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때는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동시접속자 230만명을 찍은 적도 있었죠. 별 것 아닌 서비스 같으면서도 신박했던 서비스였습니다. 몇 년 전 등장한 이 서비스는 모바일 시대 새로운 표준이 되는 듯 했습니다. 1,500만 불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하며 뭔가 비즈니스를 만들어가는 듯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닐 줄 알았던, 아니 아니었으면 했던 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HQ 트리비아의 이야기입니다.
등장이 화려했던 만큼 퇴장도 드라마틱했습니다. 애초에 카피가 어렵지 않은 서비스였다보니 전 세계적으로 우후죽순 짭 서비스들이(한국의 잼라이브를 포함해) 난립했죠. 유저들의 수준이 상향평준화되고, 공략법들이 개발되면서 우승자 혜택도 상대적으로 하향조정되었습니다. 고속 성장이 둔화되는 순간, 모든 컬트는 멈춥니다. 컬트가 사라진 HQ트리비아는 짜게 식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조직 내홍이 일어납니다. 공동 창업자 사이 싸움이 생겨 콜린 크롤은 루스 유스포프를 밀어냈습니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콜린 크롤이 자택에서 약물과용으로 사망하죠. 다시 돌아온 루스 유스포프는 HQ트리비아의 상징과도 같던 호스트 스캇 로고스키를 내보내는 등 나름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230만이던 사용자는 수 만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결국 HQ트리비아는 폐업합니다.
자, 중요한건 와 재미있고 안타까운 일이네요..가 아닙니다. 순간이나마 전 세계를 휩쓸었던 이 컬트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대체 그 퀴즈쇼는 뭐가 그렇게 대단했을까요?

- 객관식 && 실시간 인터랙션
온라인과 모바일의 시대가 되면서, 어떤 호스트(인플루언서)가 다수의 오디언스와 실시간으로 인터랙션 할 수 있는 기술적인 인프라가 깔렸습니다. 이건 여러명이 하나의 가상공간에 모여 각자의 과업을 하는 오픈월드식 MMORPG와는 또 다르죠. 모두가 동시에 하나의 과업을 하니까요. 그런데 그 동안의 방식은 ‘채팅’이었습니다. 유튜브나 아프리카의 스트리머들을 보면 그렇죠. BJ가 방송(과업)을 진행하고, 시청자들은 채팅창에 메시지 혹은 과금메시지를 쏩니다.
퀴즈쇼는 이 ‘단일 과업’에서 시청자들에게 선택지를 주었습니다. 양자택일이든, 다중 선택이든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이 수 개의 선택지를 갖게 되었죠. 이는 호스트에게 정량적인 피드백을 줍니다. 호스트는 ‘똘끼 넘치는 댓글을 쓴 한 명의 오디언스’에 반응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수의 오디언스가 선택한 정제된 피드백’에 기반하여 콘텐츠를 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이야 가장 간단한 형태인 퀴즈쇼였지만, 이제 이 방식으로 더 다양한 콘텐츠가 등장할 겁니다.
- ‘수퍼볼 광고’의 온라인 대체품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건데?라고 한다면 바로 이겁니다. 오버추어와 구글 이후 온라인에서의 광고란 ‘타겟팅’과 ‘개인화’ 쪽으로 주로 발전해왔습니다. 나에게만 특별한 메시지를 보내주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쪽인 거죠. 반대로 ‘남들과 같은 걸 동시에 보는’ 채널 쪽으로의 발전은 더뎠습니다. 그러다보니 ‘원래 온라인/모바일은 그런 매스 채널이 아냐’ 하는 생각들도 많이하죠.
그런데 광고상품 중에서는 ‘불특정 다수에게 한 방에 뿌리는 미칠듯한 고퀄광고’가 있습니다. 통상 그런 광고는 타겟을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조건 눈을 잡아 좋은 인식을 뙇 하고 남겨야하죠. 그러니 그런 광고들이 젤 화려하고, 멋지고, 아름답고, ‘영화적’이죠. 당연히 당시 가장 잘나가는 회사/조직들이, 그 해의 가장 큰 예산을 들여 만듭니다.
그러니 우리가 흔히 ‘영화 같다’라고 하는, 혹은 칸 광고제 같은데에서 상 받고 하는 때깔 좋은 광고들은 여전히 TV나 옥외광고에서 트는 겁니다. 가장 상징적인 구좌가 바로 미식축구 결승전인 수퍼볼 하프타임입니다. 그 해의 젤 기대되는 영화들, 나이키/P&G 같은 전 세계 브랜드마케팅 1등들, 가장 진보적인 이슈를 선도하는 조직들이 이 구좌에 몰빵합니다. 온라인/모바일 광고와는 사뭇 결이 다른 구좌였죠.
하지만 스냅챗이라는 메기가 날뛰기 시작합니다. 스냅챗은 (대장인 에반 슈피겔 스타일만큼이나)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합니다. 직접 오리지널 시리즈를 기획해서 만들고, 방영 시간을 정해 동시에 쐈죠. 그 연장선에서 HQ 트리비아가 떡 하니 등장한겁니다. 동시에, 230만명이 동시에 같은 화면을 (거북목을 하고)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마지막 퀴즈 답을 발표하기 직전! 광고를 쏜다! 자 이거 돈이 될까요 안될까요.
- ‘미디어’ 커머스 vs 미디어 ‘커머스’
자 자신이 혹은 주변에서 홈쇼핑 경험해본 사람들은 아실 겁니다. 홈쇼핑이라는게 뻔히 상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는 그 중독적 매력에 대해서요. 꼭 나한테 맞춘, 진짜 나한테 도움이 될 것 같은 그럼 상품을 심지어 좋은 조건에 한정판으로 권하는 걸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결제를 하고 있다더라 이런거죠. 모바일에서도 지금 그런 ‘홈쇼핑스러운’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퀴즈쇼가 그 시도 중 하나였습니다. 퀴즈 중간 하나씩 구매유도 광고가 들어가는 형태죠. 동시에 다량의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광고라는 점에서 생산측 입장에서도 재고/유통 부담이 줄어 좋습니다. 소비자들도 마치 게임하듯 즐길 수 있죠. ‘수퍼볼 광고’보다는 작아도 구매전환이 높은 상품으로 개발될 여지가 있달까요. 물론 더 노골적인 형태의 라이브커머스는 중국에서는 대세가 된지 오래이긴 하지만요.
- 사용자 도달
이 점이 HQ 트리비아의 초기 장점이었습니다. 퀴즈쇼라는 형태야 익숙했지만, 다 같이 즐기는 게임이라는 점이 참신했습니다. 미국의 제퍼디나 한국의 1:100 같은 퀴즈쇼가 있다지만, 230만 명이 한꺼번에 즐기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으니까요. ‘한 회에 수 백 만 명이 모인다’는 건 그 자체로 화제였습니다. 중국 퀴즈쇼는 400만 명을 모았기도 해요.
하지만 전 연령으로 확산되지는 못했습니다. 저연령 시청자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죠. 그리고 (이렇게 구분짓기는 좀 그렇지만) 저연령 시청자들은 빠르게 다른 콘텐츠로 옮겨가는 편이고, 동시에 지출여력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수익화하기 정말 어려운 타겟이죠.
동접 230만이라는 숫자도 좀 애매합니다. 특히 동접계의 글로벌 킹인 ‘스포츠/게임 중계’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미국 수퍼볼 중계는 미국에서만 1억 명이 봅니다. 월드컵 결승전은 7억 명이 보는 것으로 알려져있죠. 하다못해(??) 아카데미 시상식만 해도 2,400만 명이 보고, 트럼프 국정연설을 3,400만 명이 봤습니다. 덕후들만 보는 것으로 오해받는(?) 롤드컵 결승은 지난 여름 290만 명이 시청했습니다.
2017년 10월 혜성처럼 등장해 미디어/서비스 계에 충격을 줬습니다. 한국에선 ‘잼라이브’가 등장해서 연예가중계 리포터 김태진 님은 ‘잼아저씨’라는 캐릭터를 얻기도 했죠. 그런데 그 센세이션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창업자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나고, 사건 사고가 이어졌던 HQ 트리비아의 폐업 당시 직원은 25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또 새로운 그리고 기존 판을 흔드는 서비스는 또 등장하겠죠. 그게 이바닥이니까요.
– 글: 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