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라는 소프트웨어 (번역)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킨다’ – 소프트웨어가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거라는 마크 앤드레센의 그 컬럼이 WSJ에 실린 것이 10년 전이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IBM, 오라클 혹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소프트웨어란 GE나 P&G, 씨티뱅크 같은 다른 기업들에게 판매되는 일종의 툴 정도로 여겨질 때였죠. 이제 새로운 세대에 접어들었습니다.

테크 회사들은 그들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직접 사용해 새로운 산업에 진입해버립니다. 때로는 산업 자체를 아예 바꿔버리기도 하죠.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택시 회사나 호텔 회사에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인스타카트는 식료품 회사에 소프트웨어를 납품하지 않죠. 트랜스퍼와이즈 역시 은행에 소프트웨어를 판매하지 않아요.

전기나 자동차, 혹은 트럭을 예로 들어보면 더 이해가 쉬울 겁니다. 월마트의 성장에는 트럭 운송과 고속도로(그리고 컴퓨터)가 핵심이었지만 월마트는 운수 회사가 아니라, 리테일 회사입니다. 리테일을 혁신하기 위해 트럭(풀필먼트)을 이용했을 뿐이죠.

소프트웨어도 똑같습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가 이미 어떤 산업을 뒤흔들고,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죠.


상징적인 예는 음악 시장입니다. 테크는 음악 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테크 씬 누구도 그 변화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는 않습니다. 

15, 20년 전에만 해도 기기를 판매하고 사용자를 생태계 내에 락인 시키는 수단이 음악이었습니다만, 요즘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음악이 테크 씬에 전략적인 영향력을 갖지 않는 것을 반증하듯 합니다.

아이폰에서 안드로이드로 기기를 바꾼다고 해서 내가 듣던 음악을 듣지 못하진 않습니다. 스포티파이를 쓰다 애플 뮤직으로 갈아탄다고 해도 마찬가지죠.

시장의 규모 자체도 그 기술이 발전한 것에 비하면 좀 작습니다. 음원 시장의 총 매출은 작년에 200억 불(24조 원)에 미달했습니다. (정점이었던 2000년 대비 절반) 애플의 작년 매출은 (그 열 배가 넘는) 2,150억 불(258조 원)이었죠. 더 이상 이제 음악 산업 자체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에요. 

비슷한 일이 도서 시장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아마존은 도서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전자책은 하나의 시장이 되었죠. (틈새 시장이긴 하나) 자체 퍼블리싱이 새로운 버티컬로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이제와서 애플에게 전자책 사업을 하라고 한들 그들은 이 시장에 뛰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음악 시장과 마찬가지로, 도서출판도 이제는 더이상 전략적 레버리지를 갖지 못합니다. 작년 미국 도서출판 시장의 총 매출은 기껏해야 연 250억 불(30조 원) 정도일텐데요, 아마존의 연 매출은 2,600억 불(300조 원)이었습니다. 테크 씬의 어느 누구도, 온라인으로 책을 파는 것에도 전자책을 유통하는 것에도 큰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음악과 도서 모두에서 중요한 문제는 소프트웨어나 기술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음악 산업과 도서 산업 자체의 문제입니다. 

스포티파이가 앱스토어 수수료 정책로 애플을 고소하려 하는 것 말고는 스포티파이가 던지는 모든 질문은, (기술이라기보다는) 음악 산업 자체의 문제입니다.

스트리밍을 통해 왜 아티스트들은 더 많은 수익을 내지 못할까요. 음원사들에게 물어보세요. 왜 인터넷이 등장해도 음원사도 출판사도 사라지지 않았을까요. 이건 (테크 씬의 사람이 아니라) 음악, 출판 업계 종사자들이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TV와 영화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테크(와 코로나 락다운)는 기존의 레거시 모델을 무너뜨리고 모든 규칙을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중요한 문제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TV와 영화 산업의 문제입니다. 

배우 톰 크루즈는 ‘퍼스트 달러 그로스’라고 불리는 보상을 받습니다. 그가 출연한 영화의 손익분기 달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박스오피스 매출의 일정 비율을 먼저 미니멈 개런티해주는 보상이죠. 그런데, 그 영화가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을 판매하는데 사용되는 프로모션 번들이 되어버린다면, 그 비율은 어떻게 산정해야 할까요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콘텐츠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스포츠 중계권은 어느 곳으로 가게 될까요. 영화관이 재개장하게 된다면 상영시간표는 어떤 모습일까요. 사실 이건 기술로 판단하고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할리우드가 풀어야 할 문제에요, 실리콘 밸리가 답할 문제가 아니죠.

넷플릭스가 TV 산업에 들어가기 위해 기술이라는 수단을 사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제 앞으로 중요한 모든 문제는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TV 산업의 문제죠.

그리고 음악과 도서 산업이 그랬듯, 영화와 ‘TV(그것이 무엇을 뜻하든지간에)’ 등 미디어 산업 자체는 거대 테크 플랫폼들에게는 그다지 전략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마존은 이 산업을 프라임 멤버십 구독을 유도하는데 쓰고 있습니다. 애플은 기기 마케팅 도구로 쓰고 있죠. 콘텐츠는, 왕이 아닙니다. (이 글에서 더 많은 내용을 썼어요) 

오늘날 영화와 TV가 테크 기업들의 흥미를 끄는 이유는 콘텐츠나 기기 때문이 아닙니다. 650억 불(78조 원)짜리 미국 광고 시장 때문입니다. 

더 넓게 보자면, 광고와 마케팅, 리테일과 임대, 운송에 대해 쪼개져있던 이 시장이 이제 연 7~8,000억 불(960조 원) 짜리의 거대한 시장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TV나 콘텐츠 자체가 아니에요.


컨설턴트에 대한 오래된 조크가 있습니다. 갈매기 같다는 것이죠. 컨설턴트는 갑자기 날아와 온갖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모든 것을 헤집어 놓은 다음 어디론가 휑 하고 떠나버린다는 겁니다. 기술이 미디어 산업에 그간 해왔던 것이 딱 이런 식입니다. 모든 것을 헤집어 변화시키고,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리테일입니다. 테크와 소프트웨어, 인터넷이 그동안 미디어 산업에서 만들었던 모든 변화들이, 리테일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리테일은 전세계 적으로 20조 불(2.5경 원)에 달하는 아주 거대한 시장입니다. 

기술이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하지만 거듭 말씀드리지만, 일단 그 태풍이 잠잠해진 뒤 중요한 문제는 기술을 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리테일 자체의 문제가 되겠죠. 팔아야 할 제품이 무엇이며, 그건 어떻게 알 수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 리테일, 브랜딩, 마케팅의 문제입니다. 물론 새로운 온라인 채널을 이용해 판매하는 리테일 기업이라면 온라인부터 해야하겠습니다만, 결국은 오프라인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소비자에게 훌륭한 온라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시장의 진입을 도와주는 정도 밖에 안됩니다. 쇼피파이나 스트라이프와 같은 커머스 솔루션들 덕분에, 이제 점점 기술적인 문제는 여러 문제 중 하나가 될 뿐일 겁니다.

온라인만 잘한다고 충분하지 않습니다. 넷플릭스 앱이 아무리 좋아도 <프렌즈>나 <ER>의 재방송만 틀어주고 있다면 안될 일입니다. 훌루가 넷플릭스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동영상 압출 품질 때문인 것이 아닙니다. 

‘온라인’을 잘 하는 것은 어렵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서는 리테일 산업의 핵심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TV와 음반시장이 마찬가지였듯이.


같은 포인트가 테슬라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자율주행 기술은 물론 테크와 소프트웨어의 문제지만 전기차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테슬라가 잘된다면 테슬라가 소프트웨어 회사이기 때문이겠지만, 잘 안된다면, 테슬라가 자동차 회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글에 더 자세히 썼어요)

앞서 트럭 운송을 수단으로 리테일을 바꾼 사례로 월마트를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월마트가 리테일을 바꾼 이유 또 하나는 그들이 자가용 소유의 확산을 미리 예측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발달은, 그 산업 자체보다 리테일과 부동산에서 더 많은 백만장자를 만들어냈을 것입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하나의 산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을 소유하게 된다는 사실이, 다른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 테크 씬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전세계 성인 인구의 80%가 스마트폰을 갖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가 이걸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킨다’의 진정한 뜻입니다. 

월마트는 디트로이트 출신의 자동차 회사 직원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리테일 업자가 만들어 성장시킨 기업입니다.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은 첫 상용 자가용인 모델T가 출시된지 10년 뒤에 태어났습니다. 올해 MBA에 입학한 학생들은, 최초의 인터넷 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가 런칭된 1994년 이후 태어났습니다. 

늘 그랬습니다. 당대의 모든 기술은 그 기업을 ‘테크 회사’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것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죠.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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