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넘버원 모바일 플랫폼을 보유한 카카오와 넘버원 이동통신사 SKT가 전격적으로 제휴했습니다. 서로 3천억에 상당하는 지분을 교환하는 딜이라고 하네요. 이 딜이 종료되면 SKT는 카카오의 지분 2.5%를, 카카오는 SKT의 지분 1.6%를 보유하게 됩니다. 크, 가히 피를 섞는 동맹..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인프라에 해당하는 망 사업을 주로 하는 SKT, 소비자 서비스를 주로 하는 카카오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두 회사가 밸류체인상 수직관계에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서비스 영역으로 계속 세를 넓혀오고 있던 SKT와 기반 사업으로 확장해나가던 카카오는 꽤 많은 영역에서 경쟁 관계에 있습니다.
대충 보더라도 이렇습니다.
카카오톡 – Joyn보이스톡 – 음성통화- 카카오맵/내비 – T맵
- 카카오택시 – T맵 택시
- 카카오파킹 – T맵 주차
- 멜론 – Flo
- 카카오미니(카카오i) – SKT 누구
- 카카오페이지/ 카카오TV/ (?) – 푹수수
- 범 B2B 메시지상품 (플러스친구/알림톡, 기업용 SMS/MMS)
- 범 플랫폼 서비스 (티스토어: 앱/게임, 디지털콘텐츠(웹툰/웹소/영상))
- 범 커머스 (11번가)
- 본인인증, 간편결제, 등등등..
카카오톡 출시 초반에는 메시징 시장에 대한 영역 이슈로 양사간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AI 스피커 전쟁(이라기엔 넘 자잘했나요..) 시절에도 한 판 붙었었고요. 작년 즈음부터는 카카오택시가 택시회사와의 갈등을 겪는 와중에 T맵 택시가 치고 올라가면서 모빌리티 사이드에서의 경쟁이 심화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경쟁들이, 이번 제휴를 통해 한 번에 짠 하고 정리될까요? 카카오택시가 티맵을 쓴다거나, 카카오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웨이브 독점으로 공급된다거나.. 글쎄요. 확률이 높으리라 생각되진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서로 덩치들이 너무 크기도 하고, 이미 벌려놓은 사업들이 커서 관성이 각각 생겨나 있을 거에요.
이번 제휴는 대충 ‘야야 노는 건 좋은데 너무 위험하게 놀진 말아라’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양사간 시너지, 서비스 혁신이라.. 당장은 별 일 없을거에요. 알잖아요.
이 제휴는 이미 있는 서비스나 사업을 대상으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의 무언가를 위한 제휴겠죠. 말하자면 코퍼릿 디벨롭먼트 성격의 제휴랄까요. 기사에서 굳이 ‘미래 R&D에 대한 협력’을 명시해놓은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넥스트 모빌리티: 최근 두 회사가 가장 격하게 붙었던 전장입니다. 그리고 자금 측면에서나 인력 측면에서 큰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죠. SKT도 이에 대한 관심이 없지 않습니다. 10월 초에는 현대자동차가 주도하는 모빌리티 스타트업 코드42의 투자에 참여하기도 했죠.
- 인터넷은행: 원래 이번 인터넷은행 입찰에 토스 말고 또 들어가려 했던 곳은 키움증권이었어요. 키움의 인터넷은행 컨소시움에 SKT가 있었죠. KT가 (잘 안되지만) 이미 케이뱅크를 하고 있어서, SKT도 이 쪽에 욕심이 있어왔을 겁니다. 은행사업의 경쟁은 출혈이 필수적입니다. 치킨게임의 강자 토스가 들어온다면 이 경쟁은 더 격화될 수 있겠죠. 카뱅은 짱짱한 우군을 더 확보할 필요가 있어요.
- B2B 솔루션 비즈니스: 최근 카카오는 사내독립기업이던 AI 랩을 분사해서 B2B 솔루션 비즈니스를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외부 파트너들이 쓸 수 있는 서버와 솔루션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 뿐 아니라, 영업하고 응대하고 유지보수하는 관리 역량도 매우 중요하죠. 이통사의 B2B 상품과 결합한다면, 카카오는 영업망과 단기상품이라는 외형을 챙길 수 있고 SKT는 솔루션이라는 가오를 챙길 수 있을 겁니다.
- 구독 비즈니스: 뭐 요새 월정액이니 구독경제니 뭐니 말들이 많은데요. 기간을 약정하고 핵심상품에 부가상품을 결합시켜 월 정기결제 시키는 걸로는 이통사를 따라올 곳이 없습니다. 심지어 내가 어떤 상품에 얼마를 쓰고 있는지 의무 가입기간이 지났는지 어쨌는지 체크하지도 않죠. 기업들도 그래요.
- ..을 위한 투자: 카카오는 모바일 서비스를 넘어 플랫폼으로 나아갑니다. 특히 소비자를 넘어 기업 시장으로 나아가고자 하죠. 단위 고객의 덩치가 커지는 만큼 아예 새로운 서비스/솔루션이 필요할테고, (소비자 망과 분리 관리/운영할 수 있는) 안정적인 망, 신뢰할 수 있을 만한 금융서비스가 필요하겠죠. 아니 정확히는 이를 위한 거대한 투자가 필요해요.
이를 위해서는 쩐이 필요합니다. 사업당 수천억 단위의 큰 투자가 필요하죠. 어느 한 기업에서 옴팡 내기에는 아무래도 좀 쫄리는 액수입니다. 다른 기업들을, 펀드를, 정부자금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이 때 가장 효과적인 것이 ‘힘을 합치면 그럴싸해보이는’ 돈 많고 욕심 많은 덩치 큰 우군의 지지선언이죠. 16년 네이버- 미래에셋 처럼요.
카카오와 SKT는 자체로도 자본을 일으킬 역량이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레버리지한다면, 훨씬 더 큰 판을 벌릴 수 있겠죠. 이번 3천억은 그 자체로 의미있다기보다는 더 큰 쩐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중물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물론.. 서로 ‘더’ 레버리지하려고 정보 안까고 나와바리 싸움 하다가 파토나면 뭐.. 그냥 어르신끼리 거하게 회식하고 마는거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