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는 세상을 어떻게 집어삼키는가 (번역)

2017년 7월 20일, 도쿄의 시나가와 파크 타워 호텔의 컨퍼런스홀에는 인파가 가득했다. 인터넷, 에너지, 금융을 아우르는 일본 대기업 소프트뱅크 그룹의 CEO 손정의가 (발표 때마다 입는 회색 정장과 스트라이프 셔츠 차림으로) 무대 위에 올라섰다. 미소를 지으며, 그는 일본어로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손정의는 비유로 가득한 긴 발표로 유명하다. ‘미래를 향한 300년 계획’을 발표하던 2010년, 그는 ‘가장 슬픈 일’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일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을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2016년에는 IoT의 지각 변동을 캄브리아기의 생명의 분화에 비유한 바가 있다. IoT를 통해 인공지능이 수많은 센서에 연결되는 것을, 당시 시각이 있던 생명체들이 갖게된 진화적 강점에 빗대어 설명했던 것이다.

이번 발표에서도 손정의는 수백 명의 기술자와 창업자들을 소개하며 소프트뱅크를 산업혁명 시대의 상류층, 즉 브루주아지에 비유했는데, 그 사람은 공익을 위해 새로운 기술과 과학에 투자한 사람들이었다. 약 두 달 전, 소프트뱅크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인 1조 달러(약 1,200조 원)짜리 비전 펀드를 출시했고, 손정의의 비유에 따르면 비전펀드는 정보 혁명 시대의 상류 계층의 역할을 할 터였다.

“정말이지 저는 잠들기가 싫습니다. 단 일 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거든요”

소프트뱅크, 손정의

그 날 객석에 있던 CEO 대부분은 비전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도쿄 시오도메의 소프트뱅크 사무실이나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의 (1억 달러짜리) 저택에서 그와 만남을 가졌다.

‘마사’라고도 불리는 (역자 주 : 손정의의 일본어 이름은 ‘마사요시 손’으로, 줄여서 ‘마사’라고도 한다.) 전설적인 투자자를 만다본 사람들을 하나같이 그를 친절하고 수수하지만, 미래에 대해서만은 선구자적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 말한다. 그 평판은 손정의가 거둔 성공으로 얻어진 것이기도 하다.

손정의가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것은 1970년대였다. 영어를 잘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같은 일본의 아케이드 게임을 미국에 수입해 큰 돈을 벌었다. 1996년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야후!의 CEO 제리 양에게 1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 판단은 대단한 것이었다. 버블이 터지기 직전인 2000년, 야후!는 당시 최대의 검색엔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해 손정의는 어떤 커머스 회사를 창업한 젊은 중국인 교사를 만난다. 야후!의 뒤를 잇는 큰 회사로 만들자 약속하며 그에게 2천만 달러를 투자하는데 그 교사의 이름은 잭 마, 그 커머스 회사는 알리바바였다. 요즘 손정의는 투자하는 회사의 창업자들을 만날 때 그들의 회사도 (세계 최대의 회사 중 하나가 된) 알리바바만큼 커질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AI 스타트업 브레인의 CEO 유진 이지케비치는 손정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중국이 커질 것이라 미리 예측하고 2000년에 이미 중국에 투자한 사람입니다. 닷컴 버블이 터지고 나서 그는 중국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홍콩과 선전을 오갈 때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했을 때입니다. 그는 선견지명이 있습니다.

“손정의에게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는 데에는, 거의 10년의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브레인, 유진 이지케비치

그 날, 손정의는 도쿄의 컨퍼런스장 무대에 여러 명의 CEO를 차례로 올렸다. 첫 번째는 사람보다 더 잘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어 세상을 바꾸려는 비전을 가진,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마크 레이버트였다. (소프트뱅크는 이 회사를 알파벳으로부터 인수했다. 인수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운동능력이 뛰어난 사족보행 로봇 ‘스팟 미니’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마사, 로봇에게 길을 비켜주시겠어요? 아직 사람을 인식하지는 못해서요.”라고 손정의에게 말하며, 그는 소프트뱅크가 그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우리는 함께 세상을 바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로봇에 인공지능을 탑재하려고 합니다.”

다음으로 무대에 오른 이는 원웹의 창업자 그레그 와일러였다. 그는 아직 인류의 54%가 인터넷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 모든 인류를 위한 초연결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그는 2027년까지 900개의 위성을 쏘아올려 지리적 제약을 받지 않지 않는 인터넷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발표했고, 마찬가지로 소프트뱅크에 감사하며 무대를 마쳤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인터넷에 연결시켜주고 싶습니다.” 손정의는 무대에서 그를 직접 배웅하며 감사에 답했다. 

AI와 데이터 마이닝을 위한 다양한 기술/ 초고속 통신/ 자율 로봇 등은 그날 발표자들의 공통 주제였다. 가던드 헬스의 헬미 엘토우키는 데이터를 통해 암을 정복하기를 꿈꾸고, 맷 버나드는 머신러닝을 통해 식물을 재배하고 환경을 최적화하는 목표를 가진 실내 농경 플랫폼 플렌티를 창업했다. 클라우드 마인드의 빌 황은 세계 최초의 클라우드 기반 로봇을 만들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언젠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센서로 안내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 때는 안내견들이 필요 없어지겠죠.”

마지막 순서를 앞두고 손정의는 다시 무대에 올랐고, 갑자기 옛날 이야기를 꺼냈다. “열 일곱 무렵이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반도체 사진을 보고, 왠지 모르게 벅차올라 눈물을 멈추지 못했죠.” 그는 영국의 반도체 회사 ARM의 CEO 사이먼 시거스를 소개했다. ARM의 첫 반도체는 셔츠 단추 정도 크기였지만, 지금은 핀 머리만한 크기에 당시의 성능 수 천배를 낼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했다. 

ARM의 반도체는 로봇 수술, 자율주행 자동차, 스마트 카메라 등 모든 스마트 기기에 사용된다. 하지만 모든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클라우드에 송신되어 처리되어 돌아올 수 있는 수준의 AI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배터리와 전송 속도 등의 문제도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시거스는 말한다. “만약 안드로이드의 사용자들이 하루에 3분씩만 음성인식 기능을 사용한다면, 구글은 데이터 센터를 두 배로 늘려야만 합니다. 이 다음 세대의 반도체는 AI를 장착하고 있으며, 자체 센서를 갖고 데이터 처리까지 스스로 완료할 수 있어야 할 것 입니다. 이런 것은 ARM 혼자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런 기술을 실현시킬 수 있는 다른 회사와 협력해야만 하죠.”

발표를 마치며 시거스는 손정의와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손정의는 ARM이 소프트뱅크 뿐 아니라 인류를 위해 없어서는 안되는 회사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제 ARM은 소프트뱅크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하면 정보 혁명 시대를 리딩하며, 미래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 말과 함께 손정의는 객석을 향해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1981년 소프트웨어 배급사업으로 소프트뱅크(소프트웨어의 은행이라는 뜻이다)를 창업한 이래, 손정의는 늘 소프트뱅크를 세계 최대의 회사로 만들기 위해 집착적으로 노력해왔다. 24살 처음 창업했을 때, 사과상자에 올라 전 직원인 두 명 앞에서 ‘우리가 세계 제일이 될 것이다’라 외쳤던 손정의다. (그 직원 둘은 며칠 뒤 회사를 그만두었다) 

어느덧 61살이 된 손정의는 여전히 그의 야망인 ‘300년 비전’을 추구하고 있다. 기술의 혁신이 궁극의 특이점을 넘어설 것이라 믿고, 인공지능이 인류의 지식을 대체하여 세계 경제의 가장 작은 사업까지 모두 재정의하는 그런 세상을, 그는 300년 비전에서 그리고 있다. 

그 비전 속의 소프트뱅크는 다음 세대의 구글도, 애플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아니다. 그는 하나의 브랜드나 비즈니스가 특이점을 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믿지 않는다. 다만 ‘업계 최고들의 연합’ 전략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리라고 믿는다. 이는 소프트뱅크가 주도하는 생태계로, 헬스케어로부터 교통, 승차 공유, 로봇에 이르기까지 전 산업에 AI가 퍼져 있는 회사들이다. 그 회사들은 모두 비전 펀드의 지원을 받고 있을 것이다. 

“같은 목표를 가진 기업가들의 연합정부 같은 것을 만들고 싶습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손정의가 2017년의 컨퍼런스에서 한 말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혁명은 개인의 힘으로 완성할 수 없다. 그 전략의 핵심은 스마트 스피커나 헬스케어 측정기, 드론, 스마트 티비 등의 95%에 저전력 소형 프로세서를 제공하고 있는 ARM이다. 

손정의는 2006년 당시 ARM의 CEO 워렌 이스트와 초기멤버 시거스를 만났고, 시거스와 빠르게 가까워졌다. 이미 ARM은 초기 모바일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었고, 손정의는 이 사실에 놀랐다. 그는 곧 모바일이 PC를 넘어설 것이라 예견했고, 인터넷의 중심 역시 데스크탑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손정의는 ARM의 저전력 고성능 반도체가 미래의 경제 중심에 설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몇 주 전 통신 성능도 떨어지고 좋은 기기도 팔지 못하던 보다폰 재팬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그는 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소프트뱅크 이사회는 인수에 반대했지만, 손정의는 강하게 밀어붙였다. 

사실 손정의는 전략적 한 수를 이미 얻어둔 터였다. 인수가 논의 중일 때, 손정의는 캘리포니아에서 스티브 잡스를 만났다. 그 때 손정의는 잡스에게 그가 손으로 그린 스마트폰의 러프 스케치를 보여주었다.

잡스는 못생긴 디자인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후에 손정의는 그 때 그 그림이 배터리 달린 두꺼비처럼 못생겼었다 회상했다), 손정의의 아이디어가 맞는 방향이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당시 잡스는 아이폰의 첫 프로토타입을 작업하고 있었다. 그는 손정의가 보다폰 재팬 인수에 성공한다면, 일본에서의 아이폰 독점 판매권을 그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시거스와 손정의는 그 이후로도 연락을 주고받았고, 2015년까지 여러 차례 만났다. 2013년 ARM은 손정의의 예측대로 시거스를 CEO로 임명했고, 애플, 삼성, 엔비디아, 퀄컴에 라이센싱을 주며 반도체 산업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손정의가 인수한 보다폰 재팬(지금의 소프트뱅크 모바일)은 아이폰 덕분에 일본의 1등 이동통신사가 되어있었다. 

2016년 6월, 시거스는 손정의와 캘리포니아 저택에서 저녁을 함께했다. (훗날 시거스는 그날 저녁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면접이었음을 알게 된다.) 시거스는 ARM이 직면한 몇 가지 딜레마와 기회를 손정의와 상담 중이었다.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성장폭이 줄어들고 있으며, AI/ 5G/ 자율주행 등에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하지만 이익을 양보하고 싶지 않은 주주들이 이를 좋아할까 하는 문제였다. 

“그날 저는 왜 단기적으로 ARM의 이익이 감소하게 되며, 장기적으로 어떤 기회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손정의의 눈빛이 변하더라고요. 저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ARM, 사이먼 시거스

그 미팅이 있은지 얼마 후, 손정의는 시거스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ARM의 의장님을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ARM의 의장 스튜어트 챔버스는 요트를 타고 지중해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 할 것이라고 시거스는 답했다. 하지만 손정의는 그 근처로 비행기를 타고 직접 갈테니, 꼭 미팅을 주선해달라고 그리고 시거스도 꼭 와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터키 연안 마르마리스의 파인애플이라는 레스토랑에서 그들은 만났다. 손정의가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둔 덕에, 시거스와 챔버스가 도착했을 때에는 식당에 웨이터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곧 손정의가 도착했고 그는 ARM을 인수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손정의는 몇 가지 약속도 덧붙였다. ARM은 소프트뱅크와 독립적인 법인으로 남을 것이고, 손정의가 통상의 경영에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ARM의 이익은 모두 R&D에 대투자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시거스는 회상했다.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그 때에는 아무 것도 약속하지 않으려 했죠. 이야기하기보다는 손정의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습니다”

시거스와 챔버스는 캠브리지로 돌아와 인수제안을 이사회에 올렸다. 그 주 가격 협상은 시작되었고, 두 달 만에 인수 실사가 이루어졌다. 전체 과정이 끝나는데 고작 10주가 걸렸을 뿐이었다. ARM의 부회장 이안 토론토는 FTSE 100대 회사를 인수하는 딜이 그 정도 밖에 걸리지 않은 것은 기록적이었다 회상한다. 

지적재산권을 담당했던 르네 하스 역시, 보통 이런 절차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그냥 ‘좋아요, 합시다, 그렇게 하죠, 이건 넘어갑시다’ 정도의 말과 함께 빛의 속도로 진행되었다고 평가했다. 규제나 실무를 감안했을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처리되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얼마 후 어느 일요일, 시거스는 이 협상에 대해 아직 알지 못하고 있던 ARM의 임원들을 소집했다. 그 날이 임기 마지막이 될 임원들에게는 하스가 따로 연락을 돌렸다. 미팅에 소집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고, 오히려 시거스가 사퇴하는 줄 아는 사람도 있었다.

그날 저녁 이사회 회의실에 임원들이 모였다. 맥주와 과자가 제공되었고, 시거스가 사실을 알렸다.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한다는 사실을 내일 공식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 방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스는 당시 ‘왜 일본의 통신사가 반도체 IP 라이센싱을 하는 ARM을 인수하는 거지? 손정의라는 사람은 누구고 뭐 하는 사람이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나’라고 생각하며, 집에 가서는 구글에 소프트뱅크와 손정의에 대해 검색해보았노라 고백했다. 

2016년 7월 18일 월요일, 손정의는 영국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과 미팅을 했다. 한 달 전 결정된 브렉시트의 여파로, 영국 정부는 외국 회사가 자국의 기술회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 당연히 불안해했다. 이에 손정의는 몇 가지 인수 조건에 동의해야만 했다. 향후 5년간 소프트뱅크는 ARM의 채용을 늘려 인력을 두 배 수준으로 늘리고, ARM의 본사를 캠브리지에 유지한다는 조건 등이었다. 

그리고 인수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가 이루어졌다. 소프트뱅크는 주당 17파운드, 총 240억 파운드에 ARM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영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가이자 ARM의 창립 멤버였던 헤르만 하우서는 그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오늘이 영국 테크 바닥의 가장 슬픈 날’이라 말했다. 

그날 오후 손정의는 캠브리지에서 ARM의 경영진을 만났다. 하스는 그 자리의 손정의가 새 장난감을 선물 받은 소년처럼 밝은 표정이었다고 기억한다. 손정의는 그들에게 “오늘이 제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입니다. 저는 ARM을 30년간 지켜봐왔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ARM이 해온 모든 일에 깊이 감명 받았습니다.”라고 연설했다. 

한 달 뒤, ARM의 경영진은 캘리포니아 산 카를로스에서 소프트뱅크의 투자법인 소프트뱅크 인터내셔널을 만났다. 경영진은 향후 4개 분기의 영업 계획 및 전망에 대해 발표했는데, 손정의는 하나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아이패드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ARM의 장기 비전에 대해 발표를 시작했을 때, 손정의는 열의 넘치는 자세로 돌아와 300년 비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2035년까지 세상에는 수 조 개의 연결된 기기들이 있을 것이고, 자율주행차 스마트로봇 AI 센서 등이 연결된 광대한 IoT 망이 만들어지는 세상에 대해 그는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기기들의 뒤를 책임지는 회사가 바로 ARM이 될 것이라 말하며, 2035년의 매출 계획과 각종 수치들에 대해 설명했다.

하스는 처음에 이것이 연기인가 싶을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이내 곧 손정의가 정말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의 상상이 현실이 되면 벌어질 엄청난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ARM의 인수는 유럽의 테크 사상 가장 큰 딜이기도 했고, 비즈니스나 테크 업계 사람들을 포함해 많은 이들에게 소프트뱅크의 이름을 강하게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큰 인수보다도, 이 일본의 통신회사가 알고보니 글로벌한 투자회사였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더 놀라워했다. 2013년에 소프트뱅크는 미국의 통신사 스프린트를 222억 달러에 인수했고, 핀란드의 게임회사 (클래시 오브 클랜과 브롤스타즈를 개발한) 수퍼셀을 15억 달러에 인수했다. 2014년에는 (비전펀드의 전신인) 투자 전문 법인 소프트뱅크 인터내셔널을 통해 중국의 차량 공유 서비스 디디, 인도의 올라, 8천만 회원을 가진 인도네시아의 커머스 토코피디아에 투자한 전력이 있었다. 

소프트뱅크의 임원인 데이빗 테베논은 소프트뱅크가 항상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어왔고, 사람들은 늘 소프트뱅크의 이름을 듣고 은행인지 통신사인지 헷갈려했다고 말한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몇 년간, 글로벌하게 여러 투자를 해왔다는 것을 늘 먼저 설명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마침재 소프트뱅크라는 이름이 알려질 무렵, 한 가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투자를 위한 추가 자금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도이치뱅크의 채권 트레이더였던 라지브 미스라의 역할이었다. 

비전펀드 CEO, 라지브 미스라

인도 뉴 델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미스라는 1981년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기계공학과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로스 알라모스에서 위성을 설계하고 필라델피아의 리얼리티 테크놀로지라는 스타트업에서 소프트웨어 시뮬레이션을 하다가, MBA 코스를 밟았다. 미스라는 2002년 도이치뱅크에서 신용과 신흥시장을 담당하는 임원일 때 손정의를 알게 되었다. 그는 소프트뱅크가 보다폰 재팬을 인수하기 위해 복잡한 재무구조의 딜을 진행할 때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이었다. 

2014년 그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를 지인의 결혼식에서 다시 만났다. 그 때는 손정의가 2010년 2천만 달러를 투자한 알리바바가 사상 최대의 IPO를 성공시킨 직후였다. 그 훈풍 덕분에 소프트뱅크의 글로벌 확장도 진행 중이었고, 손정의는 미스라와 다시 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미스라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왠지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ARM을 인수하게 되면 소프트뱅크의 부채가 1,050억 달러에 달하게 된다. 소프트뱅크는 보유 중이던 알리바바와 수퍼셀의 지분을 팔아야 했다. 동시에 소프트뱅크는 다가오는 AI 혁명과 각 산업을 혁신해나갈 회사들에게 투자하고 싶었다. 금융 서비스, 자동차, 호텔, 공유오피스, 부동산 중개업 등 산업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소프트뱅크에게 너무 많은 돈이 필요했다. 어디에 자원을 분배할 지가 제약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투자 자금을 늘리자. 세상에서 가장 큰 펀드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손정의는 거기에 ‘비전펀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비전펀드의 투자 전략에는 ‘규모’가 전제되어있다. 바로 승자독식의 논리와 마찬가지였다. 비전펀드가 투자 대상으로 생각하는 회사는 시장 점유율이 50~80%에 달하면서, 빠르고 글로벌한 성장을 할 수 있을 만큼 이미 투자를 충분히 받은 곳들이었다. 미스라는 그 전략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제가 손정의에게 배운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과 효율적인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효율성이란 비용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정확한 이익을 남기는 것을 뜻합니다. 사무용품을 사는 비용을 깐깐하게 따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죠. 즉 효율성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미국이나 인도에서 차근차근 비즈니스를 확장해간다는 뜻이에요. 그렇게 한 번 규모를 키우면, 나머지는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국가간 장벽은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우리가 글로벌을 선점하지 못한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 시장을 차지할 것이 분명합니다.”

라지브 미스라, 비전펀드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자본이 필요했다. 그것도 막대한 양이 필요할 것이다. 원래 비전펀드는 300억 달러 규모로 시작할 계획이었다. 물론 이것도 엄청난 규모지만, 글로벌 펀드 중에 그 정도 규모가 없지는 않았다. 손정의는 1천억 달러 정도가 적당하겠다고 결정했다. 

미스라와 손정의는 소프트뱅크 펀드의 투자 라인업을 강조하는 발표자료를 고치고 또 고쳤다. 이미 ARM, 스프린트, 소프트뱅크 모바일, 알리바바, 야후! 재팬 등의 회사가 포트폴리오에 있었다. 2016년 9월부터 12월까지, 그들은 세계를 누비며 미국의 기업들과 연기금, 아시아와 중동의 국부 펀드들을 만났다. 모두가 친절하기는 했지만, 천 억 달러 규모의 단일 펀드는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다. 비전펀드의 제안을 수락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대부분이 회의적인 가운데 몇몇은 소프트뱅크의 제안에 반응했다. 긍정적인 답변을 준 곳 중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 모하메드 빈 살라만이 있었다. 

2017년 5월, 500여명의 사우디아라비아 대표단이 도쿄를 방문했다. 왕자 빈 살라만을 접견하기 전, 손정의와 미스라는 비전펀드의 구상을 왕자의 측근들에게 미리 발표했다. 며칠 뒤, 그들은 도쿄 도심의 으리으리한 사우디아라비아 영빈관에서 왕자를 접견했다. 나중에 투자자 데이빗 루벤스타인에게 손정의가 말한 바에 따르면, 그날 손정의는 빈 살라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가 오늘 세 가지 선물을 드리려고 합니다. 손정의의 선물과 도쿄의 선물, 그리고 1조 달러 짜리 선물입니다.”

이 말을 듣고 빈 살라만은 반응했다. 손정의는 말을 이어갔다. “제가 어떻게 1조 달러 짜리 선물을 드릴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비전펀드에 1천억 달러를 투자해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1조 달러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손정의는 그날, 향후 5년 간 45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구두 약속을 받아냈다. 

6주 뒤, 손정의와 미스라는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를 방문해 사우디의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에서 사우디의 국부펀드 임원들과 미팅을 가졌다. 그 사이 애플, 퀄컴, 폭스콘, 샤프, 아부다비의 무바달라가 추가 2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고, 소프트뱅크가 자체적으로 280억 달러를 조달한 상태였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고 첫 순방을 하는 일정에 맞추어 2017년 5월, 리야드에서의 협약식이 진행되었고, 공식적으로 1천억 달러 규모의 비전 펀드가 출범했다. 


그 동안 한 번도 외부의 자본이나 펀드를 운용해본 적이 없는 소프트뱅크는 이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게 되었다. 비전펀드의 규모는 지난 30개월간 미국 VC가 조달한 투자금 전체와 비견할 만한 액수였다. 비전펀드의 CEO 라지브 미스라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제 저희에게 투자한 회사, 파트너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민 모두에게 수탁자로서의 책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누가 저희에게 투자 좀 해달라고 연락했던 적이 있었나요? 전혀 없었죠.” 

2018년 12월 어느 어후, 런던 메이필드에 위치한 비전펀드 본사에서 미스라는 와이어드 취재진과 만났다. 맨발 차림이던 미스라는 셔츠 소매를 접어 올렸는데, 손목에는 행운을 기원하는 삼발라 팔찌가 있었다. 인터뷰 내내 그의 기분은 열정과 근심을 오갔고, 가끔 인터뷰를 멈추고 전자 담배를 태웠다. 

현재 비전펀드의 포트폴리오는 거의 60개 회사에 달한다. 그 중에는 GPU 제조사 엔비디아의 지분 70억 달러도 있고, 게임이나 교육을 위한 대규모 VR을 만드는 영국의 임프로바블의 지분 5억 달러, 기업용 커뮤니케이션 슬랙에 투자한 2.5억 달러도 있다. 소프트뱅크가 주도한 컨소시엄은 우버에도 80억 달러를 투자했다. 

미스라의 팀은 매니징 파트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일곱은 실리콘 밸리에, 둘은 도쿄에, 둘은 런던에 상주하며 새로운 투자 대상을 발굴한다. 매주 수십 개씩을 파헤치는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각 파트너들의 제안을 서로 평가한다. 

투자 아이디어는 상호 리뷰를 거쳐 깐깐하고 독립적인 담당 팀의 실사를 거친다. 종종 몇 달이 걸리기도 하는 이 과정을 통과하면 손정의와 미스라가 포함된 소프트뱅크의 투자 심의 위원회에 회부되어 검토된다. 투자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면, 창업자는 손정의와 독대하게 된다. 손정의는 투자를 마무리하기 전, 모든 회사의 대표를 만나본다. 한 명도 예외는 없었다. 

“2017년 초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저희가 어떻게 인도 최대의 호텔 네트워크가 될 수 있었는지 말씀 나누었죠.” 인도의 호텔 네트워크인 오요 룸스의 CEO 리체시 아가르왈 역시 손정의를 직접 만났다.

“중국에 진출할 시점이라 생각하진 않았습니다만, 손정의는 지금이 바로 중국에 가야할 때라 말하더군요. 더 많은 시간을 중국에서 보내게 될 것이라고요. 그 해 11월, 오요는 심천에 첫 번째 호텔을 지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중국의 탑5 호텔 네트워크로 성장해있습니다. 시대를 앞서보는 손정의의 능력은 정말 비할 이가 없습니다”

리체시 아가르왈, 오요 룸스

비전펀드의 투자금액 하한선은 1억 달러다. 5억~수십억 달러로 20~40%의 지분을 확보하는데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미국의 건설 스타트업 카테라의 CEO 마이클 마크스는 비전펀드가 투자 업계의 룰을 빠르게 바꾸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테크 회사들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비즈니스가 되고 있는 상황에, 더 큰 자본을 투입해버리면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 첫 회사가 바로 소프트뱅크였다.

소프트뱅크는 1등을 만드는 데 어마어마한 금액을 넣어버린다.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면 큰 리스크가 되겠지만, 소프트뱅크는 생각대로 되리라 믿어버리는 것 같다. 그는 소프트뱅크가 엄청난 실험을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물론 소프트뱅크의 강점이 풍부한 자본력과 투자역량에만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포트폴리오의 뛰어난 회사들 사이의 연합으로 각 회사의 가치들을 합한 것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업계 최고들의 연합’ 전략으로, 소프트뱅크 패밀리의 회사들은 추가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제휴와 사업 기회를 만들어낸다. 

이런 글로벌 네트워크에는 애플, 퀄컴, 샤프, 알리바바, 스프린트(미국의 4위 통신사), 야후! 재팬(일본의 최대 포털), 소프트뱅크 모바일(지난해 일본 사상 두 번째 규모인 235억 달러 IPO를 성공시켰다) 등이 포함된다. 비전펀드는 인도, 중국,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외 직접 투자 자본이며,  뭄바이, 싱가폴, 리야드, 아부다비에서도 존재감이 크다.

“투자자들이나 미국 회사들은 글로벌하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글로벌로 사업하는 이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는, 말 그대로,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데이빗 테베논, 소프트뱅크

포트폴리오의 회사들은 각자 자율적으로 제휴를 진행하지만,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하는 윈윈 전략으로 제휴하기도 한다. AI로 1차 의료진료를 제공하는 핑안 굿 닥턱와 동남아시아의 승차 공유 서비스 그랩의 제휴 사례가 그렇다. 중국에서는 의사 90초 면담을 위해 3시간 넘게 대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핑안 굿 닥터는 그랩의 위치 플랫폼을 활용해서 어떤 증상의 환자를 어느 병원으로 보내야 가장 효율적일지를 계산하고 배정하는 라우팅 솔루션을 만들려 하고 있다. 

오요 룸스는 머신러닝을 활용해 체크인부터 객실 관리까지 표준화된 경험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중국에서는 디디와 제휴해서 ‘디디로 편하게 이동하고, 오요로 편하게 쉬세요’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인도에서 월에 4.5억 건의 거래를 처리하는 모바일 결제 스타트업 페이텀은 최근 야후! 재팬과 함께 일본에서 페이페이라는 결제 서비스를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제휴에서 ARM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맵박스와의 콜라보를 통해 ARM의 반도체가 사용된 기기들이 자동으로 도로의 장애물, 교통 안내선, 곡선도로, 교차로, 신호등 등을 구분하는 솔루션을 만들 수 있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최신 모델 로봇의 모터를 컨트롤 하는 부분에서 ARM의 프로세서를 쓴다. 


그렇다면 비전펀드의 투자를 관통하는 테마는 무엇일까? 비전펀드의 매니징 디렉터 제프리 하우센볼드에 따르면, 그것은 ‘데이터’다.

현재 특이점이나 AI에 대해 논의되는 내용 대부분은 AI와 사람의 결합이거나 데이터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고,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데이터를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 더 좋은 약을 만들거나 음식 배달의 최적 경로를 찾는데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프트뱅크와 비전펀드의 포트폴리오 회사들 사이 데이터가 자유롭게 흐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손정의의 비전이기도 하다. 점점 우리가 스마트폰을 이용하거나 택시를 부르고, 식사를 주문하고, 호텔에 머물거나 결제를 하고,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모든 순간에 소프트뱅크 포트폴리오에 속한 회사 어딘가에서 데이터가 처리될 것이다.

그리고 손정의가 말한 것처럼, ‘데이터를 차지하는 자가, 세상을 집어삼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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