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이후 프로바둑계의 변화 (번역)

*이하진 전 프로 바둑 기사가 2020년 전미 e-바둑 컨퍼런스 개막식의 AI 라운드테이블을 위해 준비한 글을, 이바닥늬우스에서 번역했습니다.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cEL7I6BWTc?t=3307)

프로 바둑 기사는 두 가지로 분류되곤 합니다. 대회에 나가는 기사와 교습을 주로 하는 기사죠. 대회에 나가는 기사들은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훈련하고 대국을 두는데 쓰고, 그 상금으로 대부분의 수입을 올립니다. 교습을 하는 이들 역시 대회에 출전하기는 하지만, 주로 방송 출연, 집필, 기원 운영, 교습 등의 활동을 통해 돈을 벌죠.

한국의 경우 대한바둑협회가 인증하는 프로기사는 380명 정도 됩니다. 이 중 상위 50명 가량을 대회에 주로 나가는 기사로 볼 수 있습니다. 작년 국내 랭킹 1위 기사는 대회 상금으로만 백만 불(12억 원) 정도를 벌었습니다. 10위 급이 12만 불(1.4억 원)를 벌고요. 

사람을 뛰어넘는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AI)의 등장은 바둑계를 크게 바꿨습니다. 그 변화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모든 기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다른 둘은 각각 대회에 주로 나가는 기사와 교습을 주로 하는 기사에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다소 추상적일지 모르는 첫 번째 변화. 현재와 미래의 모든 프로 기사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커리어에도 인생에도 말이죠.

제가 프로 기사를 지망할 때 저는 스승님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스승님의 가족들은 물론, 문하 기사들과 함께 말이죠. 가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스승님은 모든 문하생들을 불러 거실에 둘러앉아 차를 함께 덖어 마시곤 했습니다. 스승님은 찻잎이나 다도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잘 하고 있는지, 바둑에 대해 어떤 새로운 생각을 하는지로 이어졌고요. 

그다지 오래전이 아닌 그 때만 하더라도 바둑이 우리 평생의 길이 될거라 의심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바둑 기사의 삶은 철학자나 예술가, 수도사와 비슷하다고 여겼으니 말이죠. 바둑이 실제로 스포츠의 한 종류고, 프로 기사들은 엘리트 운동선수에 해당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움직임 역시 있었습니다만 많은 기사들은 더 전통적인 가치에 의해 움직였습니다. 신념이 있었던 것이죠. 프로 기사로서,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정진하고 또 정진한다는 것에 말이죠.

‘신의 한 수’라는 말은 궁극에 다다른 바둑을 이르는 말입니다. 하지만 알파고와 AI 이후, 우리는 알게 되어버렸죠. 바둑의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 평생 구도하고 정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대신 이는 더 좋은 GPU를 갖추고 더 잘 고도화된 뉴럴 네트워크를 세팅하면 가능해집니다. 

저희 기사들은 엄청난 상실감에 빠졌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 기사를 첫 경기에서 꺾는 순간 저는 (프로 기사를 떠나) 진로를 바꾸었습니다만, 제 안의 상실감은 여전합니다. 프로 기사마다 다르겠지만 상당수가 바둑계를 떠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말 이세돌 기사가 은퇴했죠. 최근 TV에서 그는 이 사명감의 상실이 은퇴의 주요 원인이라 인터뷰한 적 있습니다.

두 번째 변화. 프로 기사들이 AI를 코치처럼 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12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프로 기사인 친구 몇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프로 바둑계에서는 AI처럼 두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모두의 믿음이고, 프로 기사들은 대부분 집에 AI를 설치해둔 상태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사실에는 빛과 그림자 모두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전성기를 지난 기사가, AI로 치열하게 훈련을 한 뒤 극적으로 정상에 다시 오르는 일이 생겨납니다.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는 젊고 새로운 프로 기사들이 늘어나고도 있죠. 이런 변화는 최고를 꿈꾸는 모든 기사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한 편 팬들에게는 더 흥미로운 대회를 선사합니다. 

하지만 프로 기사들이 점점 자신 고유의 기풍을 갖추려는 열정이나 의지를 잃어갑니다. AI 이전 최정상급 기사들 대부분은 각자의 기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기풍이 바둑 팬들의 응원과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죠. 하지만 오늘날 모든 기사들은 AI의 스타일을 모사하려 합니다. 프로 기사의 기량은 누가 더 AI처럼 두는지에 따라 판단되죠.

마지막 변화는 바둑 교습계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좀 슬픈 쪽으로요. 프로 기사로부터의 교습 대국이나, 개인 교습 수요가 급감했습니다. 프로 기사들의 지도 대국과 레슨은 비쌉니다. 이것이 많은 기사들에게 중요한 수입원이었죠. 프로 기사를 꿈꾸는 어린 수련생들이 그 타겟이었고요. 보통 이 시장은 수련생 학부모들과 기원 원장과의 상담에서부터 시작하죠. 

학부모들이 추가 훈련에 대해 동의하면 기원은 프로 기사를 연결합니다. 이 때 이 기사는 일주일에 한 국씩 총 다섯 번의 대국을 정해진 금액으로 약속하고, 기원을 방문해 지도 대국을 두고, 복기합니다. 하지만 이 프로 기사의 지도 대국과 복기라는 과정이 AI로 대체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좀 더 낮은 이들을 위한 과정이나 강의라는 영역이 있습니다만, 프로 기사들은 보통 개념을 설명하는 것보다는 지도 대국에 더 능합니다. 어쩔 수 없이, 많은 프로 기사들은 이제 생업을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AI가 등장하고, 프로 바둑계에 나타난 세 가지 영향입니다. 바둑은 이제 어떤 구도의 길이라기보다는 스포츠가 되어버렸습니다. 수련생들과 바둑 팬들은 프로의 대국을 이해하고 더 나은 바둑을 둘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얻게 되었습니다만, 특히 교습으로 생활을 영위해온 프로 기사들은 이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알파고 이후 프로바둑계의 변화 (번역)”의 2개의 생각

  1.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프로기사를 이겼을때 일반 바둑 애호가였던 저도 프로바둑의 노을을 예견했습니다. 더 이상 인간의 두뇌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지요. 4년이 지난 지금 AI딥러닝의 IQ는 2만을 넘었다는 얘기가 첨단 기술발전 특허 업계에서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미래는 AI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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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감입니다.
      흔히 언급되는 가장 고도의 지적능력이 필요하다고 하는 법조계와 의료계가 오히려 가장 인공지능이 지배할 분야로 보고있으니까요.
      앞으로는 인공지능화와 기존인력분야와의 경제적측면에서 투쟁할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볼때, 결국 자본과 결합한 기계화가 이겨왔지요.
      인공지능은 결국 지적능력의 기계화라고 할수 있을테니까요.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까진 몰라도 절대적의존은 피하기 힘들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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