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는 어떻게 역사를 만드는가 (번역)

*2018년의 인터뷰입니다.
채드윅 보스만의 명복을 빕니다.

(L-R) 라이언 쿠글러, 채드윅 보스만

“아, 너무 숨막혀요.”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캐스팅된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말 그대로, 진짜 공기가 하나도 통하질 않더라고요. 심지어 전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죠. ‘저기요, 저좀 꺼내줘요!’라고 말할 지경이었어요.”

첫 번째 흑인 마블 히어로를 맡으며 그가 포스터에 이름을 올린 영화의 소식을 알릴 즈음엔, 보스만은 새로 바뀐 코스튬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마흔 한 살의 배우는 “그래도 조금 지나니 좀 피부처럼 느껴지긴 하더군요”라고 말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지만요.”

2월 16일 개봉이 예정된, 디즈니가 야심차게 기다려온 <블랙 팬서>도 마찬가지. 수십년 동안 배우들, 감독, 제작자, 팬들은 왜 이렇게 헐리우드에 흑인 슈퍼히어로가 없는지 궁금해했다. 

물론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90년대 워너 브러더스의 <배트맨> 시리즈에는 크리스 오도넬 이전에 말론 웨이언스가 로빈의 물망에 올랐었다. 웨슬리 스나입스는 두 번의 속편이 제작된 뱀파이어 슈퍼히어로 <블레이드>에 출연했다. 2004년 할리 베리는 <캣 우먼>의 주연이었지만 비평가들로부터 조롱을 받으며 흥행에 참패했다. 그 12년 후에는 <맨 인 블랙>의 공동 주연이었던 윌 스미스가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은밀한 암살자 ‘데드샷’을 연기했다. 

지난해 <원더 우먼>이 히트하며 수백만 명의 여성들에게 영감을 준 것과 마찬가지로, 라이언 쿠글러가 연출한 <블랙 팬서>는 거대한 움직임의 힘을 배가시킬 수 있는 그런 모멘텀이 될 수 있는 영화다.

<블랙 팬서>는 (디즈니와 같은) 헐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가 흑인이 감독하는 흑인 슈퍼히어로 영화에, 흑인 배우를 주요 출연진으로 쓰는데 그린라이트를 준 최초의 영화다. 포레스트 휘태커(주리 역), 안젤라 배싯(라몬다 역), 마이클 B 조던(킬몽거 역), 루피타 응요(나키아 역), 다나이 구리라(오코예 역), 레티티아 라이트(슈리 역) 등.

그리고, 썬댄스의 화제였던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나 <록키>의 속편인 <크리드>를 감독했던 라이언 쿠글러를 빼고 이 중요한 마일스톤을 설명할 수 없다.


“진보는 간조와 만조가 반복되며 온다고 생각해요.”

쿠글러는 말한다. “이런 일이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저희 같은 케이스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소개되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가 있었던 곳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 필요하죠.”

<블랙 팬서>는 1966년 코믹스로 처음 소개되었던 마블 캐릭터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에서의 블랙 팬서는 ‘트찰라’라는 이름의 전사로, 미래적인 아프리카 왕국에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돌아간다.

이 영화는 현재 미국이 처한 상황- 백인이 아닌 이민자들에 대해 끊임없이 비난을 늘어놓는 대통령 때문에 고조된, 인종 갈등의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다. <블랙 팬서>가 개봉한 영화 업계 역시, 2년 연속 백인이 아닌 배우를 한 명도 수상 후보로 내어놓지 못한 오스카를 향한 비판이 일어나는 중이다.



<블랙 팬서>에 대한 기대는 배트맨이나 토르 프랜차이즈의 최신작 개봉보다 훨씬 크다. 2016년 5월 영화의 주요 캐스팅이 알려지며 트위터에서는 #BlackPantherSoLIT 해시태그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블랙 팬서>는 보통은 비수기인 2월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발렌타이 전후를 기해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을 추월하며 박스오피스 기록을 쓸 기세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이 최신작품은 제작비에 2억 불(2,400억 원), 마케팅에 1.5억 불(1,800억 원)을 들였는데, 개봉 첫 주말에만 1.5억 불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이 흑인 커뮤니티에 대한 평가를 다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미국 내 극장 흥행 수입은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계 관객 수는 2016년 560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미국 영화협회는 밝혔다. 

사람들은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표성이죠. 중요한 것은” 마블이 산하로 있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앨런 혼 의장은 말한다. “사람들에게 자신들 혹은 자신들을 반영한 무언가가 표현된다는 것은 아주 강력하고 중요합니다.” 혼 의장은 <블랙 팬서>가 거대한 흐름의 일부라고 믿는다.

그는 <미녀와 야수>, <코코>, 곧 개봉할 <뮬란> 실사영화가 포함된 라인업을 가리키며 말했다. “젠더 다양성 측면에서는 저희는 꽤 신경 써왔습니다. 인종과 피부색에 대해서는, 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곧 보여드릴 수 있으리라고요.”

움직임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2017년 조던 필이 감독한 <겟 아웃>은 전 세계 박스오피스 2.54억 불의 흥행과 4부문의 오스카 노미네이트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디즈니는 3월 오프라 윈프리와 신예 스톰 리드가 출연하는 매들린 렝글의 원작기반의 <시간의 주름>을 에이바 듀버네이의 감독으로 공개했다. 이런 대작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도, 헐리우드의 움직임을 그저 태동기라 치부하는 건, 어쩌면 안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되었던 듀버네이는 쿠글러와 친구로, 그 이전에 <블랙 팬서> 감독직을 제안 받았었다. “흑인 영화 제작자들이 만들어내는 영화들을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하면, 지난 30년 간 반복된 일과 다를 것이 없어요.” 듀버네이는 스파이크 리, 존 싱그르턴, 트로이 베이어, 카시 레몬스와 같은 감독들을 언급했다. “중요한 건 흐름입니다. 이를 어떻게 이어나가고, 단순한 흐름이 아닌 팩트로 만드느냐가 아닐까요.”

1월 말 <블랙 팬서>의 LA 프리미어는 헐리우드에 늘상 있는 그런 밤이 아니었다. 듀버네이는 이날 오전 버라이어티와의 전화통화에서 “제가 이야기하는 흑인들 모두가 ‘오늘 뭐입어요’라고 서로 묻더군요. 우리들의 이벤트였어요!” 행사장 바깥에는 수많은 이들이 모였고, 눈물을 글썽이며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했다. 출연진 상당수가 아프리카 전통 복식에 모티브를 얻은 ‘왕족 복장’을 입었다. 

“백인이 아닌 이들에게, 슈퍼 히어로 영화는 그저 꿈 같은 것이었죠.”

코트니 밴스가 극장에 들어오며 말했다. “지금 이 자리는, 우리도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선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용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여기서 일어난 일은, 이제 다른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버라이어티는 며칠 전 <블랙 팬서>의 감독 라이언 쿠글러와 주연 채드윅 보스만을 그리피스 공원의 한적한 도로에서 만났다. 화보 촬영을 위한 그들만의 ‘스턴트’- 디즈니의 홍보 담당자를 기함하게 한 맨발로 바위를 오르는-를 마친 후, 둘은 <블랙 팬서> 제작에 관한 인터뷰를 위해 앉았다.

두 사람은 2015년 비벌리힐즈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보스만은 쿠글러의 신작 <크리드>의 언론간담회를 보러 슬쩍 들어왔었다. “어떤 느낌이 있었죠. 그 때 그런 것들을, 우리 둘이 같이 하게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요.”

쿠글러의 데뷔작인 영화들을 좋아했다는 보스만은 말했다. <블랙 팬서> 이전, 보스만은 <42>에서 메이저리그의 전설 재키 로빈슨을, <겟 온 업>에서는 소울의 아이콘 제임스 브라운을 연기했다.

보스만은 블랙 팬서가 대중 문화에서 갖는 의의를 공부했다. 그는 블랙 팬서 만화책을 사러 직접 동네 서점에 가기도 했다. (마블이 어차피 줄 테지만) 모자와 선글라스로 가렸지만, 그를 알아본 서점에선 읽을 것들을 더 챙겨줬다. “’이 사람이 블랙 팬서가 될 사람이야!’라고 하더라구요.” 보스만은 그 때를 회상했다. 

쿠글러는 그의 영화가 중요한 메시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되돌아보면, 아티스트로서 저는 정체성에 대한 것을 많이 다루고 있더군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흔히 있는 일이죠. 저희에게는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이상하고 특별하거든요.”

그는 <블랙 팬서>를 촬영하기 전 아프리카 순례를 떠났다. 그의 첫 아프리카 방문이었다. “이 영화를 찍을거면, 반드시 갔어야만 했어요. 제가 외모가 이렇다고 그런 걸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백인 감독도 <블랙 팬서>를 만들 수 있었을까? 보스만은 말을 아꼈다.

“글쎄요. 할 수 있을까요. 네 뭐, 만들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들이 그들의 관점을 갖고 있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그들은 이 갈등의 당사자가 아닙니다. 같은 뉘앙스를 담아낼 수 없어요. 그들은 미국에 실존하는 인종 갈등과 그 관념을 갖고 있지 못해요- 우린 우리의 조상조차도 찾기 어렵다는 것을 말이죠. 알든 모르든.”

쿠글러는 말했다. “전 영화를 만드는 이가 그가 다루는 주제와 개인적으로 관련한 영화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대부> 시리즈나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보다 더 이탈리아계 미국인의 범죄를 더 잘 보여주거나, <똑바로 살아라>보다 브루클린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으니까요.”

<블랙 팬서>가 극장에 걸리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90년대 초, 스나입스는 대본을 각색하고 감독들을 찾아다니면서까지 그 역을 하고 싶어했다. “정말 멋지고 독특한 마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스나입스는 말했다.

“백인, 흑인, 동양인에게 어필할 수도 있고, 무술도 있죠. 정말 문화적으로 다양한 것이 뒤섞였으니까요.” 그는 웃으며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잽을 날렸다. 그 프로젝트는 성사되지 않았다. “그 땐 그랬어요. 추진할 만한 근거가 없었죠.”

2009년 디즈니가 마블을 인수했을 때, 그들의 첫 임무는 ‘아이언 맨’이나 ‘인크레더블 헐크’처럼 당대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들을 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블랙 팬서를 위한 준비 역시,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이전 영화들에서 진행되었다. 이윽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제작자들은 이 캐릭터를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캡틴 아메리카도 아이언 맨도 편들지 않는 어떤 중립적인 인물이 필요했다.

마블의 간부들이 모였다. 그들은 이 ‘블랙 팬서’의 역할에 보즈만 외 대안을 생각할 수 없었다. 마블의 사장 케빈 파이기는 회상했다. “스토리 개발 미팅에서 그의 이름이 나왔을 때부터, 그의 소속사에 연락해서 그와 통화할 때까지. 딱 24시간 걸렸던 것 같네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크리스 햄스워스, 크리스 프랫 모두 그들의 배역을 위해 오디션을 봐야했지만, 보스만은 대본 리딩도 없이 즉석에서 제안을 받았다. 그는 <겟 온 업>의 홍보활동을 하던 중 수락했다. 취리히에서,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며.



배우들은 종종 이미 만화로 팬덤을 가진 히어로 역할을 맡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데, 보즈만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블랙 팬서의 팬들에게 누가 될까, 제가 연기했던 다른 배역들 덕분에 그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미 재키 로빈슨 외에는 (흑인 메이저리거가) 아무도 없던 시대에 다녀왔습니다. 제임스 브라운이 되어 소울도 경험했어요. 팬들은 재키 로빈슨과 제임스 브라운을 사랑했기 때문에 열광했으니까요.”

보즈만은 부담을 가졌을까? 전혀 아니었다. 그는 말한다. “그게 재미죠.”

블랙 팬서를 연기한다는 것은 보즈만이 그 캐릭터를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이해하기 위해 훈련 캠프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남아공 억양을 완벽히 배우기 위해 방언 코치와 함께 일했고, 자신의 실제 조상을 찾기 위해 DNA 검사를 받았다.

“제 기원에 대해 이해하는 것, 핵심은 그것이었죠.” 그는 하루에 다섯 시간 체육관에서 웨이트, 유산소, 무술을 배웠고 식단도 관리했다. 

“쉴 수가 없었습니다.” 보즈만은 촬영 기간엔 두 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그리고 까다로운 식단을 고수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고기를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루에 소비하는 에너지 대비해서 그게 너무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는 몸이 날렵하지 않다고 느꼈다. “점점 채식에 가까운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블 영화들 모두는 어떤 면에서 비슷하지만 쿠글러는 마블 임원들을 설득해 특별한 스탭을 꾸렸다.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의 사진 감독 레이첼 모리슨, <크리드>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해나 비츨러, 편집자 마이클 쇼버 등을 불러왔다.

그 덕에 일부 비평가들은 <블랙 팬서>가 한층 뛰어난 바이브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보스만은 말했다. “확실히 이건 라이언 쿠글러 영화임을 알 수 있어요. 분명 그의 인장을 찍는 것 같은 그런 결정들이 내려졌으니까요.”

포스트 프로덕션 기간 중 디즈니에는 쿠글러가 <시간의 주름>을 마무리한 그의 파트너 듀버네이를 위해 마련한 공간이 있었다. “에이바는 제 가족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저희 리더와 같아요. 이제 막 등장한 젊은 영화인들, 저희는 에이바를 저희의 다음 주자로 보고 있어요.”

에이바 듀버네이

그들은 같은 복도에 머물렀다. 종종 서로의 지인들을 소개해주며 교류했다. 쿠글러는 듀버네이에게 그들의 영웅 중 하나인 (회고록 <아름다운 투쟁>의) 작가 타네히시 코츠를 소개하기도 했다.

하루는 듀버네이가 쿠글러를 주차장에 불렀고, 주차된 차에서 창문이 내려갔다. 그에게 인사하고 싶어했던 이는 오프라였다. 듀버네이는 그 날을 떠올리며 웃었다.

운명처럼 둘 모두 각자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제가 하고 싶은 건 있었어죠. 그의 마음이 하고 싶은 건 또 다른 것이었고요. 저흰 아주 운이 좋았어요. 서로 나란히 작업할 수 있어서요.”


이미 <블랙 팬서> 속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쿠글러는 다시 감독 자리에 앉을까? “아직 <블랙 팬서2>를 이야기하기엔 너무 이른 시점이기는 합니다만, 쿠글러가 해주기를 확실히 바라고 있습니다.” 앨런 혼은 그의 다른 작업을 언급하며 말했다.

보스만은 다른 것들을 추측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만약 속편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그게 두 개든, 세 개든, 네 개든, 전 그것들이 모두 특별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이번처럼 말이죠.” 

“전, 지금을 즐기고 있어요.” 그가 말했다.


“지난 28일 세상을 떠난 채드윅 보스만은 2016 대장암 3기를 진단 받았습니다. <블랙 팬서>를 찍을 때는 물론, 이 인터뷰를 할 당시에도 투병 중이었던 것이죠. 그의 마지막 답변, 속편에 대해 섣부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지금을 즐기고 있다’라 했던 것이 지금은 다르게 읽히네요.

테크 관련 글은 아니지만, 나름의 추모라 생각하고 번역했습니다. R.I.P”

번역자 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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