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한국사람들 넷플릭스에서 한국 거만 보나 (응 맞음)

원래 넷플릭스 안그랬던 것 같은데 지난 연말에 갑자기 ‘2019년 탑10’ 콘텐츠를 공개했습니다. 다큐멘터리와 일반 작품(구분이 좀 모호하지만..)으로 나눠서 두 세트를, 국가별로 공개했죠. 아마 많이들 보셨을테고, 대부분 으아니 내가 왜케 대중취향과 다르지(아니 왜 000이 랭킹에 없지?)하며 현타온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뭐 사실 그 현타는 중요한게 아닙니다. 뭐 덕후는 덕후끼리 있어서 세상이 덕후 세상인 줄 아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이 차트를 좀 곱씹어보면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들을 추론해낼 수 있습니다. 대충 꼽아보면


1. 집계기준

각주를 보면, 이 리스트는 ‘2019년 공개& 현재 스트리밍 중’ 인 작품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2018년 11월 말에 공개되어 2019년 초 대한민국을 거의 집어삼켰던 <스카이캐슬>은 제외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글로벌 모든 OTT의 체류시간 상당수를 점유하는 것으로 알려진 클래식 콘텐츠들. <하우스 오브 카드>나 <나르코스> 혹은 <프렌즈>와 같은 콘텐츠들도 제외되어요.

그리고 랭킹 중 <기묘한 이야기>가 통 시리즈로 명시되지 않고 시즌3라고 명시된 걸로 보아 집계 단위는 시리즈가 아니라 시즌입니다. 이건 좀 재미있는데요. 클래식 콘텐츠면서 시즌이 여럿인 시리즈들에게는 불리합니다. <킹덤>을 기점으로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사용자를 엄청 늘렸을텐데, 그 신규 유입 중 상당 수는 클래식 시리즈의 ‘시즌1’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큰거죠. 그러니 클래식 시리즈의 최신 시즌은 좀 억울할 수도 있겠어요.

아니 1위가.. <살색의 감독 무라나시>라니.. 얘네 왜이래

우리나라 랭킹에도 <농염주의보>가 있고, 일본의 랭킹을 보면 은혼, 리락쿠마, 울트라멘, 에바 등의 애니 네 편이 포함된 것은 물론, 오리지널 예능인 테라스하우스가 무려 2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이걸 보면 이 ‘작품 랭킹’의 범위는 애니와 예능까지 포함하는 걸로 보여요. 그렇다면 넷플릭스에 유통되는 뭇 공중파의 예능들은 드라마 대비 성과가 좋지는 않나보네요.

뭐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우리나라 랭킹도 일본의 랭킹도 그 나라 시장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넷플릭스가 뾰족한 니치라기보다는 메이저 채널이 되었다는 뜻이겠죠. 로맨스가 강한 드라마가 상위랭크되는 대한민국, 다소 자극적인 콘텐츠와 애니들이 대거 상위랭크되는 일본. (참고로 일본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명탐정 코난>에게 밀려 2위를 하는 나라입니다)


2. 콘텐츠는 로컬, 자체기획보다는 로컬기획

물론 유럽은 그런 경향이 덜합니다만, 아시아권 특히 갈라파고스 한중일 3국은 로컬 콘텐츠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세 나라 모두 영화시장 규모로 세계 10위 안에 드는 큰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한국과 일본 모두 랭크 내에 글로벌 콘텐츠는 3개 뿐이에요. (한국과 일본 모두에 6 언더그라운드, 위쳐가 있고, 한국은 기묘한이야기3, 일본엔 아쿠아맨이 추가로 들어가있어요)

넷플릭스는 <하우스오브카드>나 <루머의루머의루머> 등의 글로벌 오리지널로 가장 유명하기는 합니다만, 미국을 제외한 시장에서는 로컬이 강력합니다. 미드/영드 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에요. 음 아니, 미드/영드 보는 사람도 로컬 콘텐츠를 어쩌면 많이 볼 지도 몰라요. 여기서 바로 넷플릭스의 무시무시한 점이 등장하죠. 저 로컬 콘텐츠들이, ‘오리지널 대우’라는 점이죠.

우리나라의 경우 탑10 중 7개가 국내 제작사가 국내에서 제작한 로컬 콘텐츠입니다. 그런데 이 중 ‘진짜 오리지널’은 <농염주의보>와 <페르소나>, <좋아하면 울리는> 세 작품이죠. 나머지 넷은 공중파/종편에 유통되는 작품을 거의 제로홀드백으로 떼오는 조건으로 제작비 중 큰 부분을 지원하는, ‘오리지널 대우’ 콘텐츠들입니다. 그리고 그 중 <동백꽃 필 무렵(팬 엔터 제작)>을 제외한 세 작품은 스튜디오 드래곤 작품이에요.

최근 넷플릭스의 콘텐츠 전략을 정리해드린 바 있습니다. 단건 콘텐츠가 아니라, 스튜디오 단위로 투자하기 시작했다고 말이죠. 디즈니와 HBO, 아마존, 애플이 치고 들어오는 북미에서 넷플릭스는 수세에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전선을 글로벌로 넓혀야하죠. 이를 위한 데이터를 뜯어봤을거고, ‘로컬 시장에서는 로컬의 공룡 제작사들이 만드는게 타율이 높구나’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을 겁니다.


3. 밀면 밀린다

작년 초에 <킹덤>이 풀릴 무렵, 넷플릭스는 진짜 거의 모든 매체를 도배하듯 했습니다. 아니 콘텐츠를 저런 식으로 무식하게 밀면 되나.. 싶은 수준이었는데요. 됐어요. 1위 했어요. 넷플릭스의 실적 콜에서도 언급되기도 할 때, 솔직히 전 속으로 ‘그 정도까진 아닌 거 같은데 언플이 좀 있네’ 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듯해요. 유료가입자 200만의 한국시장에서 1위 한 건 꽤 대단한 성과입니다.

일본도 비슷한 시기 <테라스 하우스>를 엄청나게 밀어댔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혹은 (시장규모 감안시) 그보다 나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로컬이 매우 강한 한국과 일본 시장을 뚫고 들어온 글로벌 콘텐츠들 역시 넷플릭스가 ‘맘먹고 밀어낸’ 콘텐츠들입니다. <6 언더그라운드>도, <위쳐>도 말이죠. 1) 마케팅 예산을 엄청나게 쓰고, 2) 사람들 눈 가는 곳 전부를 도배하면, 3) 성과로 이어진다. 작년 넷플릭스의 러닝일거에요.


4. 그래서 앞으로?

국내에서만 넷플릭스 유료 사용자가 200만 명이 넘어간다고 합니다. 공유하는 비율이나 가구당 계정 수 등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넷플릭스는 어지간한 종편을 넘어서는 도달률을 갖기 시작했다고 봐야할 듯합니다. 이제 더 이상 넷플릭스는 ‘미드/영드 매니아’들이 전유하는 니치한 매체가 아닙니다. 글로벌이면서도 로컬한, 아주아주 거~대한 메이저 매체라고 봐야겠죠. 콘텐츠 전략 역시 그렇게 진화할거구요.

기존에는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만 하고 있던 전략이 아시아 그리고 우리나라에 적용되기 시작할 겁니다. 원래 한국에서 인기있고 잘팔리는 (로맨스가 강한) 드라마, 그리고 스튜디오 드래곤이나 제이콘텐트리, 에이스토리와 같은 로컬 공룡 제작사, 독점을 위한 과감한 투자, 그리고 투자한 만큼 뽑아내기 위한 아주아주 큰 마케팅 캠페인.

음 이렇게 써놓고 보니 기존의 공중파나 영화 배급사들이 하던 플레이와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네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좀 덜 멋지고 좀 진부해 보이기도 해요. 넷플릭스는 뭔가 좀 다르고 뭔가 더 팬시하고 뭔가 더 기똥찬 것을 할 것만 같았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그래서, 기존 플레이어랑 전략이 비슷해서 무서운 겁니다. 자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 생각해볼까요. 공중파든 종편이든 극장3사든 넷플릭스든 전략이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들을 비교할까요. 넷플릭스는 단일채널로 글로벌 1.58억 명의 유료구독자를 갖고있고, 매해 18조원에 가까운 돈을 콘텐츠에 쏟아붓는 공룡입니다. 차라리 전략이 다르면 전략으로 차별화를 할 텐데, 덩치로 밀어붙이면 방법이 없어요 방법이.

+
2020.2.25 업데이트

넷플릭스에 일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탑10 기능이 들어갔습니다. 이제 ‘랭킹’이라는 금단의 큐레이션을 상시로 운영한다는 뜻입니다. 자 랭킹에 들어간 작품들을 봅시다. 아시겠죠? 한국 사람들은 한국 콘텐츠를 봅니다. 그것도 아주 대중적인 콘텐츠들을 말이죠. TV에서 넷플릭스로 옮겨갔을 뿐 역시는 역시입니다. 자 그러니 넷플릭스가 옛날 방송사들이 하던 전략을 하겠어요 안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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