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우버가 ‘아이스크림 데이’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한 이야기입니다. 매년 여름, 우버는 사용자들에게 우버 차량을 통해 아이스크림을 배달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해왔죠. 2015년 6월 우버가 이 프로모션을 53개국으로 확대할 때, 말레이시아 출신의 기업가 앤써니 탄은 이 프로모션을 동남아시아에서 진행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그가 세운 스타트업 ‘그랩’에서 말이죠.
그랩은 우버의 프로모션이 끝나자마자, 그들의 프로모션을 진행합니다. 그들의 이벤트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아이스크림보다 더 좋아하는 것, ‘두리안’이었습니다. 쿠알라룸푸르의 사용자들이 그랩을 통해 집 앞에서 두리안을 받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그랩은 특별한 포장 방식을 생각해내야 했습니다. 두리안은 정말 맛있는 과일이지만, 그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호텔이나 공항 등의 공공장소에서는 소지하는 것이 금지될 정도기 때문입니다.
그랩은 이 난관을 극복했고, 두리안을 단돈 1링깃(280원 정도)에 제공했습니다. 그랩의 두리안은 불티나듯 판매되었습니다. ‘그랩두리안’ 프로모션은 지금까지 4년 째 지속되어오고 있습니다.
“외국인은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없습니다. 제 아무리 우버라고 해도, 동남아의 로컬라이제이션을 우리보다 잘 할 수는 없죠.”
앤써니 탄, 그랩 CEO
그랩은 로컬라이제이션 덕분에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쿠알라룸푸르 교외의 한 창고에서 2012년 시작된 그랩은 8개국에서 서비스합니다. 기사는 280만 명이나 됩니다. 우버의 200만보다 훨씬 크죠. 그랩은 지금까지 약 1.4억 회 다운로드 되었고 매일 600만 건 이상의 차량 호출 주문을 처리합니다. 2018년 매출은 1조 원을 넘었고, 올해는 그 두 배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팔던 그들의 경쟁사, 우버는 그랩의 홈그라운드에서 패배했습니다. 2018년 3월, 우버는 그랩의 27.5%의 지분을 확보하는 대가로 동남아시아의 사업을 양도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에서의 철수를 선언한 셈이죠.
37세의 앤써니 탄, 35세의 공동창업자 후이링 탄은 택시 사업 너머의 거대한 야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랩이 ‘사용자들이 매일 사용하는 슈퍼앱’이 되어 사용자와 접점을 갖는 모든 버티컬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음식 배달, 전자결제, 금융, 헬스케어 영역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동남아시아의 6.5억 명의 인구는 이제 막 서구권이나 중국에서 제공되던 서비스들을 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랩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 창구가 되려고 하는 것이죠.
2017년 기준, 동남아시아의 GDP는 약 3천조 원 규모입니다. 이를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경제권인 셈입니다. 현재의 성장률이 지속된다면, 2030년에는 4위권으로 올라갈테고요. 하지만 이 규모 자체는 동남아시아의 수 많은 매력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요새 말하는 소위 ‘슈퍼앱’은 유저들에게 사용된다는 것 뿐 아니라 모든 생활서비스에서의 사용자 선호도, 구매 패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델은 이미 중국의 알리페이와 위챗의 성공을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을 그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이라 밝히기도 했죠. 다양한 버티컬 서비스를 통해 매출과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슈퍼앱 모델은, 통상의 차량 호출 사업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좋으며,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데 한층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슈퍼앱 모델은 전 세계 그 어느 곳보다 동남아시아에서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랩이 소프트뱅크, 도요타, 디디츄싱, 마이크로소프트 등으로부터 10조 원에 달하는 누적 투자를 유치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랩의 가장 최근 기업가치는 약 16조 원이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기업가치가 높은 스타트업이 바로 그랩입니다.
앤써니는 그랩이 우버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해당 지역 소비자들의 니즈에 잘 부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상대적으로 평균 소득이 낮은 지역에서는 그랩은 더 저렴한 택시와 오토바이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우버는 비싼 ‘블랙’을 서비스하죠) 그리고 우버가 신용카드 결제를 고집하는데 반해, 그랩은 신용카드가 없는 대다수의 동남아시아 사용자들이 현금으로 결제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랩이 최근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곳은 그들의 홈그라운드(말레이시아)가 아닙니다. 그랩의 본사는 현재 싱가포르에 있지만, 앤써니 탄이 요즘 70%의 시간을 쓰는 곳은 바로 인도네시아입니다.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인도네시아에서의 성공이 그랩에게 있어 동남아시아를 장악하는데 아주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인도네시아의 GDP는 동남아시아 전체의 40%를 차지하며, 인도네시아의 사람들은 디지털에 대한 적응력이 대단히 높습니다. 74%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모바일로 전자상거래를 이용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17,0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에서, 그랩이 경쟁해야 하는 상대는 고젝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고, 구글과 텐센트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죠. 고젝은 매달 2,500만 명의 넘는 사용자들에게 1억 건이 넘는 교통 호출을 제공합니다. 기사 역시 100만명이 넘습니다.
고젝 역시 ‘슈퍼앱’입니다. 18개의 버티컬 서비스를 가지고 있어요. 고마트(식료품 배달), 고클린(집 청소), 고글램(헤어스타일링/메이크업), 고마사지 등이 대표적입니다. 고젝은 지금까지 1.1억 건 다운로드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젝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의 절반 이상이 그들의 전자결제 서비스 ‘고페이’를 이용한다고 밝혔습니다.
고젝의 창업자, 34세의 나디엠 마카림 역시 동남아시아의 슈퍼앱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랩의 창업자들이 고젝의 슈퍼앱 모델을 베꼈다고 주장하죠.
“고젝이 만들어낸 ‘슈퍼앱’이라는 단어를 그랩이 뺏어가려가고 하는 건 정말 웃긴 일이죠. 뭐랄까요, ‘저기요? 잠시만요? 창업하고 1년 간 우버를 열심히 베끼시더니, 이제는 고젝을 베끼는데 3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으신가요?’라고 하고 싶어요.”
나디엠의 이런 반응에 대해 앤써니는 응수합니다. “아이디어는 아이디어일 뿐이죠. 성공은 다른 얘기잖아요.” 두 사람의 공방은 그랩의 공동창업자들과 나디엠 사이의 악감정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사실 그들은 모두 하버드MBA 출신입니다. 꽤 오랫동안 서로 알아왔고, 한 때는 서로 꽤 친했습니다.
꽤 최근까지, 그랩과 고젝은 서로 영역이 겹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사업모델과 지역이 겹치기 시작했고, 충돌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두 서비스가 맞붙은 곳에서는 가격 경쟁이 빈번하게 벌어집니다.
심지어 두 서비스의 키 컬러도 초록으로 같아요. 이 때문에 자카르타의 주요 도심에서는 그랩과 고젝의 초록 유니폼을 입은 기사들이 거대한 초록 물결을 만들어냅니다.

아직까지는 그랩이 앞서고 있습니다. 더 많은 지역에서 서비스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의 가장 큰 6개 국가에서 전자결제 사업권을 취득했습니다. (고젝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2개국에서만 취득했습니다) 우버와의 딜을 통해 그랩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고젝도 같은 지역에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조사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심지어 인도네시아에서조차 그랩의 점유율은 62%에 달한다고 합니다. 고젝을 앞서고 있는 셈이죠. (물론 고젝은 이 수치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젝이 그랩에게 거대한 경쟁자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고젝은 지금까지 3.3조 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12조 원의 기업가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나디엠은 고젝이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가 결국은 그랩을 이길 수 있으리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고젝도 그랩도 모두 차량호출 사업에서는 적자를 내고 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고젝은 다른 버티컬 사업에서 거둬들인 수익으로 거의 손익을 맞추는 데 근접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양사 모두 아직 매출정보를 공개한 적은 없습니다)
두 회사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그랩이 상대적으로 더 큰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왔기 때문에, 더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그랩이 조금 무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싱가포르 인시아드의 교수 제이슨 데이비스가 이야기합니다. 그는 차량호출 서비스와 관련한 강의의 시작과 종료 시점에 ‘그랩, 우버, 고젝’ 중 누가 이길 것 같은지 학생들에게 물어보는데, 보통 강의 전에는 ‘그랩 > 우버 > 고젝’ 순서로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면 ‘고젝 > 그랩 > 우버’ 순서로 답변한다고 합니다.
그램과 고젝의 경쟁은 아마 하버드 MBA의 수업에서부터 시작했을 것입니다.
2011년 봄, 앤써니와 나디엠은 하버드의 유명한 수업인 ‘피라미드로 살펴보는 비즈니스’ 수업을 같이 들었습니다. 이 강의는 개발도상국의 큰 사업기회들은 일부 부유층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처음 발을 내딛는 대다수의 빈곤층을 상대로 하는 곳에 있다는 유명한 이론에 대해 가르치죠.
그랩의 공동창업자 후이링 탄과 고젝의 나디엠은 심지어 하버드 MBA에 입학하기 전부터 친구였습니다. 후이링은 쿠알라룸푸르에서, 나디엠은 자카르타에서 맥킨지 컨설턴트로 근무했죠. 그들 모두 앤써니를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했으나, 그가 말레이시아의 굉장히 유명한 기업가의 아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죠.
후이링, 나디엠, 앤써니 셋은 모두 고향의 교통 인프라가 매우 열악하다는 점에서 괴로워했습니다. 기계공학 학사를 받고 스스로 ‘하드웨어 매니아’라 부르는 후이링은 말레이시아 교통의 가장 큰 약점이 안전성이라고 생각했죠.
어릴 때 그는 쿠알라룸푸르의 택시가 너무 위험해서 쇼핑몰에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조차 가족 누군가의 차를 얻어타야 한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맥킨지에서 근무할 때에도 퇴근 시간이 늦어지면 그의 어머니가 회사 앞까지 그를 데리러 오기도 했죠.
앤써니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기회를 봤죠. 하버드 MBA에 입학하기 직전 여름, 그는 친구와 함께 마흔 대의 차를 빌려 택시 사업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기사와 승객을 매칭시키는 방법을 찾기 어려웠죠. 할아버지가 택시 기사였던 앤써니는 자연스레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스마트폰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미국에서 우버가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난관도 있었습니다. 앤써니의 아버지는 그가 가업을 잇기를 바랐습니다. 닛산 자동차를 동남아시아에서 생산하여 판매하는 사업이었죠. 앤써니는 그가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것이 집안의 기대와 어긋난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힘들었어요. 아버지께서는 유교적인 가치관을 가진 분이셨거든요.” 앤써니는 회고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기회는 찾아왔습니다. 앤써니와 후이링은 함께 팀을 이루어 동남아시아 지역의 택시 호출 사업을 기획하여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공모전에 나갔습니다. 공모전에서 2위를 수상했고, 3천만 원의 상금을 받았습니다. 그 둘은 이 돈으로 마이택시라는 스타트업을 시작합니다. 그랩의 전신이죠.
도로 밖에서의 경쟁
그랩과 고젝은 모두 스스로 ‘슈퍼앱’이라 말합니다. 택시 외 분야에서도 사용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싸우고 있죠. 그 치열한 전장을 소개합니다.
금융 서비스
그랩과 고젝은 모두 중국의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이뤄낸 ‘모바일 월렛’ 서비스를 동남아시아에서 재현하려고 합니다. 그랩페이는 동남아시아의 6개 국가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며, 최근 마스터카드와 제휴하여 더욱 공격적인 확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랩은 각 지상의 사용자와 기업들이 온라인에서 결제한 내역을 바탕으로 신용도를 평가하고, 그에 따라 별도의 금융 자회사를 통해 대출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고젝의 고페이는 주로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제공됩니다. 연간 6조 원 가량의 거래액을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식료품 배달 서비스
2015년 고젝의 런칭 이후, 가장 인기있는 기능 중 하나가 바로 고푸드입니다. 나디엠은 일찍부터 고젝의 기사들이 남는 시간을 가치있게 쓰는 방법으로 식료품 배달 서비스를 생각했습니다. 고젝에서는 연간 2조 원 이상의 식료품 거래가 이루어집니다. 이 기능은 고마트로 확장되었습니다.
2018년 초, 그랩이 우버의 동남아시아 사업을 인수한 이후 음식배달 서비스인 그랩푸드는 폭발적으로 성장해오고 있습니다. 우버의 배달서비스 우버이츠까지 인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랩은 같은 해 8월 말레이시아의 해피프레시와 파트너십을 맺고 그랩프레시라는 이름으로 식료품 배달 서비스를 하고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타
인도네시아와 수도 자카르타는 최악의 교통 상황으로 유명합니다. 이를 위해 고젝은 오토바이 택시를 도입했고, 그 오토바이 물류망을 통해 사용자들에게 집청소(고클린), 헤어스타일링(고글램), 마사지(고마사지) 등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아직 그랩드럭(의약품), 그랩닥터(방문진료)와 같은 서비스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난 8월 그랩은 중국의 핑안그룹과 합자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를 통해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검토 중에 있습니다.
고젝의 창업자 나디엠은 인도네시아의 사법/정치 분야 명문가 출신입니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사업을 구상했죠. 고젝은 그가 2010년 시작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토바이 택시를 ‘오젝’이라 부르는데, 교통정체로 악명 높은 인구 3천만의 도시 자카르타에서는 가장 빠르고 저렴한 교통수단이 오젝이었습니다.
나디엠 또한 자카르타에서 일하는 동안 교통정체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개인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는 오젝을 탈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정작 필요할 때에는 오젝을 잡기 어려웠죠.” 나디엠은 이야기합니다. 고젝은 바로 거기에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나디엠은 오젝이 최적의 교통 수단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번 오젝 기사와 가격을 흥정하는 것에도 진절머리가 났죠. 여기서 나디엠은 사업 기회를 찾았습니다. 오젝 기사를 제대로 교육시킬 수 있다면, 훨씬 더 쾌적한 교통수단이 될 수 있으리라 본 것이죠. 그 생각이 들자 나디엠은 바로 20명의 기사를 고용했고, 그들에게 초록색 자켓을 입힌 채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랩의 첫 번째 투자자는 앤써니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는 그랩의 사업모델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와의 사이가 극단적으로 치닫는 아들에게 투자했다고 말했죠. 앤써니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는 것을 거부하자 아버지가 크게 화를 냈기 때문입니다.
2014년 말, 그랩의 전신인 마이택시는 약 1,000억 원의 자본을 바탕으로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그리고 베트남에 진출했습니다. 서비스 이름을 그랩택시로 개편한 것도 이 무렵이죠. 하지만 기사와 승객 모두에게 보조금을 뿌려대는 그랩의 비용 구조는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2014년 12월, 우버의 기업가치가 약 45조 원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 때 앤써니는 도쿄로부터 초대장을 하나 받습니다. 세계 테크 업계의 가장 영향력있는 투자자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의 요청이었죠. 약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손정의는 단도직입적으로 세계의 차량 호출 시장을 통합할 것이라 이야기하며, 앤써니에게 거부할 수 없는 투자 제안을 합니다. 실제로 그 때 손정의는 앤써니에게 ‘지금 이 돈을 거절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겁니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소프트뱅크는 그 때 그랩에 약 3천억 원을 투자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취득한 지분율은 알려지지 않았죠. 지금까지 이 투자는 앤써니와 손정의 모두에게 윈윈이었다고 평가받습니다. 이후에도 소프트뱅크는 (올해 3월의 약 1.5조 원을 포함하여) 그랩의 여러 투자 라운드를 이끌었습니다. 우버의 주요 주주이기도 한 손정의는 우버가 동남아시아 사업을 그랩에게 매각하도록 설득한 장본이기도 합니다.
손정의가 그랩에게 투자한 것은 고젝에게 악재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손정의의 투자는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미국 외 지역의 차량호출 업계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손정의의 그랩 투자는 고젝이 투자를 유치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디엠은 글로벌의 내로라 하는 투자자들에게 ‘슈퍼앱’의 비전을 피칭했습니다.

고젝은 일찍부터 차량호출 외 여러 생활서비스들을 제공했습니다. 택시 기사가 한가할 때에도 할 수 있는 일을 만들기 위함이었죠. 나디엠은 오젝 기사들에게 배달서비스를 같이 하는 것이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 설득했습니다.
그 덕분에 2015년 초, 고젝 앱이 런칭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부터 고젝은 퀵서비스(고 센드)와 음식배달 서비스(고 푸드)를 할 수 있었죠. 미국의 투자자들은 고젝의 서비스모델이 복잡하고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만, 인도네시아의 사람들은 금세 이 서비스에 빠져들었습니다.
출시 1년 만에 고젝은 1,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나디엠은 고젝에 새로운 서비스를 계속 붙여나갔습니다. 같은 해 한 컨퍼런스에서 나디엠은 “여러분이 인도네시아에서 필요한 무엇이든, 고젝은 60분 안에 가져다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젝의 고집은 대 성공이었습니다. 2015년 10월, 고젝은 싱가포르의 NSI 벤처스와 세콰이어로부터 투자를 받아냅니다. 그 뿐 아니라 2016년에는 사모펀드 KKR을 비롯한 투자자로부터 6,0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며 유니콘 반열에 올라섰죠. 그랩이 그랩페이를 출시한 2017년은, 두 서비스 모두 동남아시아의 슈퍼앱 자리를 놓고 한판 제대로 붙기에 모자람 없는 자본을 확보해둔 상황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인도네시아에서 필요한 무엇이든, 고젝은 60분 안에 가져다드릴 수 있습니다”
나디엠 마카림, 고젝 CEO
중국의 3대 발명품을 화약, 나침반, 종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이제 여기에 ‘슈퍼앱’을 더해야할지도 모릅니다.
슈퍼앱은 2004년 알리바바가 쇼핑몰 타오바오의 결제서비스로 출시한 알리페이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알리페이는 별도 앱으로 출시한 이후 결제, 공과급 수납, 송금, 호텔 예약 등 모든 것이 가능한 앱으로 진화해나갔습니다.
슈퍼앱은 2004년 알리바바가 쇼핑몰 타오바오의 결제서비스로 출시한 알리페이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알리페이는 별도 앱으로 출시한 이후 결제, 공과급 수납, 송금, 호텔 예약 등 모든 것이 가능한 앱으로 진화해나갔습니다.
그리고 2011년에는 텐센트가 (이제 슈퍼앱의 대명사가 된) 메신저 위챗을 출시합니다. 친구와 대화하고 사진을 주고받는 메신저 플랫폼으로 시작한 위챗은 이제 그야말로 모든 것이 가능한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알리페이가 지원하는 기능들까지 포함해서요.
중국의 슈퍼앱들은 데이터의 노다지와 같습니다. 미국에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이 개인정보와 관련해서 옥신각신하는 동안,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수억 명의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뽑아 분석하고 활용해 나갔습니다. 이 데이터에는 사용자 개개인의 생활패턴이 고스란히 녹아있었죠. 개인정보 이슈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까지 중국에서는 이러한 데이터들이 수익화와 신규 서비스의 개발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랩과 고젝은 중국의 이 슈퍼앱들을 카피해나갔습니다. 당연히 모든 것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중국의 사용자들과 달리 동남아 사용자들의 대부분은 은행 계좌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중국 사용자는 80%가 계좌를 보유하고 있던 반면, 인도네시아는 그 비율이 50%이 되지 않았고 필리핀과 베트남은 심지어 35% 이하였습니다. 국가 별로 경제 발전 수준과 지리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었죠. (인도네시아는 무려 17,000개 이상의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입니다)
신용카드를 구경조차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슈퍼앱을 확산시킬 수 있을까요? 그랩과 고젝이 택한 방법은 그들이 이미 확보한 기사들을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서비스의 기사들은 사용자들로부터 현금을 직접 받아 그들 서비스 계정에 크레딧을 충전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크레딧을 이용해서 사용자들의 온라인 쇼핑이나 공과금 수납, 보험 가입, 대출과 같은 서비스 이용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기사들이 방문판매 상담원이 된 것과 같았죠.
그랩과 고젝은 식료품 배달에서 원격 의료진료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맞붙고 있습니다. 금융 분야에서는 특히 더 치열하죠. 그런데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서로 조금 다릅니다.
고젝은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주로 관련 회사를 인수하는 쪽을 택합니다. 2018년 고젝은 인도네시아에서만 3개의 금융 서비스를 인수했습니다. 결제에서 전자상거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그 서비스들을 고젝은 그들의 고페이 서비스에 통합시켰습니다.
반대로 (경영권보다는) 실행의 속도를 중시하는 그랩은 주로 제휴와 JV와 같은 형태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랩은 작년 10월 마스터카드와 제휴해서 선불카드를 발행했고, 지금까지 한 번도 금융거래를 해보지 않은 동남아 사용자들의 신용평가를 위해 일본의 카드회사 크레딧세존과 제휴했습니다. 속도를 우선한 그랩의 방식은 인도네시아에서 꽤 효과적으로 먹히고 있습니다.
그랩의 인도네시아 확장에는 우여곡절 또한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정부는 작년에 외국자본이 단독으로 국내 월렛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서비스의 유지를 위해, 그랩은 인도네시아 사업의 51% 지분을 담당할 현지 파트너를 찾아야만 했죠.
이를 위해 그랩은 인도네시아 결제 서비스인 ‘쿠도’를 인수하고, 인도네시아의 재벌그룹 ‘리포’에서 운영하는 금융서비스 ‘오보’와 제휴했습니다. 리보가 보유한 쇼핑몰은 오보의 확산에 큰 도움이되었습니다. 그랩의 확산에도 그랬죠.
그랩과 고젝은 공격적으로 확장 중입니다만, 본진인 차량호출 분야에서의 잡음은 여전합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의 숙명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랩이 우버의 동남아시아 사업을 인수하자 싱가포르에서는 기사와 사용자 모두 불만이 컸습니다. 프로모션 인센티브가 줄어들고, 저가경쟁이 끝나 가격이 올랐으며, 서비스 퀄리티도 떨어졌기 때문이죠.
강화되는 규제 역시 두 서비스에 영향이 큽니다. 싱가포르의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랩과 우버를 대상으로 약 100억 원의 벌금을 부과하며, 그랩의 가격 구조 및 기사 계약 구조에 대한 시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고젝 또한 외국 서비스라는 이유로 필리핀에서 아직 라이센스를 따지 못했습니다.

산업의 대격변이 그 자체로 불안이기도 합니다. 작년 10월, 차량호출 서비스들의 정책에 불만을 가진 자카르타의 기사들은 그랩의 사무실이 있는 리포 그룹 본사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랩에게 최저임금 보장을 주장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이에 소요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경찰이 출동하고 최루탄까지 살포한 끝에, 사태는 일단락되었습니다.
자카르타에서의 이 소동은 지금 그랩과 고젝이 경쟁하고 있는 시장이 어떤 곳인지, 그 역동성을 잘 보여줍니다. 급격한 성장 속에 기사와 사용자들이 갖게 된 기대감이, 실제 현실과 괴리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죠.
어쩌면 이런 소동은 둘 중 한 회사가 다른 회사와 합병하며 끝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슈퍼앱 경쟁이 이제 장기전에 들어간다 보고 있습니다. 서비스와 지역이 확장되면서, 이해관계자 역시 무수히 많아지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이 시장이 승자독식으로 갈 것이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아직 갈 길은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죠.”
데이빗 카츠, KKR
- 원문: 포츈 http://fortune.com/longform/grab-gojek-super-apps/
- 번역: 피맥가이 / 편집: 뤽