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초는 닷컴 버블, 모바일 버블 그리고 브로드밴드 버블이 한창이었다. 당시 유럽의 통신사들은 3G 망의 라이센스 확보를 위해 약 140조원(1,100억 유로)을 쏟아부었다. 20년 뒤의 CES에서는 5G가 최고 화두였다. 어느 정도 덩치 있는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은 말한다. 요즘 회사에서는 “머신러닝이 뭐지?”하는 질문만큼이나 “5G가 뭐지?”라는 질문이 자주 오고간다고.
“5G가 뭐지?”에는 수 없이 다양하게 답할 수 있다. 내가 아직 통신사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아마 5G의 스펙트럼, 구축 일정 그리고 운영비를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전 세계의 통신사들은 1년에 수백조 원을 네트워크 운영비에 쓰고 있다. 곧 그 비용 대부분은 5G로 들어갈 것이다) 거기에 네트워크의 효율, 주파수 할당, 관련한 수 많은 벤더, 화웨이, 칩셋, 가상 네트워크 등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통신사가 아닌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으니, 5G라는 화두에 대해 실리콘밸리의 관점을 네 가지 꼭지로 이야기해볼까 한다.
1. 5G가 뭔데?
기술적인 디테일을 제외하고 5G 망을 간단히 말하자면, ‘두터운 파이프’다.
통신망의 세대가 변해갈 때마다 그래왔듯, 5G망을 쓰면 통신사들이 더 큰 용량을 처리하는 것이 저렴해지고 쉬워질 것이다. 즉, 통신사들은 커지는 통신데이터를 계속해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5G는 기존의 셀룰러 망의 개선에도 쓰이겠지만, 더 높은 주파수의 망을 운용할 수 있게도 할 것이다. (mmWave 혹은 밀리미터 웨이브로 알려진 20GHz 이상) 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모바일 서비스에 사용되지 않았던 대역폭이다. (이는 단파 기지국을 더 많이 설치해야만 가능하다)
새로운 주파수가 가능해짐에 따라, 5G 모바일 통신망은 초당 100메가의 속도를 확보할 수 있다. 어쩌면 수백 메가 수준으로도 올라갈 수 있다. (기가 단위로도 올라가는게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나, 실제로 체감하기엔 그렇게까진 안될 것이다)
하지만, 눈부시게 발전한 속도를 제공하는 새로운 주파수가 적용되는 것은 일단 초기에는 제한적일 것이다. 보급 속도도 빠르지 않을 것이다. 해당 주파수는 멀리 가지 못하는데다 벽을 뚫기 어렵기 때문에 (기지국 보급이 덜된) 지방이나 실내에서는 사용이 어려울 수 있다. (아직 그 주파수가 모바일에 쓰이지 않은 이유) 즉, 5G가 보급되더라도 상당 지역은 속도에서나 범위에서나 4G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5G는 레이턴시(지연)에서도 4G보다 크게 나아질 것이다. LTE의 50~60 밀리세컨드에 비하면 절반 수준인 20~30 밀리세컨드 정도.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체감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통신사에서 일하는 어떤 이들은 집 밖이나 창문에 안테나를 설치해서 실내에서도 초당 기가비트 속도의 5G 네트워크를 쓸 수 있을 것이라 얘기하는데,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좀 어려울 것이다. 물론, 집집마다 설치된 유선인터넷 망을 통하면 그 정도 속도가 가능할 수 있다. 미국 가구의 1/3 정도는 어쨌든.
요약하자면, 모바일은 더 빨라질 것이다. 파이프는 점점 더 두터워질 것이다. 유선 인터넷은 더 심한 경쟁에 처할 것이다. 지역에 따라.
2. 파이프가 두터워진다?
인터넷은 유선전화망을 쓰는 다이얼업 방식으로 시작했다. 소비자 대상 최초의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는 일본의 NTT도코모가 2G 환경에서 제공했던 아이모드(i-mode)였다. 양쪽 모두 초당 수십 킬로비트 정도가 최고였다. DSL과 3G망이 보급되며 수백 킬로비트 시대가 시작되었다. 3.5G라고도 불리는 3G의 개선과 4G는 초당 수십 메가비트의 속도(와 훨씬 나은 레이턴시)를 가능하게 했다. DSL과 케이블망이 발전하며, 초당 수백메가에 달하는 가정용 인터넷이 가능해졌다.

속도의 변화는 두 가지를 의미했다. 첫 째, 우리가 그간 써오던 것들을 더 빠르고 쉽고 부드럽고 쾌적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웹페이지는 더 많은 이미지와 더 다이내믹한 형태로 정보를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둘 째, 그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이 가능해졌다. 2003년의 인터넷 환경으로는 구글지도나 넷플릭스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냅챗과 같은 서비스 역시 초당 수십메가 이상의 통신속도가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네트워크 인프라는 특정 소수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로 나아진 서비스를 제공할 때 효용이 있다.
다수에게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인프라 투자 비용이 어느정도 감당되어야 전체가 발전할 수 있게된다. 2000년대 초반 통신사 임원에게 지금의 스냅챗을 보여준다면, 그들은 놀라 까무러칠 것이다. 당시의 3G 네트워크 인프라로는 스냅챗 정도를 감당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마찬가지다. 5G의 속도, 전에 없던 속도의 가정용 인터넷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기존의 서비스들이 더 풍부해지는 것은 물론,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유튜브, 새로운 스냅챗. 몇 가지 썰을 풀어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업가와 플랫폼의 혁신, 그리고 대중들은 찾아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터넷이 가진 탈중앙성과 규제 없는 혁신의 위대한 점이다.
통신사들은 5G에서 무엇이 가능할지 굳이 앞서 설명하거나 결정할 필요가 없다. 더 빠른 CPU를 개발하는 인텔이 그걸로 무슨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듯이.
3. AR과 VR 그리고 자율주행차? 과연?
5G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설레발치지 말자고 하긴 했지만, 5G를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몇 개 아이템들이 있다. AR과 VR 그리고 자율주행차다. 이들에 대해서는 좀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
VR은 근본적으로 실내에서 사용하는 서비스라는 생각이다. VR은 길거리를 걸으면서 쓰거나, 버스를 기다리는 잠시 동안 쓸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다. 이는 결국 VR의 통신은 집에서 어떤 인터넷서비스를 쓰느냐에 따라 달렸다는 뜻이다. DSL이나 광케이블, 5G에 물린 와이파이이든.
여기서 5G는 두 가지 다른 가능성을 가진다. 하나는 집에 안테나를 설치해 끌어온, 범위는 좁지만 초당 기가비트의 속도를 가진 5G 고정회선에 공유기를 물려 헤드셋과 연결한 것. 다른 하나는 아예 헤드셋에 셀룰러망을 지원하는 모뎀이 달려있어서, 현재의 4G LTE와 비슷한 속도를 가진 모델이다.
어느 쪽이든 4G보다는 훨씬 나은 5G의 레이턴시를 가질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의 4G보다 더 나은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VR기기를 쓰면서, 4G와 5G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을까? 이것이 과연 VR의 보급에 있어서 가장 큰 허들이었을까?
많은 VR 서비스들이 정말 기다려온 것이 이것이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5G는 아마 AR에 더 큰 힘을 실어줄 것이다. 먼저 정리를 좀 해보면, 요즘의 AR은 다음의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 폰의 카메라를 무언가에 가져다대어, 스크린에 무언가를 나타나게 하는 것
- 구글 글래스와 같은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통해 보는 것 (당신이 쪽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 주변의 공간과 사물, 사람을 인식해서 그 위에 출력하는 투명하고 실감나는 풀컬러 3D 디스플레이 (우리 포트폴리오인 매직리프가 이 영역이다) – 대중 상대로 제품이 구현되려면 아직 몇 년 남았다.
당신 주변을 인식하고 무언가를 화면에 보여주는 안경을 쓰고 다닌다면 꽤 유용하긴 할 것이다. 음 그런데 그건, 주머니에 인터넷을 넣고 다니는 것이 유용하리라는 말처럼 공허하다. (주머니에 인터넷을 넣는 순간) 모든 것이 새롭고,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생겨났다. (다이얼 모뎀으로 인터넷을 겨우 하던 시대에, 스냅챗을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AR 글래스는 4G에서도 동작하기는 한다. 하지만 전력소모량이 낮아지고, 속도가 빨라지고, 레이턴시가 향상된 5G에서는 사뭇 다를 것이다.
AR/VR과는 다른 결이지만, 5G 시대의 자율주행에 대해서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자율주행차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 처리를 할 수 밖에 없다. 자율주행차는 주행 중인 거리의 초고화질 3D 지도를 다운로드 하고, 그들의 센서로 수집한 주행 데이터를 동시에 업데이트 해야한다. 그리고 주행 시스템을 다운받고 실제 주행데이터를 업로드해야한다.
하지만, 이들 중 실시간으로 해야 하는 것은 적은 편이다. 매일 밤에 한 번, 혹은 한 주에 한 번만 해도 될 것이다. 메인스트림의 자율주행차 프로젝트 중 24시간 인터넷 연결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는 없다. 5G 이야기를 빼고 생각한다더라도, 자동차라는 것이 인터넷 없이도 구동되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자율주행차의 보급률이 꽤 높아진 먼 미래를 생각해보면, 각각의 차량이 서로 통신하여(V2V; vehicle to vehicle) 교통체증 없이 교차로를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5G 혹은 그에 준하는 무선 통신이 있을 때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상상의 대부분은 거의 모든 자동차가 사람의 개입 없이 자율주행으로 구동하는 환경일 때나 가능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건 아직 멀었다.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케이스는, 자율주행차가 먹통이 되어 뻗어버려 원격 조종이 필요하다거나, 사람이 운전하다가 자율주행 모드로 바꾸어 주행하거나 할 때일 것이다. 화물차량에 특히 유용할 것이다. 미국의 장거리 화물트럭은 90% 이상을 고속도로에서 보낸다. 그리고 자율주행에 있어 고속도로는 일반 시내 도로보다 훨씬 난이도가 낮다. 그래서 많은 자율주행 회사들은 고속도로에서 자율로 주행하고 시내 진입 시 사람이 운전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는데, 그 모드의 전환에서 원격 조종을 연구 중이다. 이건 아마 5G에서 잘 동작할 사례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4G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꼭 5G일 필요는 없다. 5G의 가장 큰 이점은 레이턴시가 좋아진다는 것, 그리고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4. 네트워크 슬라이싱과 엔터프라이즈 시장
5G의 가장 쿨한 점 하나는 소위 ‘네트워크 슬라이싱’이라 불리는 것인데, 물리적인 네트워크 인프라를 독립적인 여러 개의 가상 인프라로 분리하여 서비스별로 완전한 전용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은 통신사들이 대용량 분산처리를 신경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트래픽은 구조적으로나 성능면에서 동일한 네트워크에 의존적이다.

5G 시대가 되면, 사용자의 용도에 따라 완전히 독립적인 가상 네트워크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다. 대역폭도, 레이턴시도 다르게 설정한. 예를들어, 자율주행 트럭을 운용하는 이에게는 물류창고와 고속도로 진입로 사이에서만 기능하는 전용 대역폭을 제공할 수 있다. IoT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게는 속도를 낮춘 대신 적용범위가 넓은 망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데이터 속도, 적용범위, 품질, 레이턴시, 안정성, 심지어는 (IoT에 유용할) 전력소모량 모두를 고객의 니즈에 맞게 커스터마이징 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런 가상 네트워크를 서비스의 형태로 기업이나 개인에게 재판매하는 MNO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소비자 사이드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엔터프라이즈 시장과 솔루션 서비스의 이야기인데, 이미 우리는 와이파이나 이더넷 대신 프라이빗 4G로 가상 네트워크를 구현하는 대기업들의 사례를 보고 있지 않나. 5G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5G의 킬러앱이 뭐라고?
2000년대 초 내가 통신사의 꼬꼬마 애널리스트였던 시절, 당시 통신 업계 투자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3G의 킬러앱이 무엇이냐고 묻고 다녔다. 사람들은 대부분 ‘영상통화’라고 답했는데, 정작 3G 시대에 영상통화는 등장하지 않았다.
주머니에 인터넷을 넣고 다닐 때의 킬러앱은, 자, 주머니에 있는 인터넷 그 자체였다. 시간이 흘러 영상통화가 등장은 했지만, 통신사들이 생각했던 그런 방식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다. 5G의 킬러앱은 아마, ‘더 빠른 4G’ 자체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스냅챗, 새로운 유튜브가 등장한다. 두터워진 파이프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새로운 기업가들이 채워갈 것이다.
어쩌면 그다지 혁신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1995년부터 시작되어 수십년간 이어져오고 있는 거대한 혁신이 아직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
- 번역: 피맥가이 / 편집: 뤽
- 원문: 베네딕트 에반스 https://www.ben-evans.com/benedictevans/2019/1/16/5g-if-you-build-it-we-will-fill-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