다.” — “Contracts Ex Machina,” Duke Law Journal (2017)


“케이티, 이미 여섯시 반이라고.” 꼰대 아저씨가 말했다. “얼마나 더 걸려? 그 콘트랙트”

“된다면 되는거지” 나는 답했다. 화면 속 ‘리걸이스(LegalEase)’의 코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드론 부품을 부산에서 보스턴까지 보내는 것에 대한 계약은 충분히 더 쉬웠어야 했다. (블록체인 기반 법무시스템인) ‘리걸이스’는 ‘변호사들도 놀라지 않을 수 있는 구문’들을 만들어낼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리걸이스’는 사람이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스마트 콘트랙트를 만들어내고, 그 콘트랙트는 바이트코드로 컴파일되어 레 쥬디카타(Res Iudicata; 기판력) 블록체인에 올라간다. 하지만 수 많은 ‘옛날 사람’들은 이 새로운 언어에 좀처럼 적응하려 들지 않았다. 여기 이 글렌처럼.

“여기” 키보드를 밀어내며 말했다. “다 고쳤어”

“음” 글렌이 입을 열었다. “그거 실제론 별로 오래 걸리지 않은 것 같은데, 안그래?”

글렌이 뭘하려는지 안다. 그럼 무시하는 거지. 소스파일 저장한 것을 드래그해서 시뮬레이터 아이콘 위에 떨구었다. 콘트랙트가 컴파일되어 생명을 얻는 것을 지켜본다. 얼마 후, 화면에 메시지가 떴다. “체인 테스트 통과”

“저기 케이티, 내가 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만약에 말이지, 내가 자네한테 돈을 건당으로 주는 것 대신에..”

“잠깐” 폰에 진동이 울렸다. 글렌의 아우레우스(Aureus) 월렛에서 내 버너(Burner) 월렛으로 오라 코인(Aura)이 이체되었다는 메시지였다. 체인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 우리 사이 콘트랙트의 유일한 필수사항이었다.

그가 나를 밀어붙이려 하는 걸 알고 있었다. 딱하기는. 스마트 콘트랙트에서는 지급을 유예하는 것도 조건을 재협상하는 것 같은 건 없다. 짐을 챙겨 일어났다.

“담에 보자고”


샌은 현관 계단에 앉아 길을 막고 있었다. 그녀에 대해 딱히 아는 건 없다. 가족과 함께 홀 건너편에 산다는 것 빼고는. 여섯 가족이 방 하나에 함께.

“바깥 바람 쐬고 있나봐요?” 내가 물었다.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예의상 하는 말이었다.

“뭐 그렇죠.” 검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그녀는 몸을 웅크려 내게 길을 내어주었다. “조카가 아기인데 울음을 그치질 않네요. 벽에서 계속 이상한 냄새가 타고 내려와서요.”

“대런에게 전화 해봤어요?”

샌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대런은 사상 최악으로 게으른 집주인일 것이다. 한 달 넘게 기다렸지만, 내 부엌의 누수를 절대 고치지 않을 셈이었다.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사갈까 이야기 중이에요. ”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가 말했다.

모두 아는 이야기겠지만, 무역전쟁과 경기부양책이 여러차례 돌며 물가는 폭등했다. 부동산 시장을 수습하려던 시도는 주택시장의 공급을 줄였다. 덕분에 집주인들은 ‘최고의’ 세입자를 고를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샌이나 나와 같은 신용이 불량한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었다. 대런 같은 쓰레기 집주인을 감내하고 살 수 밖에.

“언제든 가정법원에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주거권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알죠?”

그녀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법원이나 변호사나, 우리 같은 사람들 편이겠어요.”

들어가서 여섯개 들이 맥주팩을 집어 나와 계단에 다시 앉았다. 샌은 그녀의 가족 이야기를 들려줬다. 폐소공포증을 유발하던 보트 속,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정, 연방 에이전트를 피해 숨어들었던 지하실, 부자들을 위해 해야만 했던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했던 일들, 불법체류자로 자라오면서 배운 꼼수들.

“그래도 현금을 쓸 수 있었을 땐, 그래도 좀 더 쉬웠는데 말이에요.” 그녀는 말했다. “이젠 그것도 전부 오라 코인이니까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입주 첫 번째 달에 대런에게 오라 코인으로 집세를 내고 도어락의 새로운 리셋코드를 받았다. 내가 오라 코인을 주지 않았다면 그 즉시 자동으로 나는 갇혀버렸을 것이다. 신용 결제도 없고, 대출도 없으며, 퇴거 유예기간도 없고, 아무런 어필도 할 수 없다. 스마트 콘트랙트와 암호화폐. 부자든 가난한 자든 거기 의존한다는게 얼마나 웃긴지.

“그래, 당신의 사연은 뭐죠?” 샌이 물었다. “왜 이런 곳에서 살아요? 가방 보니까 어디 사무직인 것 같던데.”

그녀에게 이야기해줬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로스쿨의 화려한 브로셔가 말하는 지킬 수 없는 약속에 대해서. 3년의 시간을 보내며 20만불이라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졌지만, 나는 큰 로펌들로부터 어떠한 채용제의도 받을 수 없었다. 내 학위는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신뢰를 받지 못한 것이다. 하버드나 스탠포드와 같은 이름을 갖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용이라든지, 상호존중이라는지와 같은 세상에서 사라져버려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였다. 나는 법을 집행하는 권위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글렌처럼 이미 자리를 잡은 변호사들이 너무 하찮아서 할 수 없는 일들은, 내가 할 수 있었다.

“저런, 진짜 변호사는 아니었군요.” 샌은 말했다. “음 그래도 실제로 무언가를 할 수는 있는거네요.”

씁쓸하게 웃었다. 윗층에서는 그녀 조카가 아직 있는 듯했다. 어떤 이들은 포르투갈어로 소리를 치고 있었다. 뭔가 매운 음식을 요리하는 듯한 냄새가 풍겨왔다. 동남아 음식인가.. 아마? 알 수 없었다. 스마트 도어락으로 잠긴 대런의 건물에 사는 우리들은 아무도 서로 폰 번호를 교환하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의 문제는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신뢰가 없다는 것은, 누군가를 먼저 동정하는 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The trustless can’t give out compassion on credit.)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 변호사는 필요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샌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더듬더듬 설명했다. 내가 대런의 스마트 도어락을 관리하는 스마트 콘트랙트의 코드를 쓸 수 있으며, 특정 체크리스트가 충족되지 않으면 도어락의 리셋 명령(주: 퇴거를 위함)을 거부하는 조항을 넣을 수 있다고; 수도꼭지에서 깨끗한 물이 나올 것, 난방이 제대로 동작할 것,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을 것, 천장에서 물이 새지 않을 것 등.

샌은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냄새인지 아닌지는 누가 판단하죠? 누군가가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계약서 초안을 잡아볼게요. 집주인과 세입자가 함께 평가할 수 있는 필수항목들을 가진 계약을요.” 말을 이어갔다. “만약 여기에 이견이 생긴다면, 우리는 ‘논스 오라클(Nonce Oracle; 일회성 신탁)’을 요청할 수 있어요.”

“응, 뭘요?”

“판결 배심원의 우버 같은 거에요. 음, 하루종일 스쿠터를 타고 주변을 돌며 이런 스마트 콘트랙트들의 항목들을 판결해주는 사람들이죠. 큰 업체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그런 사람들을 항시 돌리고 있거든요. 그들에게 보상을 주려면 일정량의 오라 코인을 갹출해야 할겁니다. 그들도 나나 당신이나 크게 다를바 없이 고용이 불안정한 사람들이거든요.”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내 아이디어에 꽤 동의한 듯 했다. “그런데 어떻게, 대런을 동의하게 만들죠?”

나는 말했다. 만약 우리 모두가, 그러니까 대런의 모든 빌딩에 사는 세입자 모두가 연대해서 내가 설계한 스마트 콘트랙트가 적용되는 것을 요구한다면, 대런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리는 결국 세입자 조합을 코드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대런이 (우리를 대체하기 위해) 다른 세입자를 찾아와 강제로 입주시키는 것을 막고 빌딩을 블록해버릴 수도 있게 된다.

샌이 말했다. “모두가 당신을 신뢰할 수 밖에 없을거에요.”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숨기고 조심스러워하고 의심하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코드가 곧 법이 되는 때에도, 심지어 (기술적으로) 오염될 수 없는 크립토그래피로 신뢰를 초월해버린 웹의 이상을 갈망할 때에도, 우리는 때때로 주변 사람들에게 여전히 의존해야 한다. 우는 아기, 거지같은 신용, 싸구려 맥주 외엔 딱히 나눌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샌의 조카가 내려왔다. 샌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맥주의 남은 모금을 들이켰다. “가봐야겠어요.”

흥분이 가라앉았다. 코드를 통한 혁명의 비전은.. 그냥 비전이다 여전히. 그래도 그녀는 폰을 내밀었다. “번호 줄래요?. 다음번 맥주는 내가 낼게요.”

그래 어쩌면 아마도. 이것이 이 새로운 블록체인의 첫 번째 블록일지도.


켄 리우 (@kyliu99) 는 <민들레 왕조기>와 <종이 동물원> 등을 집필했다. 휴고상, 네뷸라 상, 세계환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변호사이자 프로그래머이기도 하다.

원문: https://www.wired.com/story/future-of-work-trustless-ken-liu/ (저작권은 와이어드와 켄 리우에게 있다)

번역 및 편집: 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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